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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이야기 ㅣ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4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4월
평점 :
"당신은 살아가면서 당신이 가장 사랑하고, 당신을 유일하게 사랑하는 생명체가, 아, 인간이, 죽어버린 내 불쌍한 아가만큼 순수하고 다정한 그 인간이, 차라리 죽음이 행복한 것일 정도로 모두에게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을 보게 되리라. 바로 이 피의 이름으로! 들으소서, 오, 신성한 성자들이여, 아무도 돕지 않는 이들에게 늘 힘을 주소서!" _114 「빈자 클라라 수녀회」
일상을 죄어오는 불안,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고딕 문학의 고전
2월에 고딕 단편집을 읽고, 고딕 문학에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에세 시리즈 중 『고딕 이야기』를 특히나 기다려왔다.
문학에서 고딕은 초자연적 현상과 같은 경이로움, 떠도는 유령의 두려움, 현재를 엄습하는 과거의 공포를 이야기한다(p.360)는 옮긴이의 말로 고딕의 개념적인 용어부터 정리되었고, 7개의 중단편 이야기를 읽으며 고딕 문학의 맛을 알아간다.
옛날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한 편 한 편에 빠져든다.
전체적으로 질투, 욕심, 배신, 허영심, 이기심, 의심, 두려움 등 우리 내면에 내제되어 있는 것들이 커지며 폭발하는 공포를 다루고 있는것 같다.
처음엔 밤에 안 읽는걸 추천하셔서, 환한 대낮에 시작했지만, 솔직히 밤에 봐도 큰 무리는 없는것 같다.
초자연적 현상의 공포의 무서움보다는 우리 안에 내제되어 있는 것을 흔드는 공포가 포인트인 것같다.
일곱 편 중 「늙은 보모 이야기」, 「빈자 클라라 수녀회」, 「굽은 나뭇가지」를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늙은 보모 이야기」는 내가 생각할 때 딱 고딕 소설의 느낌이 물씬 풍겼고, 짧지만 강력했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오르간 소리로 공포의 분위기를 풍겨주며, 저택의 숨겨져 있는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질투, 비극의 시작.
「빈자 클라리 수녀회」와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는 '저주'라는 같은 소재를 다르게 풀어간다.
왜 저주는 잘못한 당사자가 아닌 대를 이어 나타날까 생각해봤는데, 계속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점점 커져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공포가 그 사람을 옭아매어 저주로 표현한 것같다.
「빈자 클라리 수녀회」는 중편이라 이야기가 한데 모아지는 스케일이 커서 읽는 즐거움이 컸다.
결국은 고통을 받는 건 저주를 내린 당사자. 저주의 시작인 사람의 진정한 사과의 부재. 참으로 모순적이었고, 결말까지 참으로 안타까웠던 이야기.
의심의 씨앗이 날로 커져 결국은 부자가 서로 믿지 못해 죽음에 이르는 비극을 그린 「그리피스 가문의 저주」.
지금의 현실과도 충분히 맞닿아 있는 「굽은 나뭇가지」.
부모와 자녀의 미묘한 그 관계. 부모는 자식이 잘 되길 바라고, 그 자식은 다른 세계를 맛보고 허영심과 욕심이 가득찬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아닌,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며 우리 인간의 다양한 내면의 모습을 휘젓는 모습을 보며 지금의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개스켈이 그리는 인간 내면에 대한 통찰과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느낄 수밖에 없는 근원적 두려움(p.362)을 느끼고 싶다면.
일곱 편의 탄탄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고딕 이야기』를 펼쳐보세요.
다소 망설인 후 벤저민은 200파운드를 받는 것에 동의하고 그 돈을 최대한 활용해서 사업을 시작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래놓고도 그는 스타킹에 모인 15파운드를 갖고 싶은 기이한 갈망을 품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건 아버지의 상속인인 자신의 돈이라고. 그는 곧 그날 저녁 평소 베시에게 보이던 상냥함을 잃을 채 그녀에게 질투를 느꼈다. 아버지가 열심히 벌어 소박한 생활로 저축한, 곧 소유하게 될 200파운드보다 가질 수 없는 15파운드에 더 집착했다. _283 「굽은 나뭇가지」
[에세 서포터즈 활동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