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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는 맛 - 먹고 사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작가들의 일상 속 음식 이야기 ㅣ 요즘 사는 맛 1
김겨울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2월
평점 :
코로나로 인하여 일상이 뿌리 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 코로나 걸리면 미각을 상실한다는 썰이
있던데 가뜩이나 다리도 짧고 입도 짧은 나로선
왠지 식음전폐 모드가 되겠다 싶어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먹는데 모든 맛이 흙맛으로 수렴되고 있다.
얼마 전에 눈으로 맛있게 읽은 에세이를 꺼내 다시
갈무리하며 바닥 친 입맛을 부스터해 보았지만
효과는 그닥. 뿌앵-그럼에도 코로나 시국 먹고 사는
데 진심인 작가들의 음식 이야기를 읽으니
삶의 의지가 감돈달까?
요즘 사는 맛
김겨울. 김현민. 김혼비. 디에디트
박서련. 박정연, 손현. 요조
임진아. 천선란. 최민석. 핫펠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아! 그 사람‘하는
요즘 핫한 작가들의 에세이 모음이라니!
그중 특히 더 좋아하는 김겨울, 김혼비, 천선란
작가는 음식으로 어떤 이야기를 한 상 차려낼지
기대가 가득했다.
책 이야기를 하자면 김혼비는 여전히 좋고 핫팰트 의외로 좋았고 , 임진아 작가는 그림체처럼 폭신했다.
읽을수록 먹고 싶은게 생각나는 책이다. 평양냉면, 팟타이, 돈까스가 먹고 싶던 책. (아, 돈까스 부분 읽는 날 점심에 돈까스 나와서 신기했지!) 나한테 이렇게 ˝음식˝주제로 글을 쓰라고 하면 난 뭘 쓰려나 생각했지만 떠오르는게 없어서 시무룩해지기도 했다. 먹기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게 먹으면서, 쓰라니 딱히 쓸게 없구나.... 하지만 생각해보니! 덜먹어서 그런가 싶어서, 더 열심히 먹어보기로!
먹을때 마저 지구를 생각하는 작가들 덕분에 지구가 쪼끔은 더 버티겠구나 싶지만..... 그 방법이 채식이라면 나는 힘들겠다고 생각한 육식동물인 나.
들어가기 전 작가별 소개가 담긴 페이지는
마치 코스 요리의 스타터처럼 메인 요리를 먹기 전
입맛을 돋구는 역할을 해 준다.
김겨울 작가의 에세이는 이 분이 본업이
요리 칼럼니스트인가 혹은 요리사 출신인가
의심케하는 음식에 대한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나 토마토에 대한 애정은 그야말로 이 책을
읽는 자, 토마토를 영업당하리! 당장 책을 덮고
토마토 마리네이드와 가스파쵸를 만들지어다!
그렇게 토마토 펀치를 날리다가 치즈, 요거트,
딸기로 변주되는글 속에서 미각 상실했다 말한
나님은 허언증인가 싶게 상상하며 한껏 배불렀었네.
영화 전문기자 겸 영화감독 김현민의
<바나나 퍼슨의 분투기>에서 바나나에 대한
필자의 애정이 차고 넘친다.
“바나나 걸이에 걸어둔 아름다운 바나나 한 송이를
보면, 프리츠 한센 꽃병에 섬세하게 꽂아둔 꽃을
감사하는 일만큼이나 흡족하다. 나는 바나나에
진심이다.” 대목에서 누군가에겐 식재료 그 자체인
바나나가 어떤 이에겐 이토록 찬양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그렇다면 나에게 이런 미학을
느낄만 한 식재료는 뭐가 있는지 선뜻 떠오르지
못한 것을 보니 역시나 나는 먹는 것엔 진심이 없구나.
퇴근하는 것이 좋아서 출근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직장인이자 틈틈이 글을 쓰는 에세이스트 김혼비의
소울푸드가 시리얼이라는 소리에 ‘응, 소울푸드라며.
그건 좀 뭔가 대단하고, 근사한 것 아냐?’라는 내
생각을 뿌시고 흔해 빠진 시리얼이 소울푸드라니!
그런데 글을 읽으니 납득이 가네. 이만하면 소울푸드
하겠네 싶게 말이지.
대접에 한 가득 따른 우유 위에 시리얼을 부으면서
부터 시작되는 3단계의 여정이 다 마음에 들었다.
우유가 살짝 묻는 바삭한 시리얼을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는 1단계를 거쳐, 우유에 푹 젖어 눅눅해진
내가 가장 좋아했던 2단계를 지나, 시리얼 종류에
따라 고소해지거나 달콤해진 우유를 꿀꺽꿀꺽
들이키는 마지막 단계까지,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우와! 아침부터 과자 먹어!’라는 느낌이
나를 신나고 들뜨게 했다.
-어쩌면 이건 나의 소울푸드 중-
김혼비 작가의 귀엽고 사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글에 오랜만에 그럼 나도 시리얼 3단계 코스를
느껴보고 싶었다.(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소개한
음식을 먹어봐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작가가 힘들고 지친 시기에 친구 J가 만들어 준
‘진짜 미친 사리곰탕면’에선 정말 이걸 이렇게
만든다고? 이게 이렇게 만들 일인가! 놀라우면서
이런 정성을 들여 보양식을 만들어 주는 친구가
있음에 부럽기까지했다.
물론 이 모든 게 단번에 이뤄지진 않았다. 핏물을
빼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듯이. 하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힘든 시기가 어느새 저 멀리
지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게 J의 ‘진짜 미친 사리
곰탕면’ 덕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내 것일 수 없다고
여겼던, 내가 소중하다는 감각과 나를 다시 이어준
한 끼의 식사. 어떤 음식은 기도다. 누군가를 위한.
간절한 .
-한 시절을 건너게 해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