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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평점 :
경찰 미스터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작품 사사키 조의 경관의 피가 비채에서 합본 소장판으로 출간 되었다. 하나만 읽어도 충분히 재밌는데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로 이어지는 경찰관으로 3대에 걸친 뜨거운 피를 다룬 이야기가 한순간도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화재로 집을 잃고 친척집에 의탁해 살고 있는 1세대 안조 세이시는 아내의 얼굴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금액이 적더라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우선이라고 느낀 안조는 만 명이나 모집하는 경찰관에 지원한다. 경찰훈련소 분교에서 가토리 모이치, 하야세 유조를 만나 함께 순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대학 중퇴자인 하야세 유조의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교육을 마친 그들은 각자 해당 지역으로 배정 받고 순사로서 일을 시작한다. 우에노 경찰서 외근에 배속된 세이시의 근무지는 전쟁 후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공원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공원에서 남창으로 살아가는 미도리란 청년이 죽음을 당한다. 안명이 있는 미도리의 죽음에 그를 찾는 경찰관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세이시는 의심스런 느낌이 있지만 밝혀내지 못한다. 5년이 흐른 후 철도원 직원인 미소년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이시는 두 사건의 연관성을 찾지만 쉽지 않다. 이런 와중에 경찰들의 분노를 일으킨 인물을 체포하는데 공을 세운 세이시는 경시청 주재 덴노지 주재소 경관으로 배정 받는다.
아버지 안조 세이시가 돌아가실 때 겨우 여덟 살 소년이었던 2대 안조 다미오도 경찰이 된다. 그는 아버지와 인연이 깊은 가토리 모이치와 하야세 유조의 도움을 받고 성장한다. 순직으로 처리되지 못한 아버지의 빈자리를 아버지의 동료들... 삼촌들의 존재가 커다란 힘이 된다. 다미오는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기 위해 경찰대학을 선택한다. 허나 입학을 결정된 다미오 앞에 경시청 소속의 인물이 나타나 그에게 좋은 조건을 내세우며 홋카이도 대학 진학을 권유한다. 훗카이도 대학에서의 다미오의 활동으로 그는 불안신경증을 갖는다. 그를 보듬어 주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지만 행복할 것만 같은 결혼은 그의 불안신경증으로 위기에 봉착한다. 병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인물에게 아버지의 이이야기를 듣게 되고 덴노지 주재소에 배정 받은 그는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알고 싶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할아버지, 순직으로 처리된 아버지 다미오... 경관으로 살아가는 두 남자의 죽음이 정반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아들이자 손자인 3대 안조 가즈야는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려고 한다. 그는 주위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학교를 졸업한다. 신입 티도 벗지 못한 상태의 가즈야에게 생각지도 못한 비밀 임무를 맡게 된다. 어릴 적 충격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지만 아버지, 할아버지의 죽음이 특정 인물과 관련이 있다. 자신이 현재 비밀리에 쫓던 사건을 결말짓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
보이는 것보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경찰이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한 생계수단으로 경찰이란 직업을 선택한 안조 세이시는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경찰관으로 살아간다. 이성적 판단과 다른 사람에 대한 호의를 가진 세이시는 인간적인 경찰관이다. 그 반면에 다미오는 마음의 병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말로 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그로 인해 가족들은 불안감에 떨어야 할 정도로 그는 좋은 남편, 아버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자식인 가즈야는 아버지와 같은 길을 가고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아버지가 가진 아픔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를 기억하고 인물이 건네주는 프린터물... 이것은 할아버지,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분명 오래된 사건과 깊은 연관이 있다.
경찰로 살아가는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에게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이야기는 웬만한 대하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경찰조직이란 특수한 조직 안에서 살아가는 경찰관들의 모습을 통해 근엄하고 무서운 경찰관이 아니라 그들도 한 사람의 인간이고 한 가정의 아들, 남편이자, 아버지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경찰 범죄추리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었지만 빠르게 전개되는 스토리에 빠져들어 읽다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보다 가족을 생각하는 가장들의 모습에 마음이 더 가고 감동 받게 된다. 시대가 가진 아픔 속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지만 범인으로 인해 죽음을 맞은 것에 마음이 아프다. 범인 역시도 자신이 가진 아픔을 들어내며 변명을 하지만 살인을 이해할 만큼 그의 아픔이 아무리 커도 이해되지 않는다. 다행히 할아버지, 아버지의 죽음이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도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경찰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인 가즈야의 행보가 멋지다. 그를 주인공으로 다루는 다른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3대에 걸친 경찰이야기는 이미 드라마로 만들어져 높은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원작의 재미를 드라마는 잘 살려냈는지 궁금증이 살짝 생기며 경찰소설이 가진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경관의 피'.. 경찰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절대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