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휘자들과 음악가들은 아무래도 이러한 기술발전으로부터 받은 혜택이 많은 게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 앞에 놓인 음표들의 유일무이한 원천과의 접점을 잃은 것 또한 사실인데, 컴퓨터로 인쇄된 악보는 모두 같은 사람이 쓴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P211

지휘자 출신 작곡가들 혹은 지휘를 겸하고 있는 작곡가들은 자기 머릿속에 그린 음악을 실용적 기보 체계로 옮기는방법을 잘 알고 있기에, 그들이 쓴 음악은 연주로 실현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경향이 있다. 

따라서 멘델스존과 바그너,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은 베르디나 푸치니,드뷔시의 작품보다 지휘하기가 수월하다. 

푸치니는 자신이피아노로 연주한 음악을 지휘자용으로 옮기는 방법을 차차배워나간 경우다. 그리하여 <마농 레스코>와 <라보엠> 같은초기작보다는 〈투란도트> 같은 후기작으로 갈수록 지휘가용이하다. 듣기에는 후기작이 더 까다로울 것처럼 들리지만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 P219

모든 지휘자는 항상 오디션을 보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는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이를 이끄는 명백한 지도자처럼 보일 때에도 마찬가지다. 

지휘자는 나이를 먹고 명성을 쌓아감에 따라 새로운 기대를 받고 새로운 불신과 싸우는 존재다.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헤르베르트 폰카라얀과 베를린 필이 어떻게 헤어졌는지, 오자와 세이지가보스턴에서 보낸 마지막 몇 년이 어땠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설령 자신의 경력상 정점에 도달한 시기에도 지휘자는심리적·정치적·신체적 변화와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평생 커리어를 일궈가는 사람들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리라. 오케스트라는 그 고유의 속성상 만장일치로 생각하고 행동할것을 요구받는다. 이는 또한 그들이 끼리끼리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파벌적 결속력은 감탄과 존경의 근원이 되기도 하지만 멈출 수 없는 불안 요소가 되기도 한다. - P235

독주자는 지휘자에게 이와 비슷한 종류의, 그러나 훨씬개인적인 차원의 도전을 제기한다. 악기 연주자는 이 오케스트라 저 오케스트라, 이 지휘자 저지휘자를 유랑하며, 그리고 날마다 다른 시간대에 적응하며, 매 시즌 주어지는 제한된 수의 작품을 연주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 존재다. 

오케스트라 리허설에서 지휘자를 처음으로 만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협주곡 연주와 관련한 템포 문제나여타 수많은 세부 사항을 따로 논할 시간조차 없는 건 자명한 이치다. 

이따금 독주자와 지휘자 두 사람만의 별도 리허설 시간이 안배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에는 금세 양측 사이에 서로 메기고 받는 호흡이 형성되기도 한다. - P239

독주자와 지휘자는 그 무엇보다 눈빛 교환을 통해 하나가 된다. 두 눈을 감고 연주에 몰두하는 연주자를 볼 때마다나는 영혼의 문고리에 걸어놓은 ‘방해하지 마시오‘ 종잇조각이 생각난다. 연주란 정신과 육체에 엄청난 집중력을 부과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비고전음악 분야에는 지휘자 이용법을 전혀 모르는, 그리고 최소한 부조종사쯤 되는 파트너와 함께하는 연주가 낯선 음악가도 적잖은 편이다. 그들에게 지휘자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존재다. - P246

무엇보다 오페라 지휘자는 모든 가수의 호흡점을 직감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숨을 들이쉬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각각의 악절을 노래하고 다음 악절을 준비하는 데얼마나 많은 숨을 내쉬는지 같은 사항을 직관적으로 간취해야 하는 것이다. 

지휘자는 가수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항시 그들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 과거에는 지휘자로 대성하려면 으레 오페라하우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연습 코치 겸반주자로서 일하면서 훈련을 쌓는 게 관례이다시피 했다.

성악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익히기에는 오페라하우스의 자그마한 연습실만한 공간이 달리 없다. 이러한 전통은(비록 요즘은 많이 무색해졌지만)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제임스 러바인, 라 스칼라의 리카르도 무티,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안토니오 파파노에게 모두 적용되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두 피아노를 대신 쳐줄 제삼자를 둘 필요 없이 가수 한명 한 명과 일대일로 함께 연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휘자들이다. - P254

오페라 지휘가 버겁지만 명예로운 일이라면, 발레 지휘는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면서도 대체로 사람들의 인정은오페라 지휘만큼 받지 못하여 보람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오페라 지휘가 노래의 신체적 요구 조건에 대한 이해를 필수로 한다, 발레 지휘에서는 안무가가 짠 안무를 제대로 숙지하여 육체 행위로 옮기는 개별 무용수들의 능력에 대한 가늠이 필수적이다. - P263

이 일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게 어려운지 실마리라도 붙들고 있는 관객은 거의 없고, 결과가 좋을 때 존경과 사랑, 찬양의 중심에 서는 건 역시 무용수들이다. 

공연이 끝나면 지휘자는 언제나 쭈뼛쭈뼛 불편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올라와 멋진 운동선수 겸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신체에 둘러싸여 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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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작은 단계를 밟아나가면서, 다소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소리들이 우리 둘에게 곧장 독립적인 개체로서의 자격을 부여한다는 사실을 이내 깨닫게 됐어.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고, 심지어 기르는 강아지도 자기에게 이름이 있다는 걸 알 거라고(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생각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은, 이름을 얻는다는 것이 내 인식에 얼마나 엄청난 혁명을 일으켰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거야. 하지만 그 순간 나는 진정으로 태어났다고, 하나의 개체로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 - P25

"그렇군요. 그래, 뭘 가르치는데요?" 내가 말했어.

이스마엘은 오른편에 쌓여 있는 나뭇가지 가운데 신선한 가지하나를 골라 잠시 살펴본 다음, 내 눈을 나른하게 응시하면서 그것을 씹기 시작했어. 그러고는 마침내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내가 살아온 인생을 바탕으로, 내가 가장 잘 가르칠 만한 주제가 뭐라고 생각해?"

나는 눈을 껌벅거리면서 잘 모르겠다고 말했어.

"물론 당신은 알고 있어. 내가 가르치려는 주제는 속박captivity 이야."
"속박이라."
"그래, 맞아."

나는 잠시 그대로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어. 

"그게 세상을 구하는 거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하려는 중이에요.
이스마엘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에 이야기를 했어. 

"당신들 문화에 속한 사람들 가운데 세상을 파괴하길 원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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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지휘자와 음악의 관계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지휘는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지휘자들에게지휘란 생계 수단이며, 지휘는 워낙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연루되는 분야인지라 일자리를 얻고 유지하는 것은 때로 대단히 복잡한 일이 되기도 한다. 본인이 누구건 얼마나 유명하건 간에 고용 안정성은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건 그렇지만, 지휘자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언제나 그 영혼을떠받쳐주는 유일한 진실은 지휘자가 작품을 대하고 이해하는 방식에 있다. - P183

어쩌면 지휘자로서는 작품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음악과 더 친해질 수 있는 방편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에 흠뻑 빠져 뒹굴기보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전달하는 책임에 집중하는 것이 말이다. 그러나 로렌즈 하트가 쓴 노랫말처럼 ‘짝사랑은 지루한 법‘ [빌리 홀리데이, 프랭크시나트라 등이 불러 유명해진 노래 "불행한 게 좋아Glad to Be Unhappy의 가사 옮긴이]이다.

우리 지휘자들은 어쨌거나 외판원이며, 따라서 우리가 연주하는 작품이 무엇이 됐건 여하간 그걸 팔아야 하는 존재다. 

‘외판원‘이 너무 심한 표현 같다면
‘서포터‘나 ‘치어리더‘로 바꿔 불러도 좋겠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작품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은

"현재 지휘하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일단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전에 몰랐던, 그리고 어쩌면 곧 잊게 될지도 모를 것들을 잔뜩 알게 된다. - P188

과거 음악의 비평판 악보 작업은 음악학자들의 임무다.
학자들의 연구 과정은 대개 철두철미하기 마련이지만, 음악이 어떻게 창조되는지, 그리고 총보와 파트보 작성, 연주 등의 절차를 놓고 어떤 의사 결정이 이뤄지는지를 그들이 모두 이해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페라와 뮤지컬 극장에서는수많은 예술가-가수, 감독, 작곡가, 제작사가 참여하여연주 악보를 만들고, 바로 이것이 여러분이 극장에서 듣는 음악이 된다. 비평판(혹은 "최선의 판본은 이러한 ‘목소리들‘을 감안하여 반영하고 오음표를 바로잡은 악보다(보통고전음악 악보에는 수정을 요하는 오음표가 매우 드물다). - P196

우리가 주관적으로 듣고 인지하는 소리와 오케스트라가실제로 발산하는 소리의 차이를 지칭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음향심리학 psychroacoustics 이라는 단어다.  - P200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과거와 사뭇 달라져서 팬을 들고 악보를 기록하는 작곡가들이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요즘은 컴퓨터 파일로 악보 작업을 하기 때문에 업데이트나 수정 사항도 흔적 없이 사라지기가 쉽다. 그런가 하면요즘은 음악학자들과 연주자들이 서로에 대한 존경심을 거의 보이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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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른
다이앤 포시의 <안개 속의 고릴라> 짝꿍책.




이 방 뒤쪽이 어두운 바람에 방안 창문의 유리도 어두웠고, 그래서 내가 서 있는 방 안의 모습을 그저 부옇게 반사하고 있었어. 나는 유리를 향해 다가가면서도 유리 너머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어.

그냥 유리에 비친 내 모습만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지. 그런데 유리앞으로 다가가 잠시 내 눈을 응시하다가 유리 너머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세상에, 그제야 내가 두 개의 또 다른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지 뭐야.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어. 그런데 다음 순간, 내가 본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고는 다시 한 번 뒷걸음쳤어. 어휴, 이젠조금 무서워졌거든.

유리 너머에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다 자란 어른 고릴라였어.

‘다 자랐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다 자랐다는 의미야. 

이 고릴라는오싹 소름이 끼칠 만큼 거대한 게, 마치 커다란 바윗덩어리, 스톤헨지의 삼석탑 같았어. 그가 거대한 몸집으로 무슨 위협을 가한 게 아니었는데도, 몸집만으로도 두려워지더라고.

반면 그는 반은 앉고 반은 누운 아주 평온한 자세로, 낭창거리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왼손에 들고 우아하게 씹고 있지 뭐겠어. - P15

"내 이야기를 들으면 도움이 될까?"

"음, 그럴 것 같군요." 내가 말했어. 

"하지만 그보다 먼저 괜찮다면, 이름부터 알려주시죠."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내가 알기로 그 당시에는 아무런표정도 없이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거야. 그러더니 내 막을 제혀 듣지 못한 것처럼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어.

"나는 적도 부근의 서아프리카 삼림 지대 어디쯤에서 태어났어."그가 말했지. 

"정확한 지역을 알려고 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럴이유를 모르겠어. 혹시 동물원과 서커스단을 위해 동물을 수집한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

나는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어. 
"동물 수집이라니, 금시초문인데요."

"한때, 그러니까 적어도 1930년대에 고릴라를 잡기 위해 흔히들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어. 수집가들은 고릴라 무리를 발견하자마자 암컷 고릴라들을 총으로 쏘고 새끼들을 보이는 대로 잡아들였지."

"너무하군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말했어.

그러다 이 짐승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꾸하더군.

"그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런 기억이 없어. 그보다 훨씬 예전 일들은 다 기억하는데 말이야. 어쨌든 존슨 씨네 사람들은 북동부 소도시에 있는 어느 동물원에 나를 팔았지. 동물원 이름은 모르겠어. 그때까지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거든. 아무튼 나는 여러 해 동안 그곳에 살면서 성장했어."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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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는 작품을 구상하고 창조에 착수한다. 그러나 난제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품은 악상을 다섯 줄 평행선 위의 음표로 옮겨 적어 최대한 애매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수백 가지의 성질 부여와 요건이 더해진다. 이를테면 세게, 여리게, 좀 더 세게, 속도를올려서, 여기에 강력한 강세를 주고, 적당한 길이로 쉬어 가고, 따위의 단서들이다. 

작곡가가 구상한 바를 빠짐없이 옮겨 적은 모눈종이를 가리키는, 간편하지만 부정확한 명칭이바로 ‘음악‘이다. 

내가 ‘부정확한‘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음악은 우선 작곡가의 머릿속에 존재할 뿐 다른 사람이 듣기전까지는 음악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며, 또한 다른 사람이이를 듣기 위해서는 작곡가가 남긴 기보 지시를 중간 매개자(때로는 수백 명에 이르기도 한다)가 읽고 해석하여 실제 소리로 옮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 P96

총보를 읽으려면 악보 전체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나가며 여러 단에 나뉘어 있는 음악을 하나로 통합하여 그소리의 결과를 머릿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좌에서 우로읽어가며 눈으로는 재빠르게 위아래를 훑어 (제일 윗줄의 플루트부터 가장 아랫줄의 콘트라베이스까지) 소리와 악보의 구성 요소들을 두뇌에 입력시켜야 하는 일이다. 

운동신경을 타고나듯 독보재능을 타고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 못한 지휘자들은 다양한 절차의 도움을 받아 총보를 읽는다. 어쨌거나 그 결과는 양쪽이 같아야 한다. 매 순간 악보에 담긴 음악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알아야만 이들 소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도 비로소 갈피가 잡힌다. - P98

그 어떤 예술 작품도 완성은 없다는 말이 있다. 고치고 개선하길 몇 번이고 되풀이하다가 끝내 포기해버린 것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 P110

우리가 음악이라 부르는 언어는 다른 감각기관이 경험하는 것을 나타내는 메타포의 언어다. 그것은 빠르고 느린 진동(서로 다른 음높이)을 높고 낮음의 시각적 세계로 옮겨 이해하려는 시도의 한 방편이다.  - P113

세상에 서로 같은 연주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모든 연주 가 독보적이라는 점을, 
그리고 연주회장에 모인 모든 이가 음악가들과 힘을 모아 음악의 궁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일익을 담당할 거라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 P120

중세 직업별 길드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지휘는 선배가 후배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직접 실습을 통하여 가르치는 것이일반적이다. 설령 학교를 다니며 지휘 과정을 이수한다 해도이는 크게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과거고 현재 간에 자신이 받은 가르침을 이야기할 때 위대한 멘토에 대한 언급을빼놓는 지휘자는 없다. 자신의 인생에 잠시만 머물다 간 카리스마 넘치는 마스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는 운 좋은 젊은지휘자도 있다.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 배울 수도 있고, 더바람직하게는 몇 년간 마스터의 보조 지휘자 노릇을 하며 근거리에서 관찰하고 배울 수도 있다.  - P148

이처럼 번스타인의 두 스승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두다리 건너 리하르트 바그너가 나온다. 

앞서도 말했지만 바그너는 오케스트라 피트를 고안하고, 템포가 초지일관하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음악을 지음으로써 역할을 필수 불가결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그는 언젠가 "지휘 예술은 이행과 변이의 예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지휘자의 신축적이고 탄력적인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 P150

지난 5주간 이해관계에 따라 벌어지던 옹졸한 알력 싸움을 단칼에 끊고 우리가 그해 여름 그곳에 모인 이유와 또 우리가 애초에 음악가가 되기로 작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깨우쳐준 것, 그것이 바로 번스타인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나는 그날 밤 쏟아지는 별빛을 보고 걸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었던 게 부끄러워서 울음이 났고, 그 전까지는 딱히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사내가 말이나 책,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의 존재 자체로서 나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것이 감격스러워 눈물이 흘렀다. - P164

우리 지휘자들은 신체 나이를 거스르는 존재다. 

이십 대시절에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지휘하는 우리는 나이보다 원숙해지고, 토스카니니가 여든을 눈앞에 둔 1946년에 경험했듯이 젊음의 덧없음을 이야기로 그린 푸치니의 <라보엠>을 지휘하는 우리는 언제나 젊은이다. - P168

모든 연주는 음악 작품의 일면만을 드러내 보일 수밖에없다. 아무리 훌륭한 연주라 해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악보위 음표의 번역일 수밖에 없는 연주에, 대단히 독창적이고설득력 있는 무언가를 가미할 수 있는 이를 우리는 최고 수준의 지휘자라 칭한다.  - P171

불레즈와 번스타인, 카라얀은 예술품 복원에 관한 세 가지 다른 견해를 표상한다. 카라얀은 다빈치 그림을 발견한그대로 보존하고 사랑하는 쪽이었다. 그는 도료를 벗기려들지 않았고, 부드러운 윤곽선을 선호했으며, 어둡고 흐릿한 표면이 다빈치가 의도한 바라 믿었다. 레니는 스푸마토기법을 수상쩍게 여겨 배경과 중경의 오리지널 색상을복원하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 불레즈는 엑스레이 기계를사용해 다빈치의 골조와 작업 절차를 냉정하게 분석하길 원했다. - P172

우리는 연습하고 공연한다. 우리의 번역을 받아들이는 건 청중이며, 우리가 만족하건 안 하건 간에 청중이 우리의 행위를 어떻게 인지하느냐가 사실은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 안무가 마사 그레이엄이 후배 애그니스 데밀에게 만족이라는 화두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술가는 만족을 모르는 존재다. 그 어떤 경우 그 어떤 시점에도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기묘하고 거룩한 불만, 축복받은 불만이 있을 뿐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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