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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 세이지 1 -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
고선미 지음 / 스프링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부터 무척이나 발칙하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들의 이야기 '클라리 세이지'... 가상의 인터넷 주부카페인 클라리 세이지가 허브의 한 종류인지는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향이 깊고 부드러워 마음의 안정을 돕고 피로를 달래주는 식물이라는 클라리 세이지... 윤지아, 강수정, 신소영, 이해밀이란 네 명의 기혼여성의 삶의 모습을 풀어 놓은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마치 내 이야기 같고 내 친구 이야기 같이 느껴질 만큼 공감을 느끼게 한다.
결혼이 꼭 사랑의 완성이 아니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평범한 삶을 사는 모습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아름답지 못하다. 결혼은 곧 현실이라 미치도록 사랑했던 남녀가 결혼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무딘 감정을 가지게 된다.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 자체도 우습지만 남녀 구분 없이 생활에 쫓겨 살다보면 어느새 사랑은 저만큼 멀어져 있다.
네 명의 여성은 나름 아름다운 청춘을 보낸 여성들이다. 두 명의 딸을 두고 있는 서른아홉 살의 주부 윤지아는 3년 전에 받은 뇌수술로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고 느끼며 살려고 노력한다. 그녀를 끔찍이 아끼는 남편을 둔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이 나쁘지 않은데 어느 날 우연히 MSN를 통해 그녀의 첫사랑 상대의 이름을 듣지만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다.
강수정 역시 잘 나가던 커리어우면이였지만 지금은 애 셋 딸린 평범한 가정주부다. 어리디 어린 자식을 돌보는데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남편으로 인해 그녀는 점점 억척스런 여성으로 변해가는 상태다. 언젠가는 다시 예전처럼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암울하기만하다.
한 때는 잘 나가는 걸그룹 멤버로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며 연예계를 떠났던 신소영은 이혼을 하면서 통아저씨 춤을 흉내 내는 생계형 연예인으로 전락해 있다. 소영의 바램은 오직 하나 사랑하는 딸에게만은 떳떳하고 당당한 엄마로서 살고 싶은 마음에 어떤 궂은 일도 마다않는 억척스런 여성이 되어 있다.
유명 브랜드 모델이며 푸드스타일리스트인 이해밀은 능력있는 의사 남편을 두고 있는 임산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사람들은 그녀를 동경하지만 정작 해밀 자신은 전혀 행복하지 못하다. 잡아 놓은 물고기에 떡밥을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해밀의 남편은 임산부인 아내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으며 다른 여자의 흔적을 집까지 가져와 그녀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다.
결혼을 해도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고상하고 우아한 삶을 꿈꾸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상에 내가 가진 고민이 가장 심각한 것 같이 느껴지는 게 인생이다. 네 명의 여성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세상에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도 없고 다 자신만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북적거리고 치열한 삶에서 유일한 휴식처이자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 인터넷 주부카페 '클라리 세이지'인 네 명의 여성.... 서로의 존재를 모르지만 그 곳에서 자신만의 고민을 털어 놓고 위로 받는다는 게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막바지에 이르러 지아는 기억에서 사라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면서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것을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수정은 예전의 커리어우먼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첫 만남은 오해로 인해 안 좋았지만 자꾸 부딪히며 어느새 한 남자에게 다시 기대고 싶어지는 소영,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날 용기가 부족한 해밀과 그녀를 독촉하는 여인.. 그녀의 존재는 뜻밖에도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게 우리의 사는 모습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드라마로 보아도 충분히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주부로서 결코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만 없는 이야기다. 그만큼 현실감 있게 결혼생활이 그려진 작품이다. 결혼을 앞둔 당신에게, 결혼을 되돌릴 수 없는 당신에게 꼭 한 번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란 글에 맞게 미혼이든 기혼이든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고 공감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