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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평점 :
책표지만 봤을때는 추리소설인줄 알았다. 양복 바지에 반질반질 윤이 나는 구두가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책 '손님' 이 책의 저자 하일지씨는 '경마장 가는 길'로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사실 내가 경마장 가는 길을 읽어보지 못해 하일지라는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른다. '손님'을 읽다보면 모호하고 독특한 느낌을 받았으며 책을 읽고난 후 오래도록 씁쓸한 기분에 휩싸였다.
해질 녘 한적한 시골 '하원'이란 마을에 중절모를 쓴 신사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를 제일 먼저 본 사람은 폐결핵을 앓아 앙상하게 여윈 모습에 허도라는 남자다. 허도는 얼마전에 목사가 사라져 없는 교회를 찾아 온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중절모의 남자는 춤선생... 허도의 누이 허순을 찾아온 사람으로 우리말을 잘 못하는 외국인이라 밝혔다.
허도의 누이 허순은 인문계 학교에서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그녀가 제대로 배운적이 없는 춤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영 이상하고 아리송한 허도지만 누이가 가르친 학생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학교내에서 전폭적인 후원하에 허순의 무용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중절모의 외국인 슈... 그는 허순이 학생들을 데리고 서울에 올라갔을때 알게 된 인연으로 허순을 찾아 온 것이다. 허순이 아들 두명과 택시 운전을 하는 남자 석태와 동거를 하는 집으로 인도한 허도... 허도와 슈의 방문이 반갑지 않은 그녀의 아들들과는 달리 허순과 석태는 슈를 반갑게 맞이 한다. 허순은 외국인인 슈와의 대화를 위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다 불러 모으는데....
처음에 추리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몇 장을 넘기면서 이 사람은 왜 하원이란 마을에 내려와 허순과 학생들을 만나는 목적이 뭘까? 궁금증이 생겼다. 허순, 석태, 그녀의 두 아들은 물론이고 고등학교 여학생이라고 느껴지지 않을만큼 의외성을 가지고 있는 무용을 배우는 허순의 제자들...
허순과 석태는 슈의 등장을 너무나 반겼던 이유는 그가 부자이기 때문이다. 선의를 가지고 내려 온 슈에게 석태와 허순의 너무나 당연히 금전적인 부담감을 주고 뻔뻔스런 요구까지 한다. 거기에 아직은 때가 덜 묻어야 할 여학생들 역시 아버지뻘 되는 돈 많은 슈에게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누나와 그녀가 동거하는 남자 석태, 여기에 슈의 지갑을 넘보던 조카와 여학생들의 모습과 상반되는 인물인 허도는 이들의 모습에 부끄러워 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슈가 허도에게 커다란 돈을 준 것을 알고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들다며 돈을 요구하는 허순의 모습에 마냥 미소만 짓는 슈... 슈가 허순을 보며 던진 한마디는 슈의 존재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결정적 힌트다.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솔직히 좋지 않다. 사람이 이럴수도 있구나 싶은게 영 찝찝하다. 인간 본성이 가지고 있는 가장 추악한 면까지 다 보여주는 이들의 모습에 공감하기보다는 어쩜 저럴까하는 오히려 안쓰런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블랙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유머와 위트를 느끼기보다 우리네 삶의 단면이 드러나는 이야기로 인해 씁쓸한 기분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