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순간과 주목의 순간은 같다.` 엘리어트의 시 한 구절입니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가명으로 발표했던 여섯 편의 소설들을 읽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했던 애거서 여사는 언제나 살인사건을 배경으로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과 강한 의지`을 다루는 작가입니다. 얼마전 자신은 소나무가 되지 못하는 존재일 뿐이라며 목숨을 끊은 영화배우가 있었습니다. 엘리어트는, 그리고 애거서 여사는 말합니다. `장미도, 주목도 다를 건 하나도 없다.`고. 처참해 보이는 인생이지만,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인생이지만... 다시 보십시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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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클래식 보물창고 37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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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한창 사춘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던 90년대에

'데미안'은 우리 전체의 '페르소나'였다.

소설책 한 줄 읽지 않는 아이라도 '알과 아프락싸스'를 모르는 아이는 

거의 없었을 정도니까.


그 때부터 나에게, 헤르만 헤세는 '위로하는 작가'이다.

달콤한 환상과 로맨스가 아니라, 치열한 사유와 완전함에 대한 선망이 

지금 내가 묶여 있는 삶의 비루함을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해 주는.


『싯다르타. 한 인도의 시』는 

약 1년 반 동안 거의 창작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우울증에 빠졌었던 헤세가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후 192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헤세는 1919년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지만,

싯다르타가 끊임없이 고뇌하고 투쟁하는 금욕주의자로서 나타나는 부분까지 쓰고 난 다음, 

스스로의 체험 없이 이를 계속 집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느껴 

1년 반의 자기 체험기간을 거친 후에야, 

이어지는 싯다르타의 세속 생활을 다시 쓰기 시작해 

1922년에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이 <싯다르타>는 실화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의 깊은 고뇌와 번민, 깨달음이  

- 그것이, 한낱 중생인 나에겐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의 본질'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전해온다.


어린 시절부터 '명료하게 사고하는 정신의 광채'에 둘러싸여 있던 브라만의 장자 싯다르타는

지혜와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갖춘,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일말의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인간의 근원, 아트만을 찾기 위해 친구 고빈다와 함께 떠나 탁발승이 되어 금욕 생활을 한다.


그의 눈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거짓이고 무가치하다. 고통이 바로 삶이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가장 궁극적인 그것-위대한 비밀'을 깨닫기만을 목표로 수행하지만,

번번이 '자신의 자아가 되고야 마는 윤회의 고통'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붓다를 만나지만, 

어떠한 가르침이더라도 진정한 깨달음의 길을 줄 수 없으며, 

모든 이들은 각자가 깨달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친구 고빈다를 두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배울 수 없었던,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은 '자아'라는 것을 깨닫고

'완전한 자신'이 되어 살기로 결심한다.


무의미했던 모든 사물들 안에 깃든 의미와 본질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는 어린애처럼 즐거운 놀이하듯 세속의 삶을 즐긴다.

아름다운 창녀 카말라와 부자 상인 카와스와미를 통해 애욕과 물욕을 배우고 즐기지만,

중년에 이른 어느 날,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고 홀연히 떠난다.

그는 소름끼치는 공허감 속에 죽으려 하지만, 그 순간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은 깨어나고

자신이 살아야 했던 모든 것이 

'새로운 싯타르타'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기쁨에 넘친다.


그리고, 강가에서 나룻배를 젓는 늙은 뱃사공으로 살아가며 

또 끊어낼 수 없는 정과, 상실의 고통을 겪으며 완성되어간다.

아니, 이미 처음부터 완전했던 세상의 일부가 되어 평화로워진다.



"이 세계는 매 순간 완전해. 모든 죄업은 이미 그 안에 자비를 품고 있어...

 모든 게 선하고, 모든 게 완전하고, 모든 게 브라만이지,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선량해 보여."(p.204)


여전히 번뇌하는 옛친구 고빈다를 만나 전하는 그의 깨달음은 

쉽고도 오묘하다.

그가 말했듯,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스스로 깨닫지 않는 한 이 '완전함'을 우리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는 알지 않았는가?

평생을 괴로워하며 번뇌했던, 세 번의 죽음을 겪어냈던 싯다르타 덕에, 

그 싯다르타를 이해하기 위해 똑같은 괴로움에 몸을 던졌던 헤세 덕에,

나는 그들을 따라 마음을 여행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강이 되고, 하나의 세상이 되어준 아름다운 시인의 마음이여......

삶에 허덕이는 나는 아직 세상은 깨닫지 못하겠으나,

그 마음이 전해주는 선함과 자비는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넘어 

이리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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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을 통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 책장에 어느 때부터인가 꽂혀 있는 오래된 그림책이 있어요.
그 책의 주인공이 코끼리 왕 바바입니다.
지혜롭고도 조용한, 하지만 힘있는 동물의 이미지가 강한 코끼리가
참 단순하면서도 귀엽게 그려져 있어 당장 친근감이 들었지요.

바바를 또 만나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눈에 띈 요 녀석!

맞아요, 바바였어요.
아, 폐하를 제가 너무 막 불렀나요? ^^:;
제가 옛날 본 그 그림책에선 왕이라는 호칭은 없었기에, 결례를 용서하시길~ ^^

시리즈인지도 몰랐던 '바바'시리즈의 첫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처음엔 숲 속의 아기 코끼리였던 바바가 코끼리 왕국의 왕이 되네요.

엄마 등에 업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아기 코끼리 바바가 사냥꾼의 총에 엄마를 잃고
엉엉 울며 도망치던 바바가 며칠을 달린 끝에 도시에 다다르고
신사들의 멋진 모습에 반하고
친절한 귀부인을 만나죠.
커다란 가게(사실 백화점이지요.)에 들어가서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신기해 열 번도 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바바의 모습은
꼭 우리 아이들 같아 웃음이 나요.
아마, 이 책이 좀 뒤에 쓰여졌다면, 엘리베이터 대신 에스컬레이터에 반했을지도 모르지요.

귀부인과 친구가 되어 멋진 신사가 되고 공부도 하고 자동차도 운전하며 
도시에서 2년을 지낸 바바는
우연히 만난 사촌동생들을 따라 숲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부모님에게 말도 하지 않고 멀리 왔다고 엄마 코끼리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두 사촌동생들의 모습은 정말 실감 납니다.
눈썹을 잔뜩 찌푸린 엄마 코끼리들만 보아도 와...얼마나 벗어나고 싶은 순간일지......

때마침 독버섯을 먹은 코끼리 왕이 서거하고, 
근사한 차림과 멋진 자동차와 함께 등장한 바바는 새로운 왕으로 추대됩니다.
사촌 셀레스트와의 혼인도 이루어지지요.

마지막 페이지는 바바와 셀레스트가 커다란 열기구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끝납니다.
코에 손수건을 물고 흔드는 둘의 모습이 마지막까지 웃음을 자아내게 해요.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린이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이유를 알겠네요.
친구들과 뛰어놀고 엄마 등에 업히는 것에 행복해 하고, 엄마 자장가를 그리워 하는 바바는
우리 아이들을 닮았어요.
두려움 없이 여행을 떠나고 모든 것을 열심히 배우는 모습이 어른인 저도 부럽네요.

부드러운 필치와 따뜻함이 가득한 그림들 속에 
소소하게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어쩌면 단순한 선 몇 개로 다양한 표정들을 이렇게나 실감나게 그려내신 것인지
보면 볼수록 감탄을 하게 되네요.

바바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지, 거기선 또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배우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귀여운 아기 코끼리를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눈물짓던 귀부인에게도 
머지 않은 때에 돌아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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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클래식 보물창고 35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아영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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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의 작품들과 천재성, 특히 삶에 대해선 

다른 어떤 작가에 비교해도 더 자세할 정도로 알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많은 일본 작가들이 그에 대해 - 무한한 경외심을 담아 - 언급해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속내를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그리운' 아버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그대로도 영화의 한 소재로 차고 넘칠 듯한 그 충격적이고 우울한 삶의 행적이

오사무의 작품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틀림없이, 그를 잡아먹은 우울과 허무가 나까지 물들일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인간 실격'을 펼쳐든 것은 나로선 꽤나 큰 '전기'인 셈이다.

어쩌면 마흔을 바라보는 시간에 서니-내 삶의 시간이 그의 일생보다 길어지고 나니-

조금은 '내 삶의 뿌리'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일 수도 있고.



제목만으로도 참 무섭다.

'인간 실격'이라니.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인간 밖에 될 수 없는데, 인간도 될 수 없다니...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 이야기는 의외로...슬프다.

한없이 슬프다.


웃음이 아닌 웃음을 짓는 아이,

살아 있는 인간의 느낌이 들지 않는, 괴이한 미모의 남학생,

어떤 표정도, 인상도 없어 오싹하고 기분 나쁜- 나이도 전혀 알 수 없는 - 남자.

이 세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 유명한 문장...

'수치스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가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은 완전히 낯설다.

'저에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혹스럽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행복에 대한 관념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념이 완전히 어긋난 듯한 불안 때문에

매일 밤 전전긍긍하며 신음했고, 미칠 뻔하기까지 한 이 남자.

어릴 적부터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왔지만, 항상 삶이 지옥 같았던 남자.

주변 사람의 괴로움, 사람들의 생각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에 대화가 두렵고 인간이 두려워

인간을 향한 최후의 구애였던 '우스갯짓'으로 자신을 감췄던 아이는

어느새 한마디도 진심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쨋든 그들,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우스갯짓을 서비스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존법을 익혀나가는 아이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처참할 정도로 슬프다.

그러나, 내가 그 아이의 부모고 형제였다 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모른다고 하는 아이는, 하지만 너무나 영민하다.

'서로 속이며, 게다가 모두 다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서로 속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한,

실로 훌륭한, 그야말로 맑고 밝으며 명랑한 불신의 예가 

인간 생활에 충만한 듯이 여겨집니다.'라는 어린 시절의 깨달음엔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감수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추악함'이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어릴 때 알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하며 오묘한 비법'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생을 몸부림치게 된 것이다.


그에게 인간은 늘, '무섭지만 보고 싶은' 존재이다.


하지만,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가던 그에게도 낙원은 있었다.

'무구한 신뢰심'으로 삶을 밝혀주었던 요시코.

그러나, 그 아내마저도 신뢰로 인해 더럽혀지고, 요조는 완전히 망가진다.


세상이 보기에

요조는 어려움 없이 자라, 너무 의존적이고, 유약하고, 여자들을 이용하고, 술과 약에 취한

정말 '구제불가능한 폐인'이다.

그러나, 다시 보면

구제 못할 것은 세상이고, 망가진 것은 '인간'이다.

요조가 그렇게 이해하고 싶고, 할께하고 싶었던 '인간'.


요조의 죄는 단지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다는 것뿐.


'인간실격'이라는 제목은 여기서 주어가 바뀐다.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거짓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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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클래식 보물창고 35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아영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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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읽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의 작품들과 천재성, 특히 삶에 대해선 

다른 어떤 작가에 비교해도 더 자세할 정도로 알고 있다.

그것은 참으로 많은 일본 작가들이 그에 대해 - 무한한 경외심을 담아 - 언급해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속내를 알 수 없었고, 그래서 더 그리운' 아버지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그대로도 영화의 한 소재로 차고 넘칠 듯한 그 충격적이고 우울한 삶의 행적이

오사무의 작품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틀림없이, 그를 잡아먹은 우울과 허무가 나까지 물들일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이 '인간 실격'을 펼쳐든 것은 나로선 꽤나 큰 '전기'인 셈이다.

어쩌면 마흔을 바라보는 시간에 서니-내 삶의 시간이 그의 일생보다 길어지고 나니-

조금은 '내 삶의 뿌리'에 대한 믿음이 생겨서일 수도 있고.



제목만으로도 참 무섭다.

'인간 실격'이라니.

인간으로 태어났는데, 인간 밖에 될 수 없는데, 인간도 될 수 없다니...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 이야기는 의외로...슬프다.

한없이 슬프다.


웃음이 아닌 웃음을 짓는 아이,

살아 있는 인간의 느낌이 들지 않는, 괴이한 미모의 남학생,

어떤 표정도, 인상도 없어 오싹하고 기분 나쁜- 나이도 전혀 알 수 없는 - 남자.

이 세 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이 유명한 문장...

'수치스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살아왔습니다.'가 등장한다.

그러나, 바로 다음 문장은 완전히 낯설다.

'저에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혹스럽다.


이런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행복에 대한 관념과 세상 모든 사람들의 관념이 완전히 어긋난 듯한 불안 때문에

매일 밤 전전긍긍하며 신음했고, 미칠 뻔하기까지 한 이 남자.

어릴 적부터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 왔지만, 항상 삶이 지옥 같았던 남자.

주변 사람의 괴로움, 사람들의 생각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기에 대화가 두렵고 인간이 두려워

인간을 향한 최후의 구애였던 '우스갯짓'으로 자신을 감췄던 아이는

어느새 한마디도 진심을 말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쨋든 그들,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는 없는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우스갯짓을 서비스하는 것으로 자신의 생존법을 익혀나가는 아이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처참할 정도로 슬프다.

그러나, 내가 그 아이의 부모고 형제였다 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을 모른다고 하는 아이는, 하지만 너무나 영민하다.

'서로 속이며, 게다가 모두 다 이상하리만큼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서로 속인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한,

실로 훌륭한, 그야말로 맑고 밝으며 명랑한 불신의 예가 

인간 생활에 충만한 듯이 여겨집니다.'라는 어린 시절의 깨달음엔 

우린 아무렇지도 않게 감수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추악함'이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너무나 어릴 때 알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하며 오묘한 비법'으로 받아들이고

그런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생을 몸부림치게 된 것이다.


그에게 인간은 늘, '무섭지만 보고 싶은' 존재이다.


하지만,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가던 그에게도 낙원은 있었다.

'무구한 신뢰심'으로 삶을 밝혀주었던 요시코.

그러나, 그 아내마저도 신뢰로 인해 더럽혀지고, 요조는 완전히 망가진다.


세상이 보기에

요조는 어려움 없이 자라, 너무 의존적이고, 유약하고, 여자들을 이용하고, 술과 약에 취한

정말 '구제불가능한 폐인'이다.

그러나, 다시 보면

구제 못할 것은 세상이고, 망가진 것은 '인간'이다.

요조가 그렇게 이해하고 싶고, 할께하고 싶었던 '인간'.


요조의 죄는 단지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다는 것뿐.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은 여기서 주어가 바뀐다.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거짓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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