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 릴케 시 필사집 쓰는 기쁨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배명자 옮김 / 나무생각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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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필사가 유행이다. 왜냐, 나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고전 경전을 비롯해 각종 명문과 명언을 노트에 필사하고 있는데, 명시는 문학 필사의 단골 메뉴다. 시집 필사를 위한 전용 노트가 있고 동양시와 서양시 따로 따로다. 필사는 문해력과 표현력, 감수성을 강화하고, 정서 안정이나 집중력과 몰입 등 여러모로 효과가 좋다. 물론 시의 경우 필사에만 그쳐서는 곤란하다. 가급적 외워야 한다. 명곡이 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김광섭의 '저녁에'처럼, 얼마든지 흥얼거릴 수 있어야 한다.

풋풋한 청소년 시절에 독일의 서정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헤르만 헷세를 몹시 좋아했다. 전혜린의 영향력도 있었고 당시 독어가 제2외국어였기에, 시집을 사면 독일어 원문이 병기된 시집을 애써 사곤 했다. 1988년 세계출판사에서 펴낸 《헷세의 명시》는 아직도 건재하다. 《릴케의 명시》는 왜 안 샀는지 모르겠다. 아마 청하출판사의 릴케 책이 이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의 시나 헷세의 시나 다들 고독과 자유를 노래했고, 러브레터에 쓰기에 좋은 표현들도 많았다.

오랜만에 릴케의 서정시를 접했다. 이번엔 독어 원문이 없는 필사집이다. 배명자 번역이고 보라빛 하드커버가 아름답다. 통필사를 감행하는 분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필사 분량이 너무 많으면 지치기 쉽다. 특히 손목과 손가락 관절이 아파온다. 이 책은 필사 입문자를 위해 릴케의 짧은 서정시들을 모아놓았다.

필사면은 줄과 무지 두 종류다. 종이가 만년필을 견딜 수 있는지 보았는데 견딜 순 있으나 비침이 있는 편이다. 나는 시의 경우, 세촉이 아닌 스텁닙으로 필사하길 즐긴다. 세일러의 캘리그라피펜 1.0 밀리와 1.5밀리, 트위스비 에코 로즈골드 1.1밀리를 썼다. 세촉이라면 뒷비침이 심하진 않을 것이다. 형광펜은 아무런 비침도 없고 색조가 자연스럽다.


릴케의 서정시들 가운데 제일 맘에 들었던 건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다. 평범한 인생을 소중한 축제로 바라본 시인의 긍정의 정서가 가슴에 와닿았다. "인생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을 느끼며, 그것을 관조하라"는 시인 장석주의 감상처럼 말이다.

심지어 스위스 라롱에 있는 릴케 무덤의 묘비명조차 생명과 실존에 대한 긍정이 엿보인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되지 않겠다는 갈망이여"라는 유명한 싯구인데, 인간이란 실존은 장미와 같은 아름다움을 예술적으로 꽃피울 수 있고, 과일의 완숙을 재촉하는 창조적인 소수의 문학혼은 언제나 이미 불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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