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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 진주를 품은 여자
권비영 지음 / 청조사 / 2014년 3월
평점 :
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졌다 한다. 그 여자는 "그년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p9- 덕혜옹주를 통해서 많은 독자들을 확보한 권비영 작가의 신작소설이 나왔다. '은주'... 강렬한 첫 문장부터 인상적이다.
주인공 은주가 사라졌다. 사라진 은주를 그년이라 칭하는 여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은주의 엄마다. 은주가 사라졌다며 다짜고짜 자신(지숙)을 찾아와 딸년이 어디 있는지를 밝히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는 여자... 지숙은 은주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은주가 한없이 불쌍하고 안쓰럽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지럽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세상에 온전히 믿을 수 있는 내 편은 가족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가족... 가장 끈끈하게 맺어진 관계이지만 남보다 더 못한 가족도 세상에 존재한다. 은주의 가족이 바로 그러하다. 전쟁으로 인해 얻은 상처와 기억은 폭력을 대를 이어 멍들게 한다. 아버지의 부추김에 이끌려 사업을 벌였다가 망하게 되자 그 화를 온전히 가족에게 풀어 놓았던 은주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 은주의 오빠는 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마음이 황폐해지고 대물림되어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사라진 은주는 지숙과 함께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여성들에게 다문화센터에서 한글을 가르치며 그들이 한국에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 이주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사회가 현실에서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사랑보다는 가족들을 위해 기꺼이 나이차가 나는 남자와의 결혼하고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보려 하지만 생활은 녹녹치 않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자식이 다른 외모로 인해 따돌림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아플지... 주위를 돌아보면 결혼한 이주여성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보듬어주고 이해하여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지... 읽을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은주는 용기를 내어 사랑하는 터키인 에민과의 사랑을 꿈꾸지만 아픈 아버지, 어머니부터 제대로 돌보고 난 후에 떳떳한 모습으로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싶다. 형제의 나라라는 터키... 은주가 잠시 에민의 집에 머물며 에민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한국전쟁과 안타까운 사랑이야기, 그가 은주에게 보여주는 배려는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은주를 한 없이 아끼고 신경 써주는 지숙 역시 오래전에 부모님의 뜻과는 다른 길을 갔던 여동생을 외면했던 일이 그녀의 마음의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로인해 이주여성들, 은주에게 그토록 마음을 썼다.
읽을수록 참으로 마음이 아픈 책이다. 사람이란 게 얼마나 이기적이고 간사한지..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음... 가정을 이끌 가장으로 인해 은주네 가족은 지옥이 따로 없는 고통스런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병이 들었으면 스스로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늦게나마 그런 노력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