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닝 - 끝없이 나를 타인에 맞추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학
잉그리드 클레이튼 지음, 최시은 옮김, 김현수 감수 / 센시오 / 2026년 5월
평점 :
예약주문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있고, 음력 사월이 생신이신 부모님 덕분에 가족행사가 또 줄줄이다. 평범한 가정에선 아비가 아들의 반면교사이고 어미가 딸의 반면교사다. 문제적 가정에선 아비를 증오한 아들이 아비처럼 늙어가고, 어미를 싫어한 딸이 지 어미 팔자를 따라간다. 자식이 '행복한 가족'이라는 서사에 집착하면 할수록, 가족관계는 점점 더 나빠진다. 가정의 달이 엄청 피곤해진다. 요즘 뉴스를 보면, 사랑과 돌봄의 순기능을 하는 가정보다 미움과 냉담의 역기능을 하는 가정이 더 많아 보인다. 그렇다, 가정은 관계성 트라우마나 복합 트라우마의 온상이며, 부모답지 않은 부모는 복합 트라우마의 원흉이다. 복합 트라우마란 "개인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잉그리드 클레이튼은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실은 문제적 집안에서 자란 트라우마 생존자다. 친부모는 둘 다 타인의 눈치를 보는 순응형 사람들이었는데, 이혼 후 각자 지배적인 성향의 파트너와 재혼했다. 저자는 엄마와 함께 새아빠와 살게 되는데, 본디 친아빠의 절친이었던 새아빠는 알고보니 집안의 폭군이자 나르시시스트였다. 새로운 가정은 독재 체제였고 이런저런 규칙들이 난무했다. 엄마는 새남편에 순종하며 눈 뜬 봉사처럼 살았고, 딸이 폭로한 새아빠의 성적인 학대를 외면했다.

그럼, 딸은 이런 새아빠에게 어떻게 반응했을까. 딸은 싸우지도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오히려 새아빠의 기분을 맞추고 비위를 살피며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걸 '포닝(Fawning)', 즉 순응 반응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포닝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방어 기제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이나 관계에 오히려 가까이 다가서고 환심을 사려 하는 행동을 뜻한다."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는 비상 상황에 대한 네 가지 유형의 트라우마 반응이 있다. 싸우거나(Fight) 도망치거나(Flight) 얼어붙거나(Freeze) 순응하거나(Fawning). 이른바 네 가지 'F 반응'이다. 정신적 외상 및 학대를 겪은 이들의 다양한 사례를 연구한 심리치료사 피트 워커는 순응 반응을 "위협에 대한 반응 중 하나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하는 존재에게 오히려 더 매력을 호소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부당함, 수치심, 방치, 학대 등 우리를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나타나는 반응"이 바로 순응이다. 순응 반응의 최대 관심사는 안전이다. 즉 순응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타인의 소망, 필요, 요구에 자신을 동화하면서 안전을 추구한다. 문제는 안전을 빌미로 자기 자신과의 주체적인 연결을 잃어버린다는 데 있다. 자존감 저하, 우울감, 불안, 중독, 대인관계 등의 문제는 그 부산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필사가 유행이다. 왜냐, 나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전 경전을 비롯해 각종 명문과 명언을 노트에 필사하고 있는데, 명시는 문학 필사의 단골 메뉴다. 시집 필사를 위한 전용 노트가 있고 동양시와 서양시 따로 따로다. 필사는 문해력과 표현력, 감수성을 강화하고, 정서 안정이나 집중력과 몰입 등 여러모로 효과가 좋다. 물론 시의 경우 필사에만 그쳐서는 곤란하다. 가급적 외워야 한다. 명곡이 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김광섭의 '저녁에'처럼, 얼마든지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풋풋한 청소년 시절에 독일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헤르만 헷세를 몹시 좋아했다. 전혜린의 영향력도 있었고 당시 독어가 제2외국어였기에, 시집을 사면 독일어 원문이 병기된 시집을 애써 사곤 했다. 1988년 세계출판사에서 펴낸 《헷세의 명시》는 아직도 건재하다. 《릴케의 명시》는 왜 안 샀는지 모르겠다. 아마 청하출판사의 릴케 책이 이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의 시나 헷세의 시나 다들 고독과 자유를 노래했고, 러브레터에 쓰기에 좋은 표현들도 많았다.

오랜만에 릴케의 서정시를 접했다. 이번엔 독어 원문이 없는 필사집이다. 배명자 번역이고 보라빛 하드커버가 아름답다. 통필사를 감행하는 분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필사 분량이 너무 많으면 지치기 쉽다. 특히 손목과 손가락 관절이 아파온다. 이 책은 필사 입문자를 위해 릴케의 짧은 서정시들을 모아놓았다.

필사면은 줄과 무지 두 종류다. 종이가 만년필을 견딜 수 있는지 보았는데 견딜 순 있으나 비침이 있는 편이다. 나는 시의 경우, 세촉이 아닌 스텁닙으로 필사하길 즐긴다. 세일러의 캘리그라피펜 1.0 밀리와 1.5밀리, 트위스비 에코 로즈골드 1.1밀리를 썼다. 세촉이라면 뒷비침이 심하진 않을 것이다. 형광펜은 아무런 비침도 없고 색조가 자연스럽다.


릴케의 서정시들 가운데 제일 맘에 들었던 건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다. 평범한 인생을 소중한 축제로 바라본 시인의 긍정의 정서가 가슴에 와닿았다. "인생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을 느끼며, 그것을 관조하라"는 시인 장석주의 감상처럼 말이다.

심지어 스위스 라롱에 있는 릴케 무덤의 묘비명조차 생명과 실존에 대한 긍정이 엿보인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되지 않겠다는 갈망이여"라는 유명한 싯구인데, 인간이란 실존은 장미와 같은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꽃피울 수 있고, 과일의 완숙을 재촉하는 창조적인 소수의 문학혼은 언제나 이미 불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화가다 그럼에도, 그렸다 - 일제강점기에서 전쟁까지, 한국 근대미술 대표 화가 40인 40선
박영택 지음 / 심통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국의 근대 예술은 불우한 시대를 거울 삼아 건너왔다. 가장 척박하고 치열했던 시대를 실험실 삼아 성장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이 1910년부터 1958년까지 한국의 다양한 시각이미지를 대상으로 삼아 근대미술 지형을 조감하고 있다. '40인 40선'인데, 순수미술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신문만평과 책 표지, 조각과 사진 등 두루 포함하고 있다.

근대 화단을 대표하는 순수미술가라면 내 머릿속은 곧장 세 사람이 떠오른다. 「맷돌질하는 여인」의 박수근, 「통영 들소」의 이중섭, 그리고 「백자와 꽃」의 김환기다. 여기에 다시 페미니즘적 시각을 더한다면, 「수원서호」의 나혜석과 「생태」의 천경자를 꼽을 수 있다. 여기까지가 한국 근대미술에 대한 내 교양의 한계다. 이 책은 그런 한계, 교과서식 이해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한국화'나 '동양화' 하면 거개가 산수화를 떠올린다. 그렇다, '조선의 그림', '조선의 색' 하면 산수화가 우선이다. 18세기 전반의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처럼 말이다. 이런 조선 산수화의 맥은 근대미술에 이르면 누구한테 이어졌을까. 바로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이다. 이상범은 한국적 실경산수의 거장으로, 근대 한국화 6대가의 한 사람이다. 근대 한국화 6대가란 이상범을 비롯해 허백련, 김은호, 변관식, 노수현, 장우성을 가리킨다. 이 책은 한국화 거장들 가운데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세 사람을 소개한다.

이상범과 노수현 모두 조선 시대 마지막 화원인 안중식이 운영한 경묵헌(1917년 6월 개설)에서 그림을 배웠고, 동연사(1923년 3월 출범)의 핵심 멤버였다. 동연사는 중국회화와 일본화풍과는 다른 "한국의 풍경, 흙냄새 그리고 그것들을 에워싸고 흐르는 한국적인 향토시를" 그리고자 했던 단체다. 청전의 초기 대표작 「잔추」는 1930년 제9회 조선미전 특선작으로, "치밀한 붓질과 건조한 먹의 흔적으로 적적하고 고요한 농가와 헐벗은 민둥산을 보여"준 수묵산수화다. 청전은 한국적 풍경의 정서를 쓸쓸함과 스산함으로 재현해냈다.

심산(心汕) 노수현(1899~1978)의 산수화는 실경이 아닌 전통적인 관념 산수화를 계승했다. 특정 장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상상된 자연풍경, 즉 "대부분 기이한 절경과 암산, 굳건한 바위와 커다란 나무가 적막하게 자리하고 있는 비의적인 공간"을 선보인다. 심산의 산수화는 "정형적인 화면의 구도 위에 골격미 넘치는 필세와 창윤하면서도 유현한 공간감, 고고한 정신미를 추구"했다. 그의 대표작 「송하관월도」는 웅장하고 막힘 없는 자연의 기상이 있다.

"아득한 거리에서 출현하는 거대한 산과 바위, 기세 좋게 솟은 소나무, 몽환적이기까지 한 달밤의 산속 분위기, 고개를 들어 허공의 달을 바라보는 선비의 멋이 깃든 매력적인 그림이다."(213쪽)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은 안중식, 조석진 문하에서 전통적인 동양화를 배운 수묵 산수화의 대가다. 1925년 이당 김은호와 함께 일본으로 유학해 동경의 우에노 미술학교에서 3년 동안 청강을 했다. 한국적 산수 풍류의 이상향을 구현한 작품이 바로 「농가의 만추」다. 나무 줄기와 언덕, 논과 논두렁, 초가집과 마당 등 한국 농촌의 늦가을 풍경을 담았고, 길을 걸어가는 갓 쓴 노인이 등장한다.

청전과 소정과는 결이 다르게, 인상주의 화풍으로 조선의 자연과 조선의 색을 화폭에 담은 거장도 있다. 바로 화가 오지호(1905~1982)다. 청전과 소정에게 스승 안중식이 있었다면, 오지호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있었다. 오지호가 다닌 휘문고보의 미술 선생이 고희동이었다. 일제 식민지 시절이지만, 오지호는 환하고 밝고 맑은 조선의 자연환경을 강조했다. 대표작 「남향집」은 1935년부터 1944년까지 화가가 살았던 개성의 초가집을 그린 그림으로, 초가와 흙벽, 고목과 삽살개, 단발머리 소녀 같은 가장 향토적인 소재들이 등장한다. 한국의 전형적인 초겨울 정경을 한국적인 인상파 기법으로 담아냈는데, 원제는 「사양(斜陽)」이었다. 오지호는 서양의 인상주의를 한국의 풍토에 맞게 토착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미술 철학이 유달리 맘에 와닿는다.

"어떤 미술의 특질이란 그 미술이 산출되는 지역의 자연환경(풍토)의 특질에 유래되는 것, 예술 중에서도 가장 예민하게 자연을 반영하는 것이 회화다. 시각적 세계에 있어 사람, 특히 조선 사람의 감정이 요구하는 것은 명랑하고 찬란한 색채인 것, 조선의 자연은 공기가 청정하고 색채가 선명하고 기온이 쾌적한 것이다."(1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권력중독 - 그들은 왜 지배할수록 괴물이 되는가
카르스텐 셰르물리 지음, 곽지원 옮김 / 미래의창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권력이 우리 심신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력을 파헤친 매력적인 심리서를 만났다. 독일의 조직심리학자 카르스텐 셰르물리의 《권력중독》(미래의창, 2026)이다. 권력의 기본 개념은 물론, 권력이 일으키는 심리적·생리적 반응을 소개하고, 권력이 우리 경험과 인식, 행동 전반에 미치는 장기적인 양상까지도 잘 설명하고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존 프렌치와 버트럼 레이븐은 권력의 기반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 처벌에 기반한 권력, 보상에 기반한 권력, 합법성과 정당성에 기반한 권력, 전문성에 기반한 권력, 카리스마에 기반한 권력이다. 로마의 네로나 스페인의 프랑코, 소련의 스탈린 같은 역사상 독재자들은 '채찍'으로 대변되는 처벌적 권력과 '당근'으로 대변되는 보상적 권력을 자주 활용했다. 국회의원이나 축구 심판처럼 제도와 지위를 통해 부여되는 합법적 권력이 있고, 코로나 팬데믹 시절의 의사나 인공지능을 다루는 공학자처럼 특정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의 전문성 권력은 날로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한편, 카리스마 권력은 권력이 가진 사회성과 대인관계성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유형으로, "타고난 성격보다는 구체적인 행동 방식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되곤 한다. 카리스마 권력은 대체로 예수, 모세, 무함마드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지니고 있었던 유형이었는데, 오늘날은 버락 오바마나 도널드 트럼프 같은 정치인이나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같은 혁신적인 경영 리더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리더십 표지이기도 하다. 카리스마 권력은 보상 권력이나 처벌적 권력보다 훨씬 더 지속적이고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저자는 앞서 언급한 다섯 유형의 권력 외에 '도덕적 권력'이라는 새로운 유형 하나를 더 추가한다.

잘 알다시피 권력은 아편이다. "권력은 사람을 중독시키고 자제력을 무너뜨리는 힘을 지니고 있다." 권력의 중독성과 부패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국의 역사학자 액턴 경은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저자는 "권력은 우리를 각성시키고, 신경계를 활성화시킨다"며 권력의 생리학과 권력과 중독의 메커니즘을 소개한다.

권력과 권력 상실이 불러오는 생리적 반응은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 호르몬 지수와 관련이 깊다. 테스토스테론이 비록 '권력 호르몬'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남성 호르몬 지수가 높을수록 권력에 대한 욕구 역시 더 강한 편이다. 그리고 권력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자존감이 크고 패배했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욱 높게 나타난다. 쉽게 말해서, 권력의 획득은 쾌감을 부르고, 권력의 상실은 고통을 초래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반지의 힘이 프로도의 양심과 이성을 망가뜨리는 것처럼, 권력감은 사람을 타락시키고 반사회적 행동을 부추기며 비도덕화시킨다. 권력의 남용과 악용은 갑질이나 조작처럼 상대를 개별적인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 탈개인화와 비인간화의 결과를 초래한다. "절대 권력은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무력감과 권력 상실을 강요한다."

물론 권력은 긍정적인 변화도 가능하게 한다. 일상에서 권력의 부작용을 줄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 보다 책임감 있고 성공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공공의 선을 지향하면서 팀 내 임파워먼트를 강화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제 집단지성의 차원에서 그런 걸 고민할 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학이라는 세계 -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린 어른들을 위한
시라토리 하루히코 지음, 양필성 옮김 / 클랩북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독학은 혼자 공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를 위한 진짜 공부'의 다른 이름이다. 일찍이 공자가 말한 '위기지학'이 아니면 독학이라 할 수 없다. 양명학이 강조하는 '일상에서 진리를 연마한다'는 '사상마련'이나 불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가르침, 그리고 하나의 화두를 잡고서 종일 끝까지 참구하는 것도 다 독학의 맥락과 상통한다. 독학은 공부의 분야와는 관련이 없다. 직업이나 취업을 위한 공부도 아니고, 재미나 취미를 위한 공부도 아니다. 오히려 독학은 자기 주도적 학습과 같은 근성과 호기심, 탐구 태도와 결부된다.

철학의 대중화에 매진하고 있는 일본의 지식인 시라토리 하루히코는 독학의 최종 목적이 "스스로 생각하고, 지금까지 없던 견해나 추론을" 만드는 일이라며 독학의 기본적인 방법을 소개한다. 가령 대략적으로 책을 읽는 법, 문제의식을 갖는 법, 생각하는 법, 교양을 쌓는 법 등이다. 요약하면, 독학의 기본은 직접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일이며, 이는 독서와 사유, 기록이 전부다. 독학은 기록인의 삶이자 교양인의 열린 자세로, "번거롭고 시간이 걸리는 탐구는 오직 자신으로 사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인간은 스스로 탐구할 때만 비로소 자신이 된다."

독학은 진리를 깊이 파고드는 철학자의 탐구나 진범를 추리하는 탐정의 작업과 흡사하다. 칸트나 셜록 홈즈처럼 말이다. 일테면 저자는 '알고 싶은 것을 제대로 조사하는 7단계'를 소개하고 있다. '주제에 따른 키워드 선별하기, 키워드의 어원과 현대에 와서 달라진 의미 조사하기, 주제 범위의 역사적 환경 파악하기, 종교적 환경 파악하기,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환경 파악하기,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책과 자료 선별하기, 연구를 시작하기'의 순이다.

또한 저자는 언제나 '프리 노트'를 가지고 다니라고 조언한다. 프리 노트란 공부하거나 독서하면서 떠오른 의문과 발상을 적는 노트로, 예술가의 작업 노트나 발명가의 아이디어 저널과 다를 바 없다. 다만 전자 노트여서는 안 된다. 저자는 40매짜리 원고지를 쓰는데 칸을 무시하고 단면만 쓴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