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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옷을 입으렴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에 읽은 이도우 작가님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너무나 재밌게 읽어서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 도서관에 갔다가 빌려 온 책이 '잠옷을 입으렴' 이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따뜻하고 감성어린 로맨스를 담고 있어 좋았다면 올 초 신작인 '잠옷을 입으렴'은 읽는동안 아련한 슬픔과 함께 안타까운 느낌이 묻어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책이다.
주인공이자 이야기의 화자는 고둘녕이란 소녀다. 엄마가 가족의 품을 떠난 후 아빠에 손에 이끌려 이모네 집에 들어가 살게 된다. 남달리 섬세하고 착하며 여린 마음씨를 가진 둘녕은 외할머니를 비롯해서 외가쪽 식구들이 전부 이모부와 이모네 집에 살고 있는데 자신까지 얹혀 사는 것에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을 가진다.
속 깊은 둘녕과 사촌지간인 동갑내기 수안이 친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외할머니의 배려로 인해 둘이는 둘도 없는 단짝이 된다. 문학소녀답게 몸이 약하고 섬세한 신경을 가지고 있는 수안은 둘녕과 많은 것을 함께 공유한다. 늦은 밤 둘이서 나누는 동화책에 대한 이야기, 서울로 유학 간 외삼촌 방에서 발견한 텐트, 외삼촌을 찾아 떠난 기차와 여관, 웅이를 보던 일과 행방불명된 하루, 병을 낫게 하지 못할거라 알면서도 둘녕이 만들어 주는 환을 담은 병을 보물처럼 챙기는 수안의 모습 등등 두 사람은 많은 것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어느정도 상쇄시키지 않았나 싶다. 허나 둘녕이 가지고 있는 속 깊은 배려심과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도 수안은 둘녕이 곁에 있으면서도 순간순간 아늑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독이 필요한 아이란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는 뜨게질을 하며 살아가는 현재의 둘녕과 어린시절 살았던 모암 마을을 중심으로 한 과거의 시점이 수시로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둘녕이 들려주는 모암 마을에 담긴 사연은 과하지 않게 덤덤하고 담백하게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그래서 책의 스토리에 몰입하기가 처음에는 힘이 들어 여러번에 걸쳐 끊어서 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초반이 후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둘녕이와 수안이... 두 소녀의 이야기는 나를 모암마을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속 깊고 배려심 많은 애어른 같은 둘녕의 모습이 이모와 이모부는 불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외가쪽 식구들을 전부 데리고 살아야 하는 이모는 직업을 가지고 돈도 벌었지만 아버지의 빚을 남편과 함께 갚아나가는 생활 속에서 알게모르게 남편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로인해 둘녕에게 더 잘해주고 싶고 애잔한 마음이 있었더라도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이를 먹고 내 자신이 생활에 묻혀 살다보니 이런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에 가서 둘녕이가 가진 진짜 아픔을 알게되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코 끝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수안이가 삶을 놓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었을까 싶다가도 수안이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안을 잃어버린 둘녕에게 생긴 몽유병에 가슴이 아픈건 왜일까.. 다시 찾은 모암마을에서 첫사랑 충하와 둘녕은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침반과 풍향계... 어느 쪽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은지 책을 다 읽고나도 잘 모르겠다. 새로운 느낌의 성장기 소설이였으며 이도우 작가님의 다음 책을 빨리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