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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첫 햇살
파비오 볼로 지음, 윤병언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현재의 내가 자신이 쓴 일기장을 통해 과거의 나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서른여덟 살의 엘레나는 과거의 내가 한없이 사랑스럽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떨어져 있기 싫어 결혼을 선택하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처음에 상대방에게 가졌던 감정들이 생활이 되면서 서서히 장점이 단점으로 변화고 굳이 내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숨기면서 사는 것에 익숙해지는 삶... 이런 삶이 싫지 않았다. 착한 남편이기에 그냥 그에게 맞추며 아무것도 느끼거나 원하지 않으며 조용히 지내는 인생을 살던 '나'.. 엘레나에게 한 남성의 눈길이 자꾸만 느껴진다.
한 번도 외도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남편에게 마음이 떠난 자리에 다른 남성이 들어 온 후부터 엘레나의 사랑법은 상대 남성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니 엘레나 본인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계로 남자가 이끌고 엘레나는 거기서 예전에 몰랐던 세계에 눈을 뜬다.
솔직히 나 역시도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기혼 여성으로 엘레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조금은 당혹스럽다. 머리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평범한 일상의 단조로움이 숨 막히게 답답했을지... 아무래도 옆지기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살고 있는 것에 익숙한 나는 엘레나의 선택에 열렬히 박수를 보내지는 못하지만 그녀가 만들어 갈 사랑에는 용기를 주고 싶다.
우리는 흔한 말로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고 한다. 안보면 죽을 것 같은 열렬한 사랑도 짧으면 6개월 길면 2년 6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겼는지 의학적인 호르몬의 반응을 보고 산정한 것이라지만 과연 맞을까 싶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데 한결같이 일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마음 상태나 주변 환경으로 인해 사랑이 굴곡이 생기고 변화한다. 그것이 꼭 사랑이 시들해진 것이 아니라 사랑보다 진한 정으로 변화한 모습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남편 파올로가 가진 성격이 우리나라의 남자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아내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없이 현재의 생활이 편안하면 크게 불만이 없는 상태... 여기에 엘레나가 시어머니와의 점심식사에서 항상 느끼는 숨 막힘이 우리나라의 고부갈등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든다. 다행히 시동생은 엘레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감정이 형과의 이별로 인해 그녀를 다시 보고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엘레나의 경우처럼 남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리면 순간적으로 화는 나겠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은 잔소리 몇 마디로 끝낼 것이다. 허나 엘레나는 남편이 아닌 타인이 주는 욕망에 눈을 뜨면서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대담한 행동들을 즐기기에 이른다. 더군다나 남에게 절대 보이지 않을 성적 환상까지 남자가 만들어주는데....
다행히 엘레나에게는 터놓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베프 친구도 있고 또 다른 직장 동료 있다. 혼자라면 사랑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로 인해 엘레나는 힘들었을 거라 여겨진다. 그녀에게 새로운 세계를 눈뜨게 해주었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사람이기에 그들의 만남은 끝이 보였는지도 모른다. 엘레나 자신만이 미처 그 끝을 보지 못했을지도..
일기장은 아주 사적인 부분에 속한다. 매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느끼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일기장.. 엘레나에게 일기장은 숨 막히도록 단조로운 결혼생활을 지탱해 주는 출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그만큼 일기장 안의 엘레나는 결혼 생활 자체를 이어가기 힘든 상태로 마지막 끈을 차마 놓지 못하는 상태였다.
여성보다 더 여성이 가진 감정, 심리에 대해 묘사를 잘한다는 평을 듣고 있는 파비오 볼로... 저자가 남자라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