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시선집
정호승 지음, 박항률 그림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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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님의 시를 오래간만에 만나 너무나 반가웠다. 정호승 시인의 친필 글씨를 만날 수 있는 시와 읽을수록 마음에 스며드는  시인의 말이란 글에 마음이 차분해지며 3월 봄날에 정호승님을 떠올려 본다. 


읽을수록 마음을 사로잡는 시가 너무나 좋지만 단아한 모습의 여성을 담은 박항률 화백의 그림이 시와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다. 시라는 것이 한 번에 후루룩 읽을 수가 있지만 한 단어, 한 문장에 마음을 빼앗겨 오래도록 머물며 쉽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 싶다.


'수선화에게'에게는 담겨진 시는 이미 세상에 얼굴을 알린 시다. 예전에 내가 알고 있는 시도 있지만 한동안 시를 읽지 못했을 때 나온 시들은 새롭게 만났기에 더 반갑고 애틋한 마음으로 시를 접하게 된다.


'수선화에게'를 읽는 독자라면 가장 많이 시선이 머무는 글이 아무래도 '시인의 말'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하루에 세 번 너무나 당연스럽게 생각하며 먹는 밥, 밥을 담는 밥그릇에 대한 시인의 글에 왜 이리 마음이 머무는 것인지... 아무래도 시라는 것을 밥에 비유한 표현이 마음을 사로잡아서다. 밥을 먹지 않고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데 아름다운 글을 압축해서 쓴 시는 생활에 쫓겨 사는 것에 바빠 시를 만날 시간을 못 낸 면이 있었다. 시를 좋아하던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자꾸만 고개가 아래로 향하게 된다.


<친구에게>

젖은 우산을 접듯

그렇게 나를 접지 말아줘

비 오는 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뚝뚝 물방울이 떨어지는 우산을 그대로 접으면

젖은 우산이 밤새워 불을 지피느라

그 얼마나 춥고 외롭겠니

젖은 우산을 활짝 펴

마당 한가운데 펼쳐놓듯

친구여

나를 활짝 펴

그대 안에 갖다놓아 줘

풀 향기를 맡으며

햇살에 온몸을 말릴 때까지

그대 안에 그렇게                                                           -p75-


요즘 자꾸만 한 친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아 있다. 너무나 친하게 지낸 베프 친구였는데 서로가 사는 것에 바빠 자연스럽게 연락이 소홀해져 있다. 그 친구와 나는 비를 좋아하기에 비오는 날이면 연락을 해서 분위기 좋은 커피숍, 허름한 전을 파는 음식점에서 막걸리 한 잔에 서로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는데...  친구의 아름다운 향기를 잊은 것은 아닌데 별거 아닌 것에 마음이 상해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멀어진 것은 아닌가 나 자신을 돌아보며 오늘 오후 비가 내린다니 친구에게 연락해 보고 싶다.

 

 

 

내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던 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외로운 것이 너무나 싫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고 나름 노력을 많이 했던 적도 있었다. 관계가 주는 버거움에 평소의 나로 돌아왔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외로움은 가족, 친구로서도 해결되지 않는 면이 있다. 가슴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외로움을 시를 통해 나 혼자만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위로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래간만에 읽은 정호승 시인님의 시선집.. 잔잔하면서도 아리게 마음을 파고드는 시에 빠질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일기장에 적어 둔 일기를 꺼내 읽듯이 시 한편 한편을 설레고 아릿한 통증을 느끼며 읽었음에도 행복하다. 앞으로 더 자주 정호승 시인님의 시를 만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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