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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비처네 (반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일상의 소중함이 무엇인지 새삼 돌아보게 하는 책을 만났다. 잔잔하고 맑은 언어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편의 아름다운 시를 읽었을 때처럼 감동으로 다가 오는 책 '누비처네'... 목성균이란 저자의 이름도 생소했지만 누비처네란 뜻 역시 무엇인지 몰라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누벼서 만든 처네란 뜻을 가진 말 만큼이나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서정적이고 마음이 포근해짐을 느끼게 한다.
저자 목성균님은 이미 2004년도에 작고하신 분이다. 십대 시절부터 이미 문학에 대한 깊은 뜻을 가진 분으로 꿈을 위해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대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사업적인 부분에서도 잘 풀리지 않아 고향으로 돌아와 공무원이 되어 사셨다. 허나 그의 마음속에는 문학에 대한 꿈이 남아 있기에 늦은 나이에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 저자의 글은 살아서는 알려지지 않다가 죽은 뒤에 입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필가로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저자... 좀 더 빨리 그의 작품이 세상에서 빛을 보았다면 어떠했을까 잠시 생각해 보며 늦게나마 저자의 글은 만나 반갑다.
제목과 같은 누비처네를 다룬 글에서는 타지에서 생활하는 자식을 보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과 무심한 남편을 대신해서 며느리를 생각하는 시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지금은 다양하고 좋은 아기 용품들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가정 형편상 아이를 등에 없는 누비처네조차도 쉽게 사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가 이불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누비처네를 보고 남편은 누비처네를 샀던 시간을 떠올려 본다. 또 며느리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 명태코다리를 옷에 묻히지 않기 위해 힘들게 들고 오시고 저자의 아내 역시 시아버지의 옷을 보면서 다음날 다시 입고 가실 수 있게 명태 묻은 흔적을 재빨리 지운다. 며느리에 대한 시아버지의 애정이 시아버지에 대한 며느리에 대한 마음이 느껴진다.
하나씩 풀어놓는 이야기의 끈은 연이어 이어진다. 과거의 시간을 떠올려 보면 나쁜 기억은 조금 상쇄되고 좋은 기억은 더 선명하게 남아 있게 된다고 한다. 목성균님은 어떠했을까? 그의 글을 통해 들어나는 아버지는 그리 살갑지도 애틋한 부자간의 정을 나누어 주는 아버지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같은 남자라서 나이들고 중풍으로 쓰러지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같은 남자로서 아버지를 이해하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여자지만 내 자신이 중년에 접어들고 보니 저자의 아버지의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을 상당히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어머니 역시 시대의 어머니들이 하셨던 것처럼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를 하셨다고 여겨진다. 시계밥 하나에도 큰소리를 치시는 시어머니의 명을 따르면서도 혼잣말로 미처 시계밥이 다 되었다는 것을 몰랐던 자신에 대한 어리석음과 이런 일까지 일일이 잔소리를 하시는 시어머니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자신의 부주의로 어린 자식을 먼저 잃어야 했던 죄송한 마음까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에 장손인 저자를 살뜰히 챙기시는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들어내 놓고 아내를 살뜰히 챙기지는 않지만 아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비롯해 가족, 친척, 직장, 지인, 손자 등에 대한 이야기는 삶이 주는 소박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9개의 테마로 나누어진 이야기다. 책을 읽는 독자라면 저자의 서정적이고 진솔한 삶의 깊이가 느껴지는 이야기에 매혹될 수밖에 없다. 서울이 고향인 나지만 이야기를 있다 보면 자꾸만 시골 풍경 속 부모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서울에서 자식들 키우시느라 새벽부터 장사를 시작하시던 부모님... 시골에서 사셨더라도 이와 다르지 않는 모습이었겠지만 그래도 시골에서 사셨다면 마음 다치실 일이 덜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살짝 해본다.
저자처럼 나 역시 달달한 일회용 티백 커피를 즐겨 마신다. 헌데 오늘 낮에 엄마가 가져다 주신 구운 고구마와 함께 친구가 준 유명 커피전문점 커피를 마시며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가져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