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 따먹기 법칙 - 제8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4학년 1학년 국어교과서 국어 4-1(가) 수록도서 작은도서관 33
유순희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학교 다닐 때, '도덕'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과목이라고 생각했었다.

'옳다'고 느껴지는 것이 늘 답이었으니까.

늘 '뭐, 이런 걸 물어봐?'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도덕과목 시험지...

대부분은 고민할 필요도 없던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그 쉬운 답대로 살아간다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로는 알고 있는 답을 몸은 따르지 못한다.

내가 힘들고 불편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이 쯤이야.'해 버린다.

 

지우개 대장 상보.

공무도 못하고 지저분하고 구리구리한 냄새를 풍기는 녀석이다.

초등학교 시절, 짝꿍이 될까봐 무서웠던 남자아이들이 떠오른다. 항상 콧물이 흐르고 머리는 까치집 같았던 남자아이들...

하지만, 지우개 따먹기에 있어서는 절대무적인 상보.

그도 그럴 것이, 상보에겐

이미 삼십여년 전 지우개 따먹기 대장이었던 아빠에게서 전수받은 지우개 따먹기 법칙들이 있다.

2대를 걸쳐 완성된 10개의 비책들을 통해 상보와, 상보의 짝꿍 홍미, 상보와는 모든 것이 상반되는 모범생 준혁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처음엔 납작한 지우개는 피하고, 가벼운 지우개를 사용하라는 충고로 시작하는 상보의 비책들은, 처음엔 단순히 '이기기 위한 노하우'들 같지만

뒤로 갈수록 '지우개 따먹기'를 진정으로 즐기기 위한 마음 자세들에 대한 충고들이 된다.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킬 것, 꼭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것, 한 가지만 생각하지 말 것, 지우개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미리 겁먹지 말 것, 상대는 나의 친구임을 기억할 것......

 

이야기가 진행되어 갈수록, 지우개는 더이상 단순한 '지우개'가 아니게 된다.

상보의 지우개 상자 속, 제각각 다르게 생겼지만 모두 소중한 친구 같은 지우개들은 바로 아이들 하나하나의 인생이고, 그들 자체이다.

뭔가를 남보다 더 잘할 수도 있고, 선천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타고 났을 수도 있지만...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한, 즐거울 수 없다.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그리고, 아무리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똑똑하더라도 꼭 이길 수는 없다.

생각지도 못했던 곳으로 가는 것, 엉뚱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순간이 꼭 있기 때문이다.

 

상보에게 그 순간은 지우개의 왕이라고도 할 수 있을 만한 맘모스 지우개 쟁탈전 이후에 온다.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엄청난 크기의 맘모스 지우개.

세상에서 단 하나 밖에 없을 것 같은 엄청나게 큰 지우개, 마음에 꼭 드는 지우개,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 지우개를 따고 의기양양했던 것도 잠시,

항상 잘난 체 하던 준혁이가 고개를 숙이고 삼촌 것을 몰래 들고 나온 것이라며 돌려달라고 부탁하자

거절하고 돌아서지만 결국 마음을 돌이킨다.

너무나 갖고 싶은 것을 가진다 한들, 상대가 나의 친구라는 것을 잊는다면 '지우개 대장'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더럽혀지게 된다고 말하는 상보의 모습은 정말 멋지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이런 순간을 맞게 될까?

'옳다'고 알고 있는 '법칙'과 '갖고 싶다'는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간들.

나이 들수록 법칙보다는 욕심을 따르고,

거울을 들여다보기 두려워지는 시간들이 많아진다.

'나'라는 사람이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마지막에 친구들과 '지우개 따먹기 법칙'을 나누는 상보를 보며 또 한번 배웠다.

세상의 어떤 법칙보다 앞서는 것,

그것은 '함께함'임을...

그것이 그 모든 '옳음'의 원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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