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른
다이앤 포시의 <안개 속의 고릴라> 짝꿍책.

이 방 뒤쪽이 어두운 바람에 방안 창문의 유리도 어두웠고, 그래서 내가 서 있는 방 안의 모습을 그저 부옇게 반사하고 있었어. 나는 유리를 향해 다가가면서도 유리 너머를 볼 생각은 하지 않았어.
그냥 유리에 비친 내 모습만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지. 그런데 유리앞으로 다가가 잠시 내 눈을 응시하다가 유리 너머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을 때, 세상에, 그제야 내가 두 개의 또 다른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지 뭐야.
나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어. 그런데 다음 순간, 내가 본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닫고는 다시 한 번 뒷걸음쳤어. 어휴, 이젠조금 무서워졌거든.
유리 너머에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다 자란 어른 고릴라였어.
‘다 자랐다‘라는 말은 그야말로 다 자랐다는 의미야.
이 고릴라는오싹 소름이 끼칠 만큼 거대한 게, 마치 커다란 바윗덩어리, 스톤헨지의 삼석탑 같았어. 그가 거대한 몸집으로 무슨 위협을 가한 게 아니었는데도, 몸집만으로도 두려워지더라고.
반면 그는 반은 앉고 반은 누운 아주 평온한 자세로, 낭창거리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왼손에 들고 우아하게 씹고 있지 뭐겠어. - P15
"내 이야기를 들으면 도움이 될까?"
"음, 그럴 것 같군요." 내가 말했어.
"하지만 그보다 먼저 괜찮다면, 이름부터 알려주시죠."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내가 알기로 그 당시에는 아무런표정도 없이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는 거야. 그러더니 내 막을 제혀 듣지 못한 것처럼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어.
"나는 적도 부근의 서아프리카 삼림 지대 어디쯤에서 태어났어."그가 말했지.
"정확한 지역을 알려고 해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럴이유를 모르겠어. 혹시 동물원과 서커스단을 위해 동물을 수집한다는 얘기 들어본 적 있어?"
나는 깜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어. "동물 수집이라니, 금시초문인데요."
"한때, 그러니까 적어도 1930년대에 고릴라를 잡기 위해 흔히들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어. 수집가들은 고릴라 무리를 발견하자마자 암컷 고릴라들을 총으로 쏘고 새끼들을 보이는 대로 잡아들였지."
"너무하군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말했어.
그러다 이 짐승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꾸하더군.
"그 사건에 대해서는 사실 아무런 기억이 없어. 그보다 훨씬 예전 일들은 다 기억하는데 말이야. 어쨌든 존슨 씨네 사람들은 북동부 소도시에 있는 어느 동물원에 나를 팔았지. 동물원 이름은 모르겠어. 그때까지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거든. 아무튼 나는 여러 해 동안 그곳에 살면서 성장했어." - P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