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걸작이 무엇인가?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이미 정해 놓은 걸작이란 평가에 순응하며 따라서 아~ 저런 것이 걸작이구나 받아들였다. 시대를 넘어 사람들에게 걸작으로 인식되고 있는 문학작품들은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기에 걸작이라고 불린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걸작을 나누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걸작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걸작이란 말은 18세기 중반에 등장한다. 문학이란 이름을 갖게 되면서 걸작이 구원받았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하나의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가치를 지녔다는 것이 새삼 놀라게 되는 사실이다.


걸작에 공통점이 없다는 것이 걸작 하나하나를 절대적으로 보이게 한다. 서로 전혀 닮지 않았다. 앞으로 나올 걸작도 과거의 걸작과 같지 않을 것이다. 걸작은 평범함과는 단절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평범한 작품은 너무 많다.               -p30-


저자가 여러 작품을 통해 걸작의 기준은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걸작을 놓고 논란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걸작이라고 말하지만 저 작품이 정말 걸작에 해당할까 싶은 작품도 분명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미흡한 나의 문학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기에 한 차원 높은 사람들이 보는 시각과는 분명 다름이 있지만 왜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에 의문을 갖게 되는지... 이런 의문이 너무나 당연하다. 걸작이란 결국 우리의 좋고, 싫고를 떠나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다.


책에서 걸작이라고 말한 작품들이 무수히 많이 나온다. 내가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지만 너무나 짧은 글로 걸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아 어려움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끌린 작품이라면 저자가 혐오스러운 걸작이라고 평한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위대한 시라는 말로는 부족한 시지만 그의 신랄하고 편협한 생각, 취향에도 불구하고 걸작이라고 칭하는 이유를 다시 읽어보며 확인할 생각이다.


좋은 작가의 글쓰는 춤추는 것과 같다. 어찌 보면 모든 창작은 춤추는 것이다. 시도 춤이고 문학도 전체적으로 춤이다. 조각은 정지된 춤이고 몸이 없는 춤이다. 왜냐하면 춤은 말이 없는 표현이고 움직이는 조각이기 때문이다. 단어 대신 몸으로 글쓰기를 한다. 리듬에 취해 몇 명의 작가가 춤을 춘다. 가끔 수많은 사람이 함께 추기도 한다. 이때가 인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p179- 

 

평소에 글을 잘 쓰고 싶은 열망을 늘 가지고 있다. 작가의 글쓰기와 일반 독자의 글쓰기는 분명 다르다. 위대한 걸작을 만들어내는 문호들의 글쓰기는 뛰어난 무용수의 아름다운 춤과 같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창작성을 춤이라고 표현한 글을 보면서 위대한 작가들의 글이 주는 자연스러움에 매료되는 거은 아름다운 것에 빠지는 우리들의 당연한 모습처럼 다가온다. 위대한 작가들이 더 많아지고 그들의 뛰어난 걸작들이 더 많이 생겨날 때 나 같은 일반 독자에게도 분명 기쁨이지만 인류 전체에 주는 커다란 행복의 크기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걸작에 대한 생각을 이끌어내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다양한 작품들 그중에서도 걸작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될 유용한 책으로 내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걸작들은 더 늦기 전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걸작보다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더 많은 위대한 작품들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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