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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디 마이너스는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소설이 된 이야기다. 주인공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박태의란 청년으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근현대사 10년의 굵직한 사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은 좀 다르겠지만 그 시대에는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학생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았다.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들이라 빠져 들어 읽었다.
박태의는 학교를 졸업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 아내와 다섯 살 된 귀여운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진우... 남자의 친구이며 여전히 그의 친구로 남기를 바란 인물이다. 진우가 보낸 청첩장은 태의에게 있어 복잡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지만 참석하지 못한 결혼식 청첩장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을 만큼 남자에게 있어 진우는 특별한 존재이며 훌륭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학문인 미학과에 입학한 박태의...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인문대학 환영식에 참석했다가 여성주의자인 미쥬란 선배와 현승 선배를 만나게 된다. 현승 선배의 물음에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선배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그는 그들을 좋아하고 함께 할 것이란 것을 예감하게 된다. 태의는 당당하고 당찬 미쥬 선배를 숭배하여 그녀가 속한 철학연구학회에 들어간다. 그곳에 주인공의 인생에 평생 무거운 마음의 짊을 갖게 할 공대생 새내기 진우가 들어온다. 사실 진우란 인물이 전투적인 모습을 가질 거라는 느낌을 처음에 주지 않는다. 그는 PC방에서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거나 좋아하는 무협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개인적으로 무협지를 거의 읽은 적이 없기에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에 빠져든 진우의 모습은 혈기 왕성한 20살 청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진우의 진면목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되고 그의 강한 의지와 실천력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뛰어나다.
농촌 봉사 활동에 갔다가 미쥬 선배의 신체 일부분... 움직이는 우리 신체 기관에서 가장 힘든 노동력을 제공하는 부분을 보고 성폭력적인 발언을 한 시골남자에 격분한 그들... 기필코 사과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태의의 과 동기인 경수란 청년이 힘을 보태지만 그의 아버지가 개입되면서 오히려 그는 그들 곁을 떠나게 된다.
옳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현실에 학생들은 시위를 벌인다. 대우자동차를 둘러싼 시위에 참여하게 된 태의... 당시 오너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습격하기 위한 자리에 따라 나선 태의로 인해 미쥬 선배와 그녀의 남자친구 대석 선배는 위기를 맞는다. 시위로 인해 대석 형이 잡혀가고 다시 돌아온 그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상태다. 어느 날 경사 한 사람이 태의를 찾아오고 태의는 대석 형의 정신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살기 위해서, 두렵기에 그들이 알고자 하는 것에 이해해 줄 거란 작은 바람으로 친구의 이름을 댄다. 자신이 왜 잡혀갔는지 느끼게 된 태의는 대석 형을 용서할 수가 없다. 미쥬 선배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이에 격분한 헤어진 연인 대석 형이 나서며 사건은 엄청나게 커진다.
순수하기만 할 것 같은 학생시절... 변화를 바라기에 신념에 따라 행동에 나선 학생들... 태의는 숨듯이 군대로 들어가고 미쥬 선배는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중학교 때 한국에 온 미쥬... 그녀는 잘못되었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지만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속해 있기에 벗어나지 못한다. 짧지만 숭배하던 미쥬 선배와 연인이 되어 모든 것의 처음을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만이 태의에게 남겨진다.
신념에 따라 행동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세상에 물들어 살아간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같은 시대에 살아 그들을 보았기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동창회를 통해 같은 시간을 보낸 그들이 모인다면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외국생활로 떠돈 미쥬 선배의 예상 밖의 결혼, 신념을 여전히 지키면서 사는 친구,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심판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선배, 성정체성을 가진 인물을 향한 어린 숙녀의 마음, 평범함을 넘어선 교수님이 변하는 모습 등등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는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충분히 매력적이고 지나간 나의 20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며 읽을수록 차분히 가라앉는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만큼 책이 주는 무게감이 느껴지며 짧은 소제목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재미로만 읽는 것을 넘어서는 소설로 탄생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저자의 작품 디 마이너스가 처음인데 소수의견이 저자의 작품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화제된 영화의 원작소설이라 조만간 읽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