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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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었다. 남북전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담겨져 있어 재밌게 읽은 책인데 '파수꾼'은 '앵무새 죽이기'와는 다른 느낌의 책으로 설령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해도 파수꾼을 읽는데 무리가 없다.


주인공은  '앵무새 죽이기'의 소녀 진 루이즈가 성장하여 뉴욕에서 생활하다 고향으로 돌아오며 시작한다. 그녀를 마중 나온 사람은 죽은 오빠의 죽마고우이며 아버지와 도와 함께 일하는 헨리 클린턴... 그의 뜨거운 입맞춤과 구애에도 불구하고 진 루이즈는 그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스토리는 특별하게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지만 루이즈가 마을에 돌아오며 느끼는 감정들을 보는 것이 재미다. 자신의 집에서 머물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는 진 루이즈... 그녀는 아빠, 삼촌, 고모, 오빠, 자신에게 남다른 느낌을 주던 남학생, 오래도록 일한 흑인 가정부 등을 만나고 시간을 돌아보며 마을을 덮고 있는 배타적이고 선별적인 백인우월에 대한 생각에 불만을 표한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느낀 감동을 이 책을 통해서는 받지는 못했지만 인간이 가진 양심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한다. 지역 주민들의 따가운 시선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흑인 청년을 변호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던 애티커스 핀치의 용감한 모습이 퇴색되는 면이 느껴져 살짝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 역시 오래도록 가족처럼 여기며 살던 마을에서 동떨어져 혼자 독단적인 생각과 행동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런 분위기를 이해하고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딸, 조카에게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아빠, 삼촌에게 격분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자신의 터전을 버릴 수 없고 그들이 살아야 할 곳이기에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진 루이즈 핀치는 알고 있다. 마무리가 살짝 급하게 마무리 된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주지만 이것 역시 저자의 의도가 있어서란 생각이 준다. 마을을 덮고 있는 분위기 그 속에서 잃지 말아야 할 파수꾼... 양심을 들여다보게 되는 이야기가 인상 깊은 책이다.


아주 옛날부터 있던 돌고 도는 이야기라는 관점에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바라봄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와 관련된 중요 사건은 2백 년 전에 시작되어 현대 역사상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전쟁과 가장 가혹한 평화도 파괴시키지 못한 당당한 사회에서 펼쳐졌고, 이제는 어떤 전쟁도 평화도 구할 수 없는 문명의 황혼기로 되돌아와 개인의 장에서 다시 펼쳐질 참이었다.                        -p173-


"진 루이즈" 핀치 박사가 냉담하게 말했다. "남부 사람들 5퍼센트만이 노예를 본 적이 있단다. 노예를 소유했던 사람은 그보다 훨씬 더 적지. 자, 그러니까 분명히 무언가 나머지 95퍼센트를 자극했던 거야."         -p275-


"나는 네가 강박 관념 때문에 우쭐대면서 저지르는 그 성가신 잘못 좀 그만했으면 해. 네가 계속 그러면 우리는 따분해 죽을 지경이 될 거야. 그러니 그건 좀 멀리하자. 진 루이즈, 각자의 섬은 말이다. 각자의 파수꾼은 각자의 양심이야. 집단의 양심이란 것은 없어."            -p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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