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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읽을수록 마음이 푸근해지며 세상에는 지위의 높고 낮음, 부의 소유 여부와 상관없이 참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음을 느끼게 해주는 책 '마술 라디오' 정혜윤 PD님의 신작 에세이다. 오랜 시간 라디오 PD로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때론 슬프고 때론 마음에 온기를 전해주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게 인생이라고 한다. 세상 어느 곳을 가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다 드라마 같은 사연을 품고 살고 있다는 말처럼 책 속에 담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흔히 접하고 힘든 깊이가 느껴진다. 대부분이 쓸쓸하고 슬프면서도 뭉클함을 주는 이야기들이지만 앞부분에 내가 얼마 전에 벙커 1에서 본 김어준씨가 뷔페에서 시종일관 육회만 먹는 것을 넘어 후식까지 육회를 즐기고 순두부찌개에 계란을 여섯 개나 넣는다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병약한 탓에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라디오와 함께 시간을 보낸 남자.. 아버지에게 선물한 라디오를 아버지가 죽자 애지중지하며 챙긴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헤어질 때 그녀는 남자의 아버지 유품인 라디오를 가지고 사라진다. 아무데도 아픈 곳이 없던 여자의 죽음... 그녀가 가져간 라디오와 그녀가 쓰던 노트가 보이지 않는다. 한 쪽 눈을 잃은 것을 넘어 모든 것을 포기할까봐 두려워 한 여자가 남긴 메시지를 찾아 꿈을 꾸는 남자의 이야기는 슬프고 쓸쓸하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되어 다가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하고 싶은 이유가 폼 나게 살고 싶어서다. 폼나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남보다 높은 지위, 부를 갖는 것이 진정 폼나게 사는 것일까? 제주도의 전설적인 낚시꾼 아저씨는 자신이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남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폼 나는 인생을 산다. 얼마나 멋진가?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나무 주워 만들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으로 재탄생 시키는 능력... 세상에 쓸데없는 짓은 없다는 정혜윤님의 할머니와 전설적인 낚시꾼의 이야기가 자꾸만 머리를 맴돈다.
한 번씩 듣게 되는 라디오 사연처럼 열네 가지의 이야기에 책 이야기가 더해져 시종일관 감성을 자극한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시끌법적한 시장 통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넋두리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을 울린다.
언론고시란 말이 있을 정도로 방송국에서 일하기 쉽지 않다. 시각적인 재미를 주는 TV이와 달리 라디오는 귀로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 매력이 있다. 학창시절에는 나도 라디오를 열심히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라디오를 들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특정 그룹, 가수를 좋아하기도 했다. '마술 라디오'는 마치 내가 지금 라디오를 듣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라디오가 가진 감성들이 온전히 느껴지는 이야기에 구어체로 쓰여진 글이 편안하면서도 슬프고 가슴을 울리는 뭉클함이 느껴진다. 더불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문장 속 인물도 있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에게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어부 이야기는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나라고 가르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어르신은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도 지킬 것을 지키는 사람이예요.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도 작은 물고기를 풀어주고 금지 어종도 풀어주고 내가 실수하면 어드바이스도 해주고 이 근방 일대에서 어르신 이름 석 자는 곧 믿을 만한 사람의 상징이자 정확한 사람, 이렇게 통해요." -p62-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런 사람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일반 서민들도 그렇지만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나가 믿을 수 있는 정직한 사람이 많았다면 세월호 같은 참사나 미흡한 대책이 발생하지 않았을 걸 하는...
책의 뒤편에 저자가 라디오 PD가 되어 만난 사람들과 라디오 PD로 겪는 일들이 담겨져 있어 또 다른 재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