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 - 彩虹 : 무지개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세상의 이치로 보면 남녀의 사랑을 빼고는 제대로 인정받는 사랑이란 없다. 더군다나 요즘들어 하나둘씩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고 커밍아웃을 선언하는 사람들도 생겨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못하다. 하물며 21세기도 아니고 조선시대 여자와 여자의 사랑을 이야기하다니... 더군다나 그냥 어염집 여인네도 아니고 한나라의 왕후가 될 세자의 아내가 허락받지 못할 사랑을 울부짖다 결국 오라버니의 단도에 의해서 죽음을 맞게 된다.

 

아버지 세종대왕과 어머니 소헌왕후의 맏아들로 부모님에게 남다른 인정을 받고 있는 큰아들 향(珦).. 문종은 어린 나이부터 남다른 영특함을 보이며 백성과 신하 모두에게 신뢰를 받으며 아버지 세종대왕 역시도 자신의 대에서 조선이 세워진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세자에 책봉되고 왕의 자리를 물려준다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세자에게 지혜와 덕으로 곁에서 보필할 아내 세자빈을 맞아 들이지만 첫째 세자빈은 유달리 낯선 사람과의 관계를 서먹하고 어색해하며 불편함을 느끼는 세자로 인해서 사랑을 받고자 했던 행동이 커다란 분란을 일으키며 휘빈 김씨는 폐출되게 된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두번째로 맞이한 세자빈 순빈 봉씨.. 이글의 주인공인 여인이다. 어릴적부터 아버지와 새엄마, 여러명의 오빠들에 둘러싸여 사랑만 받고 자란 봉씨는 자신이 세자빈이 되어서 세자에게 사랑을 받을거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순빈 봉씨는 세자빈으로 들어간 첫날부터 세자에게 사랑은 커녕 관심도 받지 못하며 서글픈 밤을 맞게 된다.

 

당당하고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바를 거침없이 말하는 봉씨는 세자에게 자신을 내치는 이유를 묻다가 자신에게 순종하지 못하는 아내를 보며 무력으로 세자빈을 취하게 되고 봉씨는 이로인해 오히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순빈 봉씨는 세자가 원하는 여인상으로 변하고 싶어도 타고난 자신의 성품으로 인해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되지만 나름 노력을 하며 세자가 자신을 찾기만을 기다리게된다. 어느순간 이러한 마음도 모두 부질없음을 알게 되고 오히려 후궁으로 들어온 여인에게서 태기가 있자 불안하기만하다.

 

지극한 효성을 보이는 세자는 아버지 세종대왕의 이야기만 있을때만 순빈 봉씨는 찾지만 부부의 연이라고 할 수 있는 친밀함은 없다. 될 수 있으면 세자빈을 찾아가야하는 상황을 피한다. 세종대왕은 세자부부가 더욱 돈독한 애정을 가질 기회로 궁밖의 생활을 주는데 이 일로 세자빈은 더욱 외로운 밤을 보내게 된다.

 

남편에게 애정이 없다는 것을 느낄수록 더욱 술로 위안을 찾게되는 순빈 봉씨.. 어느날부터인가 세자를 모시는 소쌍이란 조금은 섬머슴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나인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이미 다른 동료와 연인 관계에 있던 소쌍은 세자빈이 자신에게 보내는 눈길과 손길이 부담스럽지만 세자빈의 처지를 이해하게된다.

 

사건의 발단은 엉뚱한 곳에서 분풀이 말 한마디로 인해서 시작된다. 바른 성군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세자지만 결혼이란 아내를 맞이한다는 것을 오로지 의무에 의한 일이라고만 생각한다. 남편에게 사랑 받고 싶었던 여인은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비극을 시작한다.

 

동성간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의 책을 낸 '미실'의 작가 김별아님의 신작 '채홍'.. 최근 나오자마자 화제를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파격적인 소재의 책이 주는 감각적인 문체로 인해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스토리에 빠져서 읽었다. 지금처럼 여자들의 사회 활동이라고는 없는 오직 남성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사회관습에서 여성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거부한 여인.. 순빈 봉씨의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아프게 다가왔다.

 

많이 좋아졌지만 남성의 욕구는 자연스럽게 표현해도 좋다고 인식하고 있는 반면 여전히 여자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해서는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남자들은 자신들은 보수적인 사람들이고 고지식하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여자에게는 알게모르게 성적 욕망을 이야기하면 불편해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

 

문종은 분명 성군의 자질이 있다. 허나 그가 조금만 자신의 아내에게 애정을 주었더라면 첫째 부인 휘빈 김씨나 순빈 봉씨도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왕후로서 제대로 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책을 통해 순빈 봉씨와 여자로서 겪어야하는 나인들의 욕망이나 내시 김태감의 아픔을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자 김별아님은 미실에서 보여주었던 여자의 섬세한 심리를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비운의 여인을 끄집어 내어 그녀 삶의 아픈 진실을 보여준다. 순빈 봉씨가 지금 태어났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멋진 삶을 살아갈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역사소설이지만 한여인의 삶을 이렇게 자세히 애틋한 마음이 들게 한 작품을 만나 즐겁고 재밌는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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