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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부탁해
레나테 아렌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가족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가장 친밀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 자상하고 인자한 아버지, 애정이 넘치며 부드러운 어머니, 우애가 깊은 형제, 자매들.... 이런 틀에 박힌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기 힘들다는 것은 안다.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슴에 박히는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받기 쉬운 존재가 가족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언니, 부탁해'을 다 읽고 난 느낌은 제일 먼저 프랑카의 동생 리디아에게 화가 난다. 리디아가 이쁘고 예술적인 기질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란 것은 알겠다. 허나 자신에게 주어진 안 좋은 일들은 언니인 프랑카와 아버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면이 너무나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프랑카와 리디아의 부모님은 부모로서의 모습은 제로에 가깝기는하다.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이유로 인해 아내와 두 딸에게는 아버지나 남편으로서의 역활은 전혀 하지 않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엄마 역시 연극배우로서의 성공을 꿈꾸지만 의도하지 않았던 프랑카가 생기는 바람에 꿈을 접고서 한 남자의 아내, 어머니로서의 삶을 선택했다면 최소한 그에 맞는 행동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을 닮은 이쁘고 예술가적 기질을 보여주는 작은딸 리디아에게는 무한한 애정과 용서를 해주면서 큰딸에게는 한 없이 심한 상처와 멍에를 지우는 엄마란 존재... 프랑카와 리디아가 그런 부모님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능히 짐작이 가고 그들이 받을 상처 역시 상상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 프랑카가 동생에게 느끼는 사랑을 이용하는 리디아의 모습은 얄밉고 못됐다.
방송작가로서 나름의 성공과 부를 가지고 있으며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원만하고 지혜로운 생활을 꾸려가는 프랑카 앞에 어느날 갑자기 그녀의 동생 리디아와 조카 메를레가 찾아온다. 자신에게 신세를 지려는 동생과 조카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예전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화가 난 리디아는 나가려다가 그만 피를 쏟으며 기절을 한다. 동생의 입원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조카 메를레를 떠맡게 된 프랑카... 규칙적인 프랑카의 생활은 조카 메를레로 인해 변화하기 시작하는데......
프랑카와 리디아는 서로를 마음속 깊이 사랑하지만 상처가 너무나 커 서로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상처와 골이 무슨 이유에서 비롯되었는지 차츰차츰 들어나기 시작하며 메를레에 대한 생각의 충돌로 인해...
프랑카와 리디아가 가지고 있던 아픔과 슬픔, 고통은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그녀들의 부모인 아빠,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미흡해서 그들이 그토록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자신만의 틀 안에 살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자매의 화해와 용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부모로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가족간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만들기도 했다. 남자친구와 조카 메들레, 프랑카가 가족이란 이름으로 행복하고 멋진 삶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