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간만에 공지영 작가의 책을 만났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 중에는 여행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는 자주 만나지만 음식과 관련된 에세이는 별로 없었는데 엄마가 딸에게 지치고 힘들 때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고 힘이 났는지 이야기하는 에세이가 상당히 예쁘고 내용도 너무 좋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의 내용에 맞는 9개의 레시피와 함께 담겨져 있다. 개인적으로 좋고 덜 좋고를 나눌 수 없지만 1부의 처음 내용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 날 있잖아.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하는 날. 그 때문에 실은 하루 종일 우울한 날. 갑자기 모든 가능성의 문이 닫히고 영원히 세상의 불빛 밖으로 쫓겨난 것 같은 날. 열심히 노력하면 어찌어찌 손에 잡힐 것 같은 소망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누군가가 네 귀에 이런 말을 속삭이지......, "너무 애쓰지마. 넌 안 돼. 그건 처음부터 너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거야. 넌 아니구." 뭐 그런 날.              -p11-


살다보면 분명 이런 날이 나에게도 있었고 앞으로 분명 있을 것이다. 이런 날은 내 자신이 정말 개미만도 못한 미미한 존재처럼 느껴지는 날이...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되는 이런 날... 이런 날에는 나에게만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만 다른 사람들 역시 나처럼 이런 날과 대면한다. 그런 날 어떻게 보내느냐는 자신에게 달렸다. 딸에게 전하는 레시피다 보니 이런 날이 생기면 우선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라는 이야기가 인상 깊다.


각각의 이야기마다 여자이고 살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을 엄마이면서 인생 선배가 담백하고 솔직하게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유난히 민감하다. 친구지만 친구가 아닌 사이도 있다. 저자가 고등학교 강연회에 가서 한 말은 그래서 더 인상 깊다. 자신의 마음에 맞는 친구만을 사귀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친구와 잘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친구이면서 남보다 못한 말을 꺼낸 친구와는 과감히 친구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결코 쉽게 따라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학생들이 강연에 빠져 들었던 기분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다.


책에 담겨진 레시피 중에는 내가 꼭 따라 해보고 싶은 요리들도 많다. 평소에 주로 무침으로 먹었던 시금치를 샐러드로 먹거나 저자가 결혼을 하기 전부터 친정에서 먹었다는 훈제연어를 즐기는 방법은 나도 훈제연어를 좋아하기에 만들어 볼 생각이다. 이외에도 살짝 구워 먹는 가래떡, 이혼녀에 빈털터리인 자신의 모습을 담백하게 담아낸 이야기에 알리오 에 올리오... 요즘 대세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한 번씩 나오는 나온 요리로 간편함의 대명사인 라면보다 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니 놀랍다.


이외에도 평소 다니는 여행과는 달리 패키지여행을 떠난 이야기는 자유여행을 좋아하는 나지만 패키지여행이 가진 장점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패키지여행, 우연히 보게 된 배낭여행족 청년 둘이 즐기는 만찬 이야기는 외국 여행을 가면 나도 꼭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며 나도 저자처럼 간단하게 일회용 와인 잔이나 예쁜 종이접시 정도는 여행 가방에 넣어 다닐 생각이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울림을 주는 이야기는 매일매일 괜찮다며 나를 다독이며 자기계발서에 매달리게 만드는 우리들에게 지금 느끼는 감정은 정상이고 아플 때 기운낼 수 있는 음식을 먹으며 조금 쉬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결혼을 결심하지만 그것이 옳은지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다. 결혼을 한 기혼자의 입장에서 너무나 공감이 가는 부분이 꽤 있었기에...


결혼은 그러니까, 지금 혼자 있는 게 너무 좋은데 이 사람하고 하면 그 좋음도 양보할 수 있을 거 같다. 이럴 때 하는거야. 이 사람이 너무 좋아서 이 사람하고 연관된 모든 사람이 엄청 이상할 뿐만 아니라 나를 싫어하고 가끔 (듣기에 따라) 모욕하고 명령하고 이래도 이 사람이 하도 좋아 그쯤은 참을 수 있겠다, 이럴 때.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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