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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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을 입은 말라버린 나뭇가지가 표지라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이끌어내는 박범신 작가의 '주름' 이 책은 이미 나온  '침묵의 집'을 두 번에 걸쳐 전면 개작하여 나온 작품이라고 한다. 저자의 작품은 몇 권 읽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사회적 이슈를 몰고 온 '은교'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사실 영화에서는 노시인의 모습이 조금 변태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책에서는 노시인의 느끼는 젊음에 대한 동경, 갈망이 충분히 이해가 되어 좋았는데 이번 작품 '주름'은 솔직히 뭐라고 평가하기 나로서는 어렵다.


나이, 국가, 인종에 상관없이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가진 사회규범이나 개인의 기준을 벗어나 사랑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히 아름답다. '주름'의 주인공인 50대의 남자 김진영은 분명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는 금지된 사랑을 누구보다 치열하고 정열적으로 쏟아낸 남자다. 허나 이 사랑을 읽는 나는 솔직히 불편했다. 내가 누구를 평가할 입장이 아니기에 김진영과 시인이며 화가인 천예린이란 여성과의 사랑이 그 나이에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멋지다는 말로 간단히 할 수가 없다.


부부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준다고 한다. 첫 눈에 반해 콩껍질이 쓰인 연인이라도 부부가 되고 생활의 때가 묻어가며 시간이 흐르면 그 콩꺼풀이 벗겨지고 익숙한 생활에 적응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의리를 지키며 살아가게 된다. 김진영과 그의 아내 역시 시간이 흐르고 생활에 묻혀 우리나라 대부분의 부부들처럼 살고 있다.


갑자기 아내, 자식을 버리고 한 여자만을 쫓아 집을 나간 아버지로 인해 남겨진 가족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는다. 아버지는 IMF 한파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 주류 제조 회사의 자금 담당 이사로 매일 막아야 하는 어음, 당좌를 해결하기 위해 온 신경을 다 쓰고 있기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런 아버지가 회사자금을 횡령해 자취를 감춘 것이다. 남겨진 가족들은 살고 있던 집까지 팔며 아버지가 벌인 일을 수습한다. 군대를 제대한 아들과 한 살 어린 딸은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당장 먹고 살아야하는 생활을 걱정해야 한다. 복학 대신 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며 아버지를 잊어가던 남자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며 이야기가 시작한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평소에는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일도 왜 화가 솟구쳤는지 나중에 생각하면 본인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김진영이란 남자도 그러하다. 어느 날 출근을 하기 위해 와이셔츠를 입다가 단추 하나가 늘어져 있는 것에 짜증이 몰려온다. 이 일로 아내에게 화를 내며 집을 나선 남자는 퇴근길에 미처 챙겨오지 못한 우산을 여직원이 씌어준다. 노란색의 우산... 이 우산이 그의 가슴 저 밑에 잠자고 있던 감수성을 자극한다. 지하철역에서 노란색의 우비를 입은 여자를 보고 무작정 따라가는 남자가 도착한 곳은 미술학원... 학창시절의 꿈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다. 그곳에서 우비 속 여인이 천예린 임을 알게 된다. 자신보다 네 살이나 많은 여자... 그녀를 향한 남자의 사랑은 10대의 서투르고 20대의 맹목적인 사랑의 모습을 갖고 있다.


돌이켜 보면, 얼마나 뻔한 관계로 살아왔던가. 오래전부터 아내와 나는 너무도 뻔한, 기계로 찍어낸 싸구려 공산품 같은, 황폐하고 부식된 삶을 살아오고 있었다는 자각을 뚜렷이 한 것도 그날부터였다. 아무런 긴장과 감흥이 없는 소위 무난한 부부 관계. 광 속에 버려져 있는 묵은 그릇처럼 세월과 일상의 더께에 묻혀 그 형상조차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은, 그리하여 관심과 관행만이 느린 운행을 거듭할 뿐 서로의 자아조차 붙잡을 수 없는, 텅 빈 허깨비 같은 죽은 삶의 의례적 형식, 무난한 부부 관계. 부부 관계는 물론 나의 모든 지난 인생이 무채색의 흐릿한 휘장에 덮여 있었다는 걸 깨달은 것도, 생각하면 바로 그날이었다.                        -p77-


세상의 모든 부부가 열정적인 사랑 속에 살고 있지 못하다. 시간이 흐르고 무난한 부부 관계가 남자에게 다른 여자에게 빠지는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의 모습에 만족하며 살았을까? 시간이 흐르면 감정이란 것도 자연스럽게 순화하고 서로에게 맞추며 살아야 한다고 본다. 의례적인 가족 관계가 죽은 삶이란 표현은 과하다.  


원래부터 아이들은 제 엄마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고 제 방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것이 뭘 말하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천예린을 만나기 오래전부터, 나는 이 집에서 단지 돈이나 벌어오는 로봇 취급을 받아왔다는 것을. 가족 모두가 나에게 희로애락이 있다는 것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 억압된 옛꿈의 유령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걸 상상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p125-


TV 영향으로 지금은 가정적이고 아이들에게 잘 하는 슈퍼맨 같은 아버지들이 늘어나고 있다. 허나 주인공 김진영처럼 50대의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라 집보다는 회사가 자신의 삶의 터전에 가깝다.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기에 열심히 달리는 아버지들... 그들은 돈을 버는 기계란 말을 하면서 남편, 아버지로서의 자신들의 모습은 들여다보지 못한다. 권위적이고 무서운 아버지가 아닌 자식에게 조금 더 다가가려는 아버지의 모습을 남자는 얼마나 보여 주었는지... 남자가 옛꿈의 유령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의 아내 역시 자신의 오랜 꿈을 떠올리는 시간이 없었을까? 싶은 생각이 살짝 든다.


내겐 두 아이와 평생 나만 의지해 살아온 아내가 있습니다. 한 여자에 홀려 그들을 버리고 떠나왔지요. 머리핀을 무의식적으로 갈 때, 의식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나를 죽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지금도 천예린보다 더 빨리, 더 고통스럽게, 더 완벽하게 나 자신의 명줄을 끊고 싶어 하는 내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p235-


남자가 끝까지 천예린 곁에 머무르고 싶어 한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공감하기는 어렵다. 솔직히 시인이자 화가인 그녀가 남자에게 상당 금액의 돈을 꾸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물론 나중에라도 갚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허나 그녀는 죽을 때까지 그의 맹목적인 사랑에 의존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남자가 더 처절하게 자신에게 굴복하고 자신만을 갈구하게 만들기 위해 남자가 그녀를 쫓아 모르코에 가서 그곳에서 어린 소년에게 가방을 도둑맞고 소녀의 형에게 죽기 직전까지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도 단지 고생 좀 하겠다는 표현으로 나서지 않고 그냥 떠난 모습은 설령 사랑의 감정이 있거나 한 순간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고해도 이건 아니다 싶다. 좋게 말하면 자신에게 미친 남자의 사랑을 이용하여 돈과 그의 모든 것을 파괴한 팜므파탈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사랑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사랑이다. 한 쪽은 무한정 받고 한 쪽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껍데기가 되어서도 사랑을 하는... 한 사람으로부터의 이런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저절로 들게 하는 지독한 사랑이다.


박범신 작가의 책을 읽고 나면 느끼지만 난 저자의 책들이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 단순히 선정적이고 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를 떠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의도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버거울 때가 많다. 나름 흥미롭게 느껴지는 책이지만 결코 천예린, 김진영의 사랑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김진영의 아들은 같은 남자라 아버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최종적으로 알고 싶은 것은, 아버지가 텅 빈...... 생의 중심에서 다시 날아오르고자 했을 때, 마지막에 행복했을까,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점이었다. 아버지의 주검으로는 그것을 구분할 수 없었다. 눈감고 누워 있는 아버지의 얼굴은, 수천 년을 살아온 사람처럼 주름살이 유난히 많아 그로테스크한 하회탈 같은 느낌을 내게 주었다.   -p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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