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행성에서 - 구름이 가린 그림자를 밟다
최조은 지음 / 보민출판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날씨가 점차 쌀쌀해지고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면 자꾸만 연애소설이 읽고 싶어진다. 달달하고 애틋한 로맨스 소설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지는데 '흑백의 행성에서'는 연애소설이라고 말하기엔 주인공 하수경과 사랑하는 남자 최준우와의 만남이 마지막에 있어 잠시 아쉬운 생각도 들었지만 작가가 시종일관 차분하면서도 세련되고 섬세한 문체로 스토리를 이끌고 있다.

 

주인공 하수경은 출판사에서 칼럼니스트로 일을 하고 있는 서른살의 미혼 여성이다. 어릴때부터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의 주인공은 학창시절에 왕따를 겪으면서 더욱 타인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녀 자신이 일을 받으러 출판사로 나가지 않아도 되게 대개의 경우 전화로 일이 이루어진다.

 

주인공은 인생의 모든 점들이 만나는 타이밍으로 이루어진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느날 우연히 받은 한통의 전화는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대규모 사진전시회에 대한 칼럼을 의뢰하는 편집장님의 전화로 시작된 그녀의 불안한 마음은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아가게 만든다.

 

하수경... 그녀는 어느날 갑자기 칼라였던 세상이 흑백으로 변해버린 공간에서 살고 있는 여자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원인이 무엇이고 해결책은 어떤 것이 있는지 찾기보다는 자신의 문제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오로지 혼자만 알고 숨기려고 했는데 사진전시회의 칼럼은 그녀를 흑백의 세상이 아닌 칼라의 세상으로 그녀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이라 부담스럽다.

 

사진전에 전시될 작품 중 하나가 그녀에게 다시 색깔을 선사하게 되고 이상하게 그 사진을 생각하고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지며 위로 받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후 편집장님의 소개로 알게 된 사진전 기획자를 만나 마음의 위로를 준 사진작가의 또 다른 사진을 보게 되면서 그녀는 왠지 모를 기분에 휩싸이게 되는데....

 

'흑백의 행성에서'는 로맨스나 연애소설이 가지고 있는 통속적인 삼각관계나 얽기섥기 섞인 관계가 없어 더 좋았다. 오로지 작가의 풍성한 감성으로 쓰여진 스토리에 집중할 수가 있어 좋은 느낌을 받은 책이다. 학창시절 자신을 왕따 시킨 가해자와의 재회, 이어 혈육이지만 어릴때 헤어졌다가 성인이 된 이후에 다시 만난 부모님과의 서먹한 관계, 무엇보다 유일한 색깔을 전해주는 사진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서서히 들어나면서 빠른 전개가 펼쳐진다.

 

이작품이 최조은 작가의 첫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정확한 나이나 작가의 이력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해도 좋을 만큼 재밌게 읽었다. 풍부하고 섬세한 감성이 묻어난 책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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