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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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산(酸)이다. 그게 내가 아는 한 가지다. 산은 물건의 매끄럽게 반짝이느 표면을 먹어 치우고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솔직히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먹먹하다. 나는 내 가족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아니 나는 나를 정확히 잘 알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고 느껴졌다. '붉은 낙엽'의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는 화자 '에릭 무어'란 인물은 자신이나 가족의 실체를 한번도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한 이방인의 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빛바랜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너무나 이쁜 여동생 제니...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과 빛은 7살의 어린 나이를 넘어서고 있다. 제니를 중심으로 나란히 서 있는 형제 워렌과 에릭(나), 그리고 이미 사고로 죽은 어미니와 병원에서 요양 병원해 계신 아버지... 한 장의 사진은 햇살만큼 밝아 보이지만 실체는 거짓으로 얼룩져 있다.

 

에릭은 이미 가족을 잃은 아픈 과거가 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두 번째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한다. 대학교때 만난 아내 메러디스와 소심하고 조용한 아들 키이스를 둔 에릭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어느날 그는 천청병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웃 빈스 지오다노의 어린 딸 '에이미'의 실종이다. 베이비시터로 지오다노 부부가 외출한 시간동안 에이미를 돌봐주었던 키이스는 하루 아침에 에이미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폐쇄적인 시골마을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자신의 가장 큰 지원자는 바로 가족이란 말들을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가족을 믿어주고 응원해주어야 하는데 살다보면 가족이란 이름으로 가장 많은 상처와 고통,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는 경우가 더 많다. '붉은 낙엽'에서 에릭 무어 역시 사랑하는 아들 키이스의 말을 믿어주어야만 하는 상황인데도 자꾸만 의심스런 마음이 드는 것을 주체하지 못한다. 아들 키이스의 사건과 에릭 자신이 여태 외면했던 첫번째 가족에 대한 실제 모습을 알아갈수록 그는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내는 눈을 잃어버리고 만다.

 

'붉은 낙엽'의 가장 큰 매력은 사건 해결에 있지 않다. 인간의 마음속에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의심이란 '병(病)'에 대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아들이 의심을 받게 되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동문서주하는 아버지들이나 어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흔히 접했는데 에릭은 오히려 아들의 무죄를 입증할 조금의 의심스런 상황을 발견해도 이미 경찰들이 조사를 했을거란 가정이나 하면서 진실을 밝히려는 의지는 아예 상실한 모습을 보인다. 한마디로 허약하고 소심하다. 그가 아들 키이스에게 보아왔던 면을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다.

 

붉디 붉은 낙엽들이 떨어져 수북히 쌓여 있는 나무들 뒤로 한 집이 보이는데 이 집은 에릭 무어 가족이 살던 집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살던 그들이 낙엽이 떨어져 수북이 쌓여가는 과정처럼 의심이 점점 커져 이제는 주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모습을 연상하게 만든 표지처럼 우리네 삶 역시 이런저런 이유로 만드는 작은 오해들이 모여 곪아 터질때까지 서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본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순수문학 작품을 읽는 기분이 들었다. 토머스 H. 쿡은 처음인데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에 그를 넣어야 할 정도로 그의 작품에 매료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은 무엇이 있는지 빨리 찾아봐야겠고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통해 만나고 싶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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