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
에리 데 루카 지음, 이현경 옮김 / 바다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탈리아 문학을 별로 접하지 못했다. 21세기 이탈리아 문학의 얼굴이란 말을 듣고 있는 에리 데 루카의 대표작이 '물고기는 눈을 감지 않는다'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담아내고 있다. 얇고 순수문학을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에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나폴리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나름 재밌게 읽었다.  


아버지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머나 먼 미국으로 가고 없다. 엄마와 사는 생활 속에서 소년은 나름의 방식으로 커 간다.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수학에는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는 소년... 선생님마저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소년의 수학 실력은 형편없다. 소년이 열 살이 되었을 때 한 소녀를 만나게 된다. 자신과 달리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을 정도로 열심히 책을 읽으며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소녀... 생전 자신과 같은 또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던 소년이 처음으로 또래 소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소녀는 지금 말로 하면 밀당의 고수라고 해야 하나? 아님 자신의 매력을 일찍부터 알고 있고 이것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하나? 둘 다가 아니면 소녀와 함께 있는 소년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한 가해 학생 세 명을 상대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복수를 이끌어내는 영특한 소녀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소녀의 남다른 모습은 또래 소녀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미국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은 아버지는 가족들이 미국에 오기를 바란다. 헌데 엄마는 나폴리를 떠나고 싶지 않다. 엄마는 결심한 듯 아빠에게 편지를 보내고 가족과 함께 있고 싶은 아빠가 돌아온다. 아빠가 오기 전 소년이 소녀와 시간을 보내는 어느 날 어머니는 낯선 남자에게서 숙녀로서 대접을 받은 것에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열 살의 사랑을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첫사랑, 풋사랑... 소년에게 한 소녀에 대한 사랑은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의미를 가진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난생 처음 느끼는 감정... 첫키스와 함께 소녀는 사라졌지만 그는 소녀로 인해 어른으로 몸보다 먼저 정신이 어른으로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이유로 소년의 인생에 열 살은 어른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언어의 유희가 짧은 글 속에 풍성하게 들어간 책이란 생각이 든다. 결코 많은 분량의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남부도시 나폴리와 함께 어른으로 성숙해가는 소년과 소녀를 보는 듯 흥미롭게 느껴지는 이야기에 빠져 즐겁게 읽은 책이다.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에 대해 별로 관심도 기대도 없는 냉소적인 성향을 가진 소년이 소녀를 만나고 변화를 겪는 과정이 흥미롭다. 절제된 언어의 유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좋아할 책이란 생각이 든다.


열 살에는 미래의 온갖 모양을 담은 빈 껍질이 몸 안에 있었다. 어른인 체하며 밖을 바라보지만 발에 꽉 끼는 작은 신발을 신은 것과 같았다. 목소리와 이제 사용하지 않아도 보관은 하고 있는 장남감들 때문에 열 살은 여전히 어린이로 정의할 수 있는 나이였다.                           -p25~26-


책을 읽는다는 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과 비슷했다. 책에 코를 박고 읽을 때 코는 파도를 가르는 뱃머리였고 줄줄이 적힌 글들은 파도였다.                         -p26-


나는 그 애를 보았다. "그런데 그 물고기 같은 눈은 좀 감지 그래." 난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눈을 깜빡여 보기는 했지만 내 의지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망막에 그 애의 얼굴을 새겨 두고 싶었다.     -p1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