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과 사귀다
이지혜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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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과 사귀다'란 책을 통해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간이지만 특별한 공간으로 느껴지는 여행길에 올랐다. 평범한 일상 속의 공간이 새로운 공간으로 느껴지고 매료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그 순간 그 장소는 나와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넘어 사귀고 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그곳은 이미 나의 특별한 일부분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곳과 사귀다'의 저자 이지혜씨는 평범한 사람들이 매일 무심히 지나치는 공간들을 상대로 사귄다는 표현을 쓰면서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예쁜 사진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대부분 내가 무심히 지나치던 곳들이여서 새삼 책 속에 나온 공간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평소에는 사람이든 장소이든 환경이든 낯선 것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불편함과 더불어 어색함이 있어 쉽게 잘 관계를 맺지 못하는 면이 나에겐 있다. 그래서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가도 내가 잘 알고 익숙한 커피숍을 주로 찾게 되고 음식점 역시 마찬가지다. 허나 의도하지 않은 공간에 가끔씩 갈 때가 있다. 낯선 곳에서 발견한 아기자기한 이쁜 커피숍이나 홀로 걷는 산책길, 사람이 적은 시간을 이용한 조조영화인데 때마침 보는 사람이 나를 비롯해 두 세명 밖에 안될때 느끼는 묘한 감정은 그 공간이 그냥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시간으로 느끼지기도 한다.

 

 

책에 소개된 50개의 이야기 중 내가 가지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산후조리원이다. 난 학교를 졸업하는 해 24살에 결혼을 해서 바로 그 해 말에 첫 아이를 낳았다. 우리때는 산후조리원이 없었기에 당연히 친정에 가서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야하지만 일을 하고 계셔서 우리집에 오신 시어머님의 도움을 일주일 정도 받았다. 환갑을 막 넘긴 시어머님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이 그 때는 왜 그리 송구스럽고 죄송했던지... 충분한 수면은 고사하고 아이조차 제대로 맡기지 못하는 서툰 초보엄마는 이제 막 직장에 취직해 자신의 일로 바쁜 옆지기에게 한 없는 서운함과 야속함을 느꼈던 시기이기도 했다. 헌데 저자는 아기를 출산한 분을 축하해주러 산후조리원을 찾았는데 아기를 출산한 여자분은 매일 같은 문장을 읽어주며 아기에게 나쁜 말, 슬픈 말이 전해질까봐 전화까지 조심히 받았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한 남자에게 매일 시를 읽어주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곁에 있는 그에게 따뜻하고 진실한 한 마디를 선물해 주고 싶다고 털어 놓았는데 난 살면서 서운함과 아쉬운 감정만을 옆지기에게 더 느끼고 산 것은 아닌지 나를 돌아보며 내 곁에 있는 아들의 아빠인 옆지기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고 싶어졌다.

 

 

 

 

간단히 축하할 일은 빠른 전화나 이메일, 문자로 해결하는게 요즘 세태다. 멀리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고 오래간만에 편지를 받아 본다는 친구의 말에 그 이후로는 편지를 꽤 자주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 오래된 책이 더 비싸고 소중한 이유로 자신이 쓴 일기장을 빗대어 한 이야기, 공연 중간에 잠시 쉬는 시간 '인터미션' 이 시간이 단순히 화장실을 다녀오고 잠시 쉬는 시간이 아니라 공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란 이야기, 소중한 사람이 타국으로 떠나 그와 자신과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사찰'이란 공간에 털어 놓는다. 템플스테이를 통해서 떨어져 있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 내가 연애할 때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불러 일으켜 한동안 추억의 시간속을 헤매게 했다. 자신의 파리 여행에서 묵은 민박집과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얽힌 이야기 등등 참으로 다양하고 소소한 이야기가 잔잔하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들이라 나도 모르게 추억 속에 빠져 들었으며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하게 된다.

 

사진과 글 모두 이쁘다. 공간들 속에 담겨진 이야기도 좋지만 공간들과 관련된 일반인들의 사연 또한 읽는 재미가 쏠쏠하고 유쾌하다. 빨리빨리가 생활화 되다시피한 우리네 일상과 다르게 조금 느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아도 충분히 행복하고 여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상의 공간들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에 귀 기우리며 추억에 빠져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평범한 일상이 주는 소박한 행복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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