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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저자 한강씨의 작품은 '희랍어 시간'이 처음이다. 그녀의 다른 작품인 '몽고반점'은 난亂한 스토리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이지만 한차원 높은 문체들로 인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나에게는 희랍어 시간이 그러하다. 쉬운듯 하면서도 난亂하다는 느낌을 주는...처음 한동안은 사실 이야기에 몰입하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안가며 어느순간 이 책이 주는 남다른 느낌에 저자의 역량을 느끼면서도 감미롭고 차가운듯 따뜻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눈을 잃어가는 남자.. 얼핏 들으면 영화 소재같은 느낌을 준다. 여자는 자신의 분신처럼 사랑한 아들을 뺏기는 상황에 놓인다. 타국으로 떠나야 하는 어린 아들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없을까봐 불안하며 아들 역시도 낯선 환경과 엄마에게 떨어진다는 것에 불안하기만하다. 아들을 잃음과 동시에 다시 찾아온 말을 못하게 되는 실어증에 걸리게 되고 그녀의 이런 증상은 심리적인 불안 상태가 만들어낸 결과다.
여자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로 인해서 직장도 잃게 되고 직장을 잃음으로 아들을 찾아올 방법도 사라진다. 무엇보다 여자가 가진 정신적 문제점으로 인해서 아들을 데려가는 사람들에게 받은 이야기는 그녀를 더욱 그늘로 숨게 한다. 여자는 이제 유일한 즐거움은 희랍어 강의를 듣는 것이며 나머지 모든 시간은 그녀는 타인들과 떨어져서 어둠속에 숨는 것이다.
15살에 독일로 이민을 간 소년이 눈에 띄는 외모의 동양인이란 핸디캡을 가지고 기가 죽어 있다가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희랍어 공부에 빠져들게 된다. 언제나 그리워한 고국을 보고 싶었던 남자는 가족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편도행 비행기를 끊어 한국으로 돌아온다. 남자는 갈수록 희미해지는 눈이지만 희랍어 강의를 하며 지내며 남자는 때때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둠을 보며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기도 하고 부칠 수 없는 편지도 쓴다.
여자는 빛을 통해 희랍어 강의실로 오던 남자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남자를 부축해서 그의 집으로 가게 된 여자는 남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두사람은 서로를 의식하고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고통을 어루만져주게 된다.
우리는 살면서 말을 해야 알 수 있다며 수시로 표현하라고 배운다. '희랍어 시간'의 두 주인공은 말을 주고 받지 않아도 침묵으로 일관된 언어를 통해서도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스토리가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한동안 몰입하기가 힘들었지만 어느순간부터는 두 주인공들이 주고 받는 언어에 살며시 녹아든다.
'희랍어 시간'은 한번 읽고나서 처박아두는 책이 아니라 다시 읽으며 이해할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오래된 언어지만 이제는 소멸되다시피한 희랍어가 주는 의미를 생각하게 했으며 감각적인 언어가 아름답게 느껴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