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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집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에 가장 확실한 내 편을 들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을 말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있어서도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리게 된다. 허나 가족이란 울타리가 짊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위로 받고 보호받아야 할 상대로부터 오히려 더 많은 상처와 고통 등의 감정을 받아야 하는 가족... 분명 도망치고 싶어질 것이다. 서로 엇갈린 기억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남매와 그들의 가족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가족여행을 떠나는 마크 해던의 '빨간집'... 왜 빨간집일까? 곧 폭발할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호기심을 느끼게 한 작품이다.
서로의 존재를 될 수 있으면 외면하고 싶었던 남매가 어머니의 장례식을 통해서 너무나 오랜만에 재회를 한다. 서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금전적, 육체적으로 나누어서 돌보았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허나 서로의 속내는 다르다. 이 불안정한 남매는 불현듯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 길에 그의 가족이 함께한다.
여행이란 게 무엇이든 잘 통하는 베프 친구와 함께 떠나도 꼭 한 번은 말다툼을 할 정도로 결코 쉬지 않다. 남보다 못한 가족인 누나 안젤라와 남동생 리처드... 두 사람은 물론이고 배우자들과 여행 자체를 내켜하지 않는 아이들까지 함께 한 가족여행은 처음부터 삐거덕거리며 위험천만하다. 안젤라와 리처드... 두 사람의 어두운 기억속 존재로 남아있는 부모님에 대한 기억 자체가 너무나 어긋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있다. 가족의 곁을 떠나 당당히 의사로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남동생 리처드를 바라보는 안젤라의 마음은 복잡하다.
아내가 불의의 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남이나 다름없는 부부생활을 이끌고 있는 안젤라와 그녀의 남편 도미니크... 도미니크는 사실 이번 여행이 내키지도 않았지만 자신의 가게에서 만난 범법자? 와의 일이 얽히면서 수시로 그를 돌아보게 한다. 그들의 자식 알렉스, 데이지, 벤지... 첫째아들 알렉스는 리처드의 딸(아내의 딸) 멜리사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하게 되고 그녀를 향한 마음을 서슴지 않고 들어낸다. 데이지는 열심히 종교에 매달린 소녀다. 오빠가 보이는 반응으로 인해 멜리사와 친해지며 자신의 종교에 대한 믿음의 시험대에 처하는 상황에 놓인다. 막내 벤지는 나이차가 나는 형과 누나, 여기에 부모님까지 각자가 가진 문제, 생각들이 가득하기에 제대로 된 보살핌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리처드의 가족 역시 만만치 않다. 세상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현재 리처드를 괴롭히는 것은 법정까지 갈지 모를 의료사고다. 그의 잘못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분명 리처드와 연관이 있다. 리처드는 수시로 환자를 떠올리며 찾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리처드는 아내 루이자를 통해 안정을 얻고 있다. 두사람의 사이는 무척이나 좋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에 안젤라가 질투를 느낄 정도로 좋지만 여행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리처드와 루이자 앞에...
루이자의 딸 멜리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닌 소녀지만 다른 사람의 약점, 아픈 곳을 본능적으로 잘 캐치해 낸다. 교묘하게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려는 멜리사... 솔직히 멜리사가 내 딸이라면 무서울 거 같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죄책감 없이 행하는 멜레사의 모습 선뜻 예뻐하기 어렵다. 멜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두려운 문제를 데이지에게 털어놓지만 데이지의 반응에 마음이 상한다. 데이지 역시 무언가에 이끌리듯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면서 양쪽 부모님 모두를 긴장시킨다.
서로에 대한 호감이 있어도 힘든데 전혀 상대에 대한 호감은 저 멀리 있는 가족끼리의 여행이 순탄할리 없다. 수시로 삐거덕거리는 일이 그들 앞에 놓이고 그들 나름은 각자의 해결 방식을 찾아 서로에게 접근한다. 이 과정에서 부딪히고 맘이 상하며 더 깊은 골을 만나기도 하고 정답은 아니지만 위로를 경험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부분으로 다가온 이야기는 기형아를 사산한 안젤라가 수시로 아기를 떠올리며 힘든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사산아로 인해 그녀 스스로 더 고립되고 가족들과 멀어진 것은 아닌지... 안젤라는 자신의 아픔을 껄끄러운 올캐 루이자에게 털어놓으며 루이자는 안젤라의 아픔, 고통, 상실감 등의 복잡한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깔끔하게 정리되는 해결책을 안고서 여행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들은 각자의 생각과 고통 속에 놓여 있다. 허나 처음에 만날 때와는 확실히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변화가 생긴다. 현실속 우리 가족의 모습도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 역시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가족과 소소하게 갈등을 겪을 수 있기에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여덟 명의 가족이 팔 일간의 여행을 통해 만들어가는 이야기지만 어느 한 사람의 바라보는 시선이 아닌 각자의 눈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라 더 냉철하고 비판적이다. 그럼에도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다음에 그들이 다시 만난다면 지금과는 좀 더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작품 처음인데 가족을 바라보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