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는 비가 온다.
비 오는 날 조명없이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적부터
비오는 날 구름이 만들어준 자연 조도와
종이의 질감이 딱 들어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날.
오늘은 일에서 벗어나 책만 읽고 싶지만,
읽는 생활을 하려면
경제적 활동이 필수이기에 현실과 타협한다.
피아노, 비, 구름, 누런 종이책
오늘도 좋은 날이네.
"여기 있습니다. 드레이크 씨."
에라르가 창으로 들어온 빛 속에 서 있었다.
피아노 뚜껑의 매끄러운 표면은 방의 조잡한 배경막 앞에서 유동체처럼 보였다.
에드거는 피아노에 손을 얹었다. 한동안 말없이 서서 쳐다보기만하던 에드거는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믿을 수가 없어. 정말로.....이건 아주………"
에드거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이 피아노를 안 지 이제 두 달이 다 되었는데, 정글 속에서 걷다가 우연히 본 것처럼 놀랐어요. 미안합니다. 이렇게 충격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아름답군요." - P282
에드거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군요. 전 가끔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물어야 맞을 것 같군요."
"전 그런 점이 오히려 좋습니다. 우린 사고방식이 비슷한 것 같군요. 피아노에는 다른 악기와는 구별되는 무엇이 있어요. 뭔가 당당하고 찬양할 만한 것이 말이죠. 그 점은 제가 아는 샨 사람들끼리 자주 토론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들 말로는 피아노 연주를 들으면 영광스러운 기분이 든다더군요. 피아노는 가장 융통성이 있는 악기여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 P283
그날 밤 에드거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에드거는 누에고치 같은 모기장 안에 누워 손가락을 비볐다. 검지 안쪽에 새로 생긴 굳은살이 만져졌다. 캐서린을 그것을 조율사의 굳은살이라고 불렀는데, 계속해서 줄을 당겨서 생기는 것이었다. 에라르를 생각했다. 분명 더 아름다운 피아노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들어 올려진 뚜껑에 그 모습이 비치는 살윈 강의 이미지 같은 피아노는 본 적이 없었다. 캐럴이 그러한 풍경이 되도록 계획했거나 피아노와 어울리는 방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97
"일하고 있을 때 뭐 보이는 거 있어요?" 그들이 결혼한 직후 캐서린이 피아노 옆에서 들여다보며 물었다.
"뭐가 보여?" "알잖아요. 뭐든, 피아노, 줄, 나." "물론 보이지, 당신이." 에드거는 캐서린의 손을 잡아 입 맞췄다.
"에드거, 당신도 참. 전 당신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묻고 있어요. 전 지금 진지하다고요. 일하는 동안 보이는 거 있어요?" "왜 안 보이겠어. 그런데 왜?" "당신이 꼭 다른 곳으로, 음의 세계 같은 곳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서요."
에드거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참 신기한 세계겠다." - P310
"선생님에겐 누군가가 있겠죠." "있어요." 화제가 캐럴에서 벗어난 것에 안도하며 에드거가 천천히 말했다.
"캐서린이에요."
"좋은 이름이네요."
"네…… 그래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너무 익숙해져서 이젠 그게 이름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지만요. 어떤 사람을 아주 잘 안다는 건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거죠."
킨 므요가 에드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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