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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감각적이다. 술술 막힘없이 읽혀 오히려 더 당혹스러운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작가님의 이번 책은 확실히 남다르다. 간결하게 표현된 문체는 오히려 책에 흥미를 더 주는 반면 끝부분에 갑자기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당혹함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70세 노년의 남자 김병수다. 그는 전쟁을 겪으며 술에 의지해 가족에게 무차별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를 처음으로 죽이면서 살인자가 되었다. 오랜 시간을 살인자로 살아온 김병수가 손을 씻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허나 이제 자신의 눈에 띈 살인자의 눈빛을 가진 남자로부터 그의 유일한 딸이자 희망으로 자리 잡은 은희를 지켜내야 한다.
은희는 김병수가 마지막으로 죽인 피해자의 딸이다. 은희가 친딸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면서 어색해지기 시작한 딸과의 관계... 허나 두 사람이 맺어 온 관계는 책의 후반부를 지나면서 김병수의 독백처럼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이 진짜 사실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은희가 결혼이란 걸 하고 싶어 하는 딸의 남자로 인해 김병수는 불안하다. 여기에 은희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김병수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하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김병수는... 김병수가 은희를 위해서 다시 살인을 결심하게 한 남자는 오히려 전혀 예상 밖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 김병수가 살인을 그만 둔 이야기를 알려준다. 마지막 살인을 끝낸 후 우연한 교통사고를 기점으로 살인에 대한 욕구가 느끼지 않게 된 사연.... 책은 생각보다 상당히 적은 분량에 스토리 자체도 간결하고 여백이 많이 보인다. 허나 읽을수록 서서히 묵직함이 느껴진다.
알츠하이머로 인해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남자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자신이 그동안 해 온 일들에 대한 흔적을 남기고 자신을 오이디푸스와 같은 살인자라고 말하는 김병수의 고백... 아버지를 죽이면서 자멸해 버린 오이디푸스와 달리 그는 모든 살인에는 아버지의 그림자가 서려 있었다고...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버려 책임질 것이 없어진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다는 이야기에 공감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작가님의 책을 읽어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높은 평가를 하면서 읽어보라고 권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통해서 새삼 김영하 작가님의 강렬한 문체에 매료되었기에 조만간 작가님의 책들을 하나씩 찾아서 읽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