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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ㅣ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 '더 스크랩' 제목부터 학창시절 좋아하던 가수의 기사를 스크랩 했던 기억도 떠오르고 막연하게 잡지에 나와 있는 사진을 보며 나중에 크면 꼭 여행하고 싶은 장소를 오려 따로 보관했던 기억이 생각난다.
'더 스크랩'은 1980년대를 추억하며 들려주는 하루키의 이야기다. 우아한 분위기의 멋스런 커피숍에 앉아 따뜻한 라떼나 홍차 한 잔 시켜 놓고 친구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책을 읽으며 낭만적이고 기분 좋은 추억을 회상하는 기분이 절로 만들어 준다.
누구나 기분 좋은 일을 하면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루키가 '더 스크랩'에 담아 놓은 글들은 4년에 걸쳐 연재되었던 글이라고 한다. 자신의 특성상 일 년 이상 글을 쓴다는 것은 싫증이 나는데도 4년을 했던 것은 오로지 즐겁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에스콰이어, 라이플, 롤링스톤, 뉴욕타임스 같은 잡지와 신문에 실린 재밌다고 느낀 기사를 스크랩하고 일본어로 번역하여 글을 썼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로 하루키는 거저먹기 일이 즐겁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작년 말에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였던 그이기에 이런 솔직한 모습이 더 친근감 있고 정감 있게 느껴진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갈 이야기다. 설령 그 시대를 살지 않았다 고해도 하루키의 글을 통해 과거 속 한 페이지를 열어보는 사진 또는 영화처럼 머릿속으로 저절로 상상이 간다. 너무나 뻔 한 스토리와 인생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는 로키 시리즈의 주인공이며 제작인 실버스타 스텔론과 달리 매서운 눈을 가지지 않는 자신과의 비교는 내게는 오히려 처진 눈매로 기억되는 스텔론와 달리 독자를 매혹시키는 하루키의 이미지가 더 끌리는데 하루키 작가님은 이런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ㅎㅎ 에스콰이어에 실렸던 메릴 스트립과 제시카 랭이란 당대를 대표하는 두 여배우에 대한 비교는 상당히 흥미롭다. 여전히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메릴 스트립과는 달리 제시카 랭이란 배우는 잘 모르고 있었다. 단 3편의 영화에만 출연하고 '컨트리'란 영화에서 만난 샘 셰퍼드란 남자와 결혼해 지금도 가장 자극적이고 이상적이며 아름다운 커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뉴욕 조크에 대한 글을 통해 뉴욕 유머는 뉴욕에서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해도 좋다. 허나 유머를 유머로서 즐긴다는 느낌은 없다. 느긋하고 여유 있는 유머가 아닌 치열하고 자기 확인 행위로 치부될 정도로 강렬하고 시원스런 유머라고 한다. 정해진 틀에 매어있지 않는 도쿄식 유머는 전국구라고 하는데 그럼 수도 서울의 유머는 어떠한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로서는 서울깍쟁이란 표현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인식되어 있는데 서울의 유머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서울식 유머에 대해 한 번 진지한 대화를 해 볼 생각이다. 이외에도 아이스크림과 하루키의 맥주 이야기, 난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놀이공원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의 디즈니랜드는 너무 멀기에 엄두가 안 나지만 일본의 디즈니랜드의 장점 3가지만 보아도 끌리는데 무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하루키의 찬사는 나를 도쿄 디즈니랜드에 가보고 싶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기회가 주어진다며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하루키 작가님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에 내가 일본에 가게 되고 우연히 함께 할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점심도 같이 먹고 영화도 한 편 같이 보고 이야기도 나누며 해가 질 무렵 여유롭게 사케와 함께 맛있는 튀김 안주를 먹고 싶다.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희망사항일 뿐이지만... 1980년대의 이야기와 따로 캡처해서 도쿄 디즈니랜드와 올림픽 기간과 상관없이 들려주는 올림픽 일기 역시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인간은 결국 추억을 먹고 산다고 알고 있다. 추억 할 것이 많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난 그렇게 많은 추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지난 시절을 아쉬워하기 보다는 앞으로 추억거리를 만들면서 살기로 하면서 학창시절에는 꺼리던 모임에 참여하는 일도 생겼고 사람들과의 만남에도 거부감을 덜 갖게 되었다.
하루키란 작가는 자신을 보여주는데 거리낌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정서상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만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풀어놓는 작가... 이런 점이 하루키의 매력이 아닐까 싶고 내가 읽은 하루키의 에세이들과 비교해도 '더 스크랩'이 단연코 상위에 랭크된다.
하루키가 다음엔 어떤 작품,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올지... 알면 알수록 매력이 숨은 매력이 또 나올 거 같은 작가란 생각이 했다. '더 스크랩' 책도 좋았지만 책 디자인 또한 상당히 세련되고 느낌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가장 인기 있는 드라마하면 종편의 '1994 응답하라'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연속극에 출연한 배우 전부가 온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 드라마가 왜 이리 인기가 있을까 싶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는 게 팍팍한 요즘과 달리 낭만이 느껴지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닐까 싶다. '
더 스크랩' 지난 시간을 추억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하루키란 작가에 대해 가깝게 느끼게 해주는 즐거움을 선사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