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누구에게나 한 번쯤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다른 인연과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 싶은.... 우타노 쇼고의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주인공 히라타 마코토는 대형슈퍼의 보안담당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30대로 보이는 한 여자가 빵 세 개, 주먹밥 두 개, 종이팩에 든 커피우유와 주스를 훔친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평소처럼 경찰서에 넘기지 못하고 그녀를 그냥 보내주게 된 것은 그녀의 주민등록증을 보고 난 뒤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공부하러 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건 현장의 모든 정황은 히라타의 딸이 헤드폰을 끼고 문자를 하다가 자동차 소리를 듣지 못한 상태로 사고를 당한 것이라 딸의 억울함이 감소되는 요소로 작용한다. 딸의 죽음을 둘러싸고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지고 마음속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끝내 안타까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히라타는 좀도둑 여자를 공원에서 다시 한 번 마주치게 되고 두 사람을 둘러싼 소문은 슈퍼마켓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게 된다. 그녀... 스에나가 마스미가 죽은 딸아이와 생년월일이 같았기에 베푼 선행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나이든 중년의 남자가 젊은 여자를 취하려는 원조교제처럼 비춘다. 더불어 우연히 자꾸 마스미와 마주치면서 그녀에게 기대어 살고 있는 기생충 같은 건달 남자친구도 이것을 이용해서 히라타에게 금품을 요구하기도 한다.
우타노 쇼고의 책 중에서 이 책 느낌이 괜찮다. 미스터리 소설이 갖추어야 할 반전도 있고 내용도 덤덤하고 차분하게 풀어놓고 있지만 가족을 잃고 자신마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놓인 한 남자의 모습이 온전히 느껴지는 슬픔이 묻어 있다.
자신에게 항상 따뜻하고 도움을 주는 히라타가 마냥 고맙고 감사한 마스미...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그를 도와주고 싶다. 허나 이 노력이 오히려 히라타의 가슴속에 남아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마저 흔들리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기에 히라타의 후배이자 그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의 추리는 맞는 것인지? 아님 이 또한 또 하나의 트릭인지? 온전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아 더 흥미롭고 감탄하게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라볼 때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다. 히리타와 마스미의 관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해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상관없이 친절을 베풀고 그 친절을 받으면서 변화를 가져보려는 여자의 모습이 우정 비슷하게 보여 따뜻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허나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꾸는 계기가 나타나면서 하라타는 인생 전체를 바뀌는 선택을 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에 그의 선택이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마음이 드는 게 안타깝다. 가을 뺀 계절을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이유가 온전히 느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