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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왈츠 ㅣ 밀란 쿤데라 전집 4
밀란 쿤데라 지음, 권은미 옮김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밀란 쿤데라의 책을 읽고 난 후에는 항상 긴 여운이 남는다. '이별의 왈츠'은 제목부터 끌렸던 책이다. 왠지 예전에 보았던 알 파치노가 나오는 '여인의 향기' 같이 아련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면서도 묘하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는 제목.... 책을 다 읽은 후 역시 밀란 쿤데라 답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여인이 어느날 갑자기 전화해서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게 되면 남자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분명 황당하고 어이없으면서 정말 여인의 뱃 속에 든 아이가 자기 아이일까? 의심부터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긴하다.
유명한 트럼펫 연주자인 클리마는 2달 전 공연 후 밤에 잠시 2시간을 함께 보낸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서 잊은지 오래다. 클리마에게 있어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짧은 관계 맺음은 지극히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정도의 수단으로 밖에 없다. 그런 여인.. 루제나의 임신 소식은 그를 당혹케 만들고 원하지 않는 아이를 떼어내야 한다는 생각에 루제나를 만났던 온천도시를 찾게 되고 그 곳에서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남자 베르틀레프를 찾는다.
베르틀레프는 클리마의 이야기를 듣고서 낙태 반대에 대해 강한 의견을 피력한다. 베르틀레프는 클리마의 고집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친구로서 그를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루제나의 낙태를 도울 의사를 소개해준다. 의사는 임상 실험이 안 된 자신만의 방법으로 여성 환자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오래 친구인 야쿠프가 있는데 그가 자신의 나라가 싫다며 새 삶을 찾아 이틀 뒤면 고국을 떠날거라며 그를 찾아온다. 떠나기 전 야쿠프는 삶이 힘들어 의사 친구에게 부탁해서 받은 파란색의 독약을 항상 소지하고 다니다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생각에 돌려주려하지만 의사 친구는 만약을 대비해 가지고 있으라고 한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얽혀 있는 관계를 보여준다. 아이를 임신한 간호사 루제나는 자신보다 어린 남자친구가 있으며 그의 열렬한 애정공세와 집착에도 클리마가 보인 반응으로 인해 뱃 속의 아이는 무조건 그의 아이라고 믿어버리는 어리석음을 가지게 된다. 루제나 있는 옆 방에 살고 있는 올가는 옛 정치인의 딸로서 그녀에게 아버지 역활을 자처하는 야쿠프의 친절함과 자상함의 두 얼굴을 벗겨버리고 싶어한다.
클리마의 아내 카밀라는 남편의 거짓말이나 젊고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예민한 촉을 가진 여자다. 그녀는 남편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멈출수가 없다. 남편이 공연을 핑계로 온천도시로 떠나자 그녀 역시 그가 다른 여인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온천 도시로 간다.
인생이 연륜이 묻어 있어 삶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는 노신사 베르틀레프는 사람으로 태어나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결국 아이 밖에 없다고 말한다. 결국 야쿠프는 자신이 가진 하나의 독약을 우연히 보게 된 여인의 약병에 넣는 결과로 인해 혼란스런 사건이 발생하고마는데....
스토리는 총 5일간의 이야기를 통해 이루어져 있다. 클리마가 루제나의 전화를 받고 생각한 여인의 뱃 속에서 아이를 떼어내는 3가지 방법은 황당하면서도 어쩌면 저런 이야기에 많은 여성들이 넘어가 원치 않게 아이를 지우는 경우도 분명 많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죄의식을 가져야 하는 사람은 오히려 덤덤해지며 누군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범인을 알고 있는 여인 역시도 침묵하고 만다. 스토리의 짜임새나 진행이 자연스러워 나도 모르게 빠져서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소설.. 오래간만에 그의 작품을 만나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