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밤바 - 1915 유가시마
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나지윤 옮김 / 학고재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서구화가 일어나지 않은 다이소 시대 가난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소년 고사쿠의 성장기 소설을 담고 있는 '시로밤바'... 이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내심 궁금했는데 백발의 할머니를 뜻한다.


시로밤바는 바로 증조외할아버지의 첩이었던 할머니 '가노'다. 시로밤바가 낳은 자식이 아닌 양딸의 아들인 고사쿠와 함께 흙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날이 어둑해지자 어김없이 다른 아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자신과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이 사는 큰집이 아닌 할머니가 계시는 흙집이 자신의 집이로 여기며 발길을 옮긴다.


스토리는 고사쿠가 느끼는 감정들이 가난하지만 평화로운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느리게 전개되고 있다. 큰집에 사는 사람들은 가노에 대해 험담을 하고 시로밤바 역시 큰집 사람들에 대해 험담을 한다. 할머니가 얘기하는 험담을 들으면서 고사쿠는 불편하면서도 가노가 불쌍하게 느껴진다. 시로밤바와 고사쿠는 둘 만이어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끼며 흙집에서 지낸다.


큰집 가족인 교장선생님을 무서워하고, 좋아하는 사촌누나 아니 이모와 학교 새로 부임한 선생님과의 관계에 대한 불편한 마음, 오래간만에 친부모님을 만나러 가지만 동생이나 부모님보다는 시로밤바가 더 편하고 좋아 빨리 흙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등 고사쿠가 느끼는 감정들이 잔잔하게 흐르고 이야기에 나름 흥미를 주는 요소로 자리한다. 이외에도 좋은 중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자는 시간 빼고 공부를 하고, 도시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엄마의 생각과 고사쿠가 떠날까봐 노심초사하는 시로밤바의 모습, 길을 잃어버려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운 일, 여자친구로 인해 친구와 싸우거나 시로밤바와의 외출, 갑자기 급격하게 욕심이 늘어나는 시로밤바에 대한 감정, 친엄마와 동생들이 돌아오며 큰집에서 살아야 했던 사연, 시로밤바 죽음까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증조할아버지의 첩인 시로밤바와 함께 살았던 시절의 모습들이 흑백 추억의 영화들처럼 느리게 흐르며 연상이 된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 가슴으로 한 번에 닿지 않는 일이 있다. 상대에 대한 마음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 슬픔이 너무나 커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고사쿠 역시 그러하다. 갑자기 변화하는 모습을 가진 할머니의 모습에서 조금은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 않았나 싶은 고사쿠지만 막상 할머니가 죽자 커다란 슬픔이지만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할머니의 장례가 시작되고 그 모습을 보고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로밤바의 죽음이 가슴으로 확 와 닿는다. 비로소 고사쿠의 눈에 눈물이 떨어지는데...


솔직히 뛰어난 재미를 가진 책이라고는 말 못하겠다. 허나 잔잔하게 흘러가는 고사쿠의 일상의 모습들이 오래된 영화, 책 속에 나온 동화책처럼 다가온다. 고사쿠와 시로밤바의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오는 감동을 주는 책이다. 살면서 자신을 끔찍하게 아껴준 사람이 있다는 것은 복이다. 비록 복잡한 관계지만 시로밤바와 고사쿠는 서로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고사쿠에게 시로밤바는 특별한 사람이고 시로밤바 없이 고사쿠의 어린 시절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의 시골 풍경의 모습이 우리나라의 산업화 이전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어 나름 흥미롭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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