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람.

 

 

이것만으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에는...

그것이 동화가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어린 시절부터 우리 곁에 있었던 수많은 동화들은

삶의 중요한 순간순간, 자연스러운 암시를 걸어온다.

'이건, 그 이야기랑 똑같잖아?'

'아, 시작은 비슷했는데 끝은 역시 다르네...'

완성된 문장으로 생각하든 어렴풋이 느끼든,

이미 동화들은 '집단 무의식'처럼 우리 인생의 견본품이 되어 있다.

특히, 인간이 일생이란 긴 시간을 거쳐도 절대 알 수 없는 하나의 명제,

'이성'과 '사랑'에 있어선

그 불안과 기대에 맞먹는 다양한 샘플들로

우리를 착각과 오해에 빠져들게 한다.

(음, 그러고 보니...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 '명제'다...^^:)

 

설레는 스물, 왕자와 공주 같은 서정우와 한서영에게 각각 첫눈에 빠져든 두 사람.

당연한 결말인 것처럼, 명제와 장미의 설렘은 그저 동경으로 끝나고

'역시 동화는 내 것이 아니야.'란 씁쓸함만 남긴다.

그리고, 그 한참 후...

동화였다면 삽화의 한 구석에나 그려져 있었을 평범한 두 사람이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둘은 매순간 각자 다른 동화를 써가고 읽어내려간다.

한 순간에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의 마음은 서로 다른 진실을 느끼고 아파한다.

 

두 사람은 이미 쓰여진 동화들을 되뇌었기에 어쩌면 서로를 찾지 못했던 것일까?

몇 번을 죽을 만큼 상처입히고 슬프게 한 다음

둘은 자신들의 동화를 찾는다.

어느 이야기 속에도 없었던 '눈물 공주와 침묵 왕자'라는 동화.

 

세상에는 없는 동화를 찾는 것,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다.

 

'이건 사랑이 아니잖아.'라고 수없이 되뇌었던 그 자리에

나의, 우리의 사랑이 있는 걸지도...

 

<기억에 남는 한마디>
라이프니츠는 말했다. 이 우주는 선택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신이 고른 최선의 세계다. 라이프니츠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게 되는 순간을 명제는 이제 하나 더 갖게 되었다. 라이프니츠는 연인과 키스를 하고 나서 그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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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마게 푸딩 - 과거에서 온 사무라이 파티시에의 특별한 이야기
아라키 켄 지음, 오유리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촌'이라는 한 음절에서 이미 '촌스럽다'란 느낌을 떠올리고,

다음에 와붙는 '푸딩'이라는 극히 서양적인 명사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드는 호기심...

'촌마게'가 뭐지?

발음에서 오는 선입견과는 완전 다른 느낌의 일본어 뜻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다행스럽게도 책을 펼쳐 읽자마자 첫 페이지 일곱째 줄에 이 단어와 역주가 등장한다.

'에도 시대 남자의 머리 모양으로 정수리까지 밀고 남은 머리를 뒤통수에서 틀어올린 것'

아, 이거...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희한한 헤어스타일?

도대체, 왜!! 누가, 저런 모양을 개발해 냈는지...

아무리 멋진 남자도 웃기게 만들 수 있을 듯한 머리모양 아닌가?

여튼, '촌마게'란 뜻을 알게 되자 '촌마게 푸딩'은 더욱더 오묘한 색채를 띄게 된다.

 

내용은 간단하다.

촌마게를 하고 긴 칼도 두 자루나 찬 에도 시대 사무라이가 현대 일본으로 타임슬립해와 좌충우돌하다

환상적인 요리 솜씨를 발휘해 최고의 파티쉐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가 다시 사라지는 이야기.

 

180년 전 사무라이 야스베가 내뱉는 현대에 대한 짧은 한 마디 한 마디의 감살들은

그 현대에 속해 살아가는 우리를 잠시 그 초고속의 도로에서 내려놓는다.

 

"이 세계에서 살려면 그 에너지라는 것이 꽤 많이 필요하겠소이다."

 

우연히 야스베를 만나 졸지에 그를 집안에 들어앉히게 된 히로코도

그와 함께 있으면서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얻고 대신 무엇을 잃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한, 이 소설은 일종 '주부 환타지'의 절정을 달리는데,

그건 히로코의 집에 머무는 대신 살림을 떠맡겠다고 자청한 이 사무라이는 그야말로 '천상 주부'의 면모를 엿보인다. 

완벽한 요리, 청소, 빨래에 응석 많았던 아들 도모야의 양육과 교육까지 책임지는 야스베 덕에

히로코는 생활의 여유를 얻고 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룬다.

 

아, 이런 '주부 사무라이'리면 나라도 데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야스베.

그의 이런 철저함과 도전정신, 책임감, 뚜렷하고 간결한 사고방식은 또한 그 180년 전 세계에서 온 것이다.

볼품없고 헛점투성이인 이 사나이의 매력에 일본 열도가 술렁이는 것은 그 정신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당연히 예상되는 결말대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야스베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다.

그리고, 현실에 남은 히로코와 도모야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 그가 만든 푸딩을 맛보며 그를 떠올린다.

 

즐겁고 가벼운 이야기지만, 구석구석 현대인의 삶에 대한 직시와 호통이 가슴을 찔러와 더 기억에 남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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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따먹기 법칙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4학년 1학년 국어교과서 국어 4-1(가) 수록도서 작은도서관 33
유순희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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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도덕'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과목이라고 생각했었다.

'옳다'고 느껴지는 것이 늘 답이었으니까.

늘 '뭐, 이런 걸 물어봐?'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도덕과목 시험지...

대부분은 고민할 필요도 없던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그 쉬운 답대로 살아간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로는 알고 있는 답을 몸은 따르지 못한다.

내가 힘들고 불편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이 쯤이야.'해 버린다.

 

지우개 대장 상보.

공무도 못하고 지저분하고 구리구리한 냄새를 풍기는 녀석이다.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 될까봐 무서웠던 남자아이들이 떠오른다. 항상 콧물이 흐르고 머리는 까치집 같았던 남자아이들...

하지만, 지우개 따먹기에 있어서는 절대무적인 상보.

그도 그럴 것이, 상보에겐

이미 삼십여년 전 지우개 따먹기 대장이었던 아빠에게서 전수받은 지우개 따먹기 법칙들이 있다.

2대를 걸쳐 완성된 10개의 비책들을 통해 상보와, 상보의 짝꿍 홍미, 상보와는 모든 것이 상반되는 모범생 준혁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엔 납작한 지우개는 피하고, 가벼운 지우개를 사용하라는 충고로 시작하는 상보의 비책들은, 처음엔 단순히 '이기기 위한 노하우'들 같지만

뒤로 갈수록 '지우개 따먹기'를 진정으로 즐기기 위한 마음 자세들에 대한 충고들이 된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킬 것, 꼭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것, 한 가지만 생각하지 말 것, 지우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미리 겁먹지 말 것, 상대는 나의 친구임을 기억할 것......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지우개는 더이상 단순한 '지우개'가 아니게 된다.

상보의 지우개 상자 속, 제각각 다르게 생겼지만 모두 소중한 친구 같은 지우개들은 바로 아이들 하나하나의 인생이고, 그들 자체이다.

뭔가를 남보다 더 잘할 수도 있고, 선천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타고 났을 수도 있지만...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한, 즐거울 수 없다.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똑똑하더라도 꼭 이길 수는 없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가는 것,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순간이 꼭 있기 때문이다.

 

상보에게 그 순간은 지우개의 왕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맘모스 지우개 쟁탈전 이후에 온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엄청난 크기의 맘모스 지우개.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을 것 같은 엄청나게 큰 지우개, 마음에 꼭 드는 지우개,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 지우개를 따고 의기양양했던 것도 잠시,

항상 잘난 체 하던 준혁이가 고개를 숙이고 삼촌 것을 몰래 들고 나온 것이라며 돌려달라고 부탁하자

거절하고 돌아서지만 결국 마음을 돌이킨다.

너무나 갖고 싶은 것을 가진다 한들, 상대가 나의 친구라는 것을 잊는다면 '지우개 대장'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더럽혀지게 된다고 말하는 상보의 모습은 정말 멋지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이런 순간을 맞게 될까?

'옳다'고 알고 있는 '법칙'과 '갖고 싶다'는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간들.

나이 들수록 법칙보다는 욕심을 따르고,

거울을 들여다보기 두려워지는 시간들이 많아진다.

'나'라는 사람이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마지막에 친구들과 '지우개 따먹기 법칙'을 나누는 상보를 보며 또 한번 배웠다.

세상의 어떤 법칙보다 앞서는 것,

그것은 '함께함'임을...

그것이 그 모든 '옳음'의 원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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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람을 잘 그려요 엄마 아빠와 함께 신나게 그리기 2
레이 깁슨 지음, 신형건 옮김, 아만다 발로우 그림 / 보물창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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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람을 잘 그려요>라는, 제목에서부터 자신감이 넘치는 그림책이예요!

알고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의 그림책'이죠~^^

여섯 살 우리 꼬맹이는 요즘의 취향대로 '천사'를 그리겠답니다~

바로, 요 귀여운 아기 천사예요~

 

 


 

 

바로 뛰어가서 스케치북이랑 색연필을 책상 위에 정렬시킨 후, 열심히 그리기 시작합니다.

 

음. 머리를 그리고 머리카락 그리고,
눈, 코, 입도 그리고,옷이랑 손발...

 



여자 천사니까, 머리엔 리본은 필수!

이제 색칠해야지~
 


 


 

짜잔~ 완성!!

 


 

어째 아기 천사가 아니라, 8등신 미녀천사가 된 듯..^^;;

날개에도 핑크빛으로 장식을 넣고,

옷에도 레이스를 가득 달아주었네요~

천사가 너무 멋쟁이인데요? ^^:

 

이번엔, 예은이의 전문분야라 할 수 있는 '여왕'을 그리시겠답니다~

'왕'은 안 그린대요..^^:;

옆에 알록달록 예쁜 성까지~ ^^
 


 

책 속의 그림은 이렇답니다~

닮은 듯 다른 분위기네요~
 


 

발레리나도 그리고...
 


 

김연아 언니처럼 피겨스케이팅 선수도 그렸어요.

 

근데,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긴 드레스를 입혀야 한다네요.

머리는 발끝까지 길어야 하구요..^^:;

그나마, 스케이트 탈 때 휘날리지 않도록 머리는 땋아주었답니다..^^;


 


 
<난 동물을 잘 그려요>로도 신나게 놀았는데,
 이 책도 아이가 참 좋아해요~
 
늘 엄마, 아빠, 나, 공주만 그리다가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그리게 되어 좋네요.
 
처음엔 따라 그린다는 것이 아이의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저해할까봐 걱정도 있었는데
따라 그리지만, 어른이랑 달라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가미해 내네요.
오히려 아이의 개성이 더 드러나게 하는 책 같아요~
 
다시 그릴 땐 또 어떤 '변주'를 만들어낼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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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바꿔 먹기 - 서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다문화 그림책 I LOVE 그림책
라니아 알 압둘라 왕비 글, 트리샤 투사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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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자꾸 해보게 됩니다.
제가 생각해낸 답은 "나 자체가 소중한 존재라는 자존감과, 나 아닌 모든 이들도 그렇다는 깨달음"이지요.
아마, 이 사회에 가장 부족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샌드위치 바꿔 먹기>는 셀마와 릴리의 이야기입니다.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였던 둘은 무엇이든 함께하지만,
서로의 점심식사에 대해서만은 말할 수 없는 반감을 느끼고 있어요.
셀마의 땅콩버터 잼 샌드위치는 릴리에겐 이상고 메스꺼웠고,
릴리의 후무스 샌드위치는 셀마에겐 괴상하고 역겨웠지요.
그러던 어느 날, 둘이 마음 속 생각을 입밖으로 내놓으면서 둘은 어떤 것도 함께하지 않게 되어요.
그리고, 학교 전체에 땅콩버터 대 후무스의 싸움이 벌어지죠.
 
어쩔 수 없는 문제지요.
태어난 대로, 자라온 대로, 우리에겐 주어진 환경에서 기인한 각자의 가치관과 성격과 취향이 있어요.
이러쿵저러쿵 합리적인 듯한 이유를 대며 비난을 해도,
결국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냥 이상해. 낯설어. 싫다.'라는 취향의 문제일 경우가 많아요.
현실적인 문제들보다 오히려 인정하고 극복하기가 참 힘들죠.
 
셀마와 릴리는 작지만 엄청난 용기를 내어요.
바로 그 '역겹고 토할 것 같은' 상대방의 샌드위치를 한 입씩 먹어보기로 한 거예요.
그리고, 서로의 샌드위치가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맛있다는 걸 깨달아요.
 
선입견이란 건 결국 내가 사는 세계를 좁고 답답하게 만들지요.
누구나 맘에 안 드는 점은 있어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점도 있지요.
사실, 자기 자신에게도 그런 건 있잖아요.
그렇다고 마음의 문을 닫으면, 우린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고 발전할 수도 없지요.  


어쩌면 작은 용기만 있으면 우린 이 지구를 뒤덮은 불목을 날려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아주 조그만...
친구의 이상한 샌드위치를 한 입 맛보는 정도의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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