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2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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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에선

무언가 어두우면서도 강렬한, 타고 남은 유황의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

에드거 앨런 포.

 

 시(Poet)를 연상시키는 'Poe'라는 성이 가명도 아닌 본명이라니...

그의 운명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어셔가의 몰락'이 발표된 것이 1839년,

'모르그 거리의 살인 사건'이 발표된 것이 1841년,

'검은 고양이'는 1843년......

10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그의 작품이 가지는 힘과 어두운 광채는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로도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는

진정 천재다.

 

한 번 읽으면 절대 잊지 못할 이야기를 쓰는 작가, 포.

 

공포문학이나 섬뜩한 환상문학을 꽤나 좋아하는 나에게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검은 고양이>.

이 작품의 마지막은 '식스 센스'에도 밀리지 않을 만한 진정한 '반전'이다.

벽속에서 심장을 찢는 듯한 고양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이란....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이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따로 있었다.

 

 

지극히 평범했던 인간이 망가져

자신을 사랑하는 작은 생명을 학대하고 잔혹히 죽이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며 웃음을 흘리는 인간 내면의 사악함.

 

포는 결코 정신병자나 사이코패스를 그리지 않았다.

그는 누구의 마음에나 존재하고 있는 '인간 본성의 악'을 드러낸다.

 

 

 

이 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검은 고양이의 주인이 말하듯 어떨 수 없는, 인간을 이룬 한 요소인 것인가?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괴롭힌 작은 짐승에게 심적으로 쫓기고

결국 그것이 자기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결론으로 인해 공포에 질리는데,

처음 접한 또다른 단편 <절름발이 개구리>에서는

외로움과 조롱으로 고통당하는 '연약한 짐승'과 다름없는 난쟁이 어릿광대가

잔학한 왕과 대신들에게 끔찍한 복수를 한다.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볼 때에나 환희를 느끼던 왕은

자신이 숙원하던 더할 나위 없는 익살극을 자신의 무덤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나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납득할 만한 복수의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악에 불을 지피는 것은 또다른 '악'이라는 답을 내놓는 듯하다.

 

 

그런데, <고자질하는 심장>의 주인공은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과 여러모로 닮아 있는데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살의를 노인의 눈 탓이라고 둘러댄다.

 살인이라는 생각에 끌려가며 자신은 미친 것이 아니고 '이럴 수 밖에 없다'고 정당화하는 그.

 

'포'는 인간을 휘두르는 어둠의 힘에 대해 깊은 통찰과 함께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다.

허나, 이 어둠이 결코 그 주인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 또한 주지시킨다.

 

 

때로는 고양이의 울음 소리로,

때로는 하찮고 힘없는 존재로,

때로는 실재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악은 무서운 속도로 그 발원자를 덮친다.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대저택을 삼켜버리는 깊고 축축한 늪처럼. (<어셔 가의 몰락> 중에서)

 

 

만나는 횟수가 쌓여가고 내 나이가 늘어가면서

에드거 앨런 포는 친구 같아진다.

 

그의 다양한 작품들은 그의 다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신경질적이고 어둡고 차갑기만 하던 그의 초상화에

<모르그 거리의 살인 사건>에서 등장하는 뒤팽이 의외의 표정을 불어넣는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분석적이라 얘기되는 정신적 특성'에 대해 무려 여섯 페이지나 토해내는 열변은

나를 웃게 만들었는데,

그게 "이건 내 친구 이야긴데..."하면서 시작되는 바로 그 이야기들 중 하나 같아서였다.

 

 

 

'완전히 직감적으로 나온 것처럼 여겨지는' 건 다름아닌 그의 글들이 주는 인상 아닌가?

 

'인파 가득한 도시의 거친 빛과 그림자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관찰하며

무한한 정신적 흥분을 구하는(P.89)' 뒤팽에게 포를 겹쳐 보며

'무엇보다 격렬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생생하고 신선하기까지 한 그의 상상력(P.88)'에

나 또한 매료되었음을 깨닫는다.

 

 

천재성의 다른 얼굴인 극도의 섬약함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암울한 환영과 싸우는 (P.208) 어셔가의 마지막 후계자는

또다른 포의 얼굴을 하고 있다.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무척 기이한 밤'

바로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다.

문학사에 선물한 또 하나의 차원인 동시에.

 

 

포가 죽음을 맞은 나이는 40세.

 

그에게 그 이후의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머리가 희어지며 미소를 띄고 인간과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늙어갈 수 있었다면......

 

그는 또 어떤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까?

 

아직도 한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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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22
너대니얼 호손 지음, 한지윤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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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보물창고의 표지는 늘 매혹적이다.

 

갖가지 색의 장미꽃들 속에 싸여 있는 이 표지의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화려한 장미들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옷을 입고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여인은

눈도, 표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첫번째 단편은 역시, 너무나 친숙한 <큰 바위 얼굴>이다.

'꿈꾸는 대로 살게 된다.'는 오랜 금언을 담은 듯한 소설.

믿음대로 사는 순박함과 우직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다.

세상의 잣대로 찬양되는 그 모든 것- 재력, 권위, 권력과 명예, 재능-은 무너지고 잊혀지지만,

온화함과 진실함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 어릴 때부터 수없이 읽었던 이 이야기에서 지금 와 깊이 다가온 것은

'세상의 거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영혼의 위대함'을 질식시킨다는 것이다.

 

 

 

오로지 생각하고 느끼며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일에 할애한 어니스트는

조용히 흐르며 지나는 자리마다 푸름을 번지게 만드는 시냇물처럼 주위를 변화시킨다.

진실로 세상을 매일 점점 좋아지게 만들고, 듣는 사람들의 삶을 움직인 위대함은

순수한 생각과 조용한 선행들 속에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끝을 모르는 탐욕과 증오, 전쟁 속에서도 아직 인류가 살아남아 있는 것은

이웃이고 친구이기에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들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 단편 <웨이크필드>는 이 또한 허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가 오래전에 본 기사를 토대로 그 사건의 당사자의 속을 들여다보듯 서술해주는

아주 독창적인 작품이다.

아내에게 여행을 간다고 말한 후 집을 나서서 멀지 않은 곳에서 20년 동안 혼자 살다

어느 날 저녁,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들어간 남자의 사연을

'어쩌면 인류의 전반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건(p.35)'이라며 언급하는 호손에게

허를 찔린 기분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경멸했던 많은 타인들의 언행에 대해

그 '어떻게'는 헤아려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스스로의 잔인함이 부끄러워진다.

 

 

수수께끼 같은 세상 속에서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영원한 방황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우리 모두 - '인간'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말하는 호손에게서

'주홍 글씨'에서 보았던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발견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데이비드 스완> 또한 하나의 우화 같은 작품이다.

이처럼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었던가?

어느 오후의 짧은 낮잠 사이에 일어난 인생의 대사건들을, 그 주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알아내고 대처할 수 있기라도 한 듯 오만을 부리는 인간에 대한

부드러운 책망인 듯한 작품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두 알 수 있다면 단 한 순간도 평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위로 또한 잊지 않는다.

 

 

<모반>이라는 작품은 문학작품들에서 참 많이도 보아온 모티브와 흐름을 담고 있다.

'어떤 완벽한 행복이든 순식간에 망가뜨리는 재능을 가진 인간'에 대한 한숨이랄까?

 

너무나 아름답고 선하며 깊은 사랑으로 자신을 감싸는 아내의 빰에 있는 작은 점 하나가

과학자 에일머와 행복으로 충만했던 결혼 생활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무엇 하나 - 무에서 유를 - 진정으로 창조해 본 적도 없는 인간이,

어이하여 신의 창조물에 대해 '완전함'과 '불완전함'의 경계를 짓는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통제'라는 에일머의 환상과 집착은

이미 현대인들에겐 아주 보편적인 망상이다.

남편이 계속해서 더 나은 완전함을 바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란 조지아나.

그녀의 죽음은 에일머의 불만족이 시작된 순간 예견된 결말이다.

 

 

<목사의 검은 베일>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 '아주 작은 것'이다.

단지 물질적 상징일 뿐인 검은 베일은

목사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불어넣으며 그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외로운 평생을 보낸 목사는 죽음의 순간까지 이해받지 못한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 검은 베일을 벗기려 하자 그 것을 있는 힘을 다해 저지하며 소리친다.

 

 

자신의 죄는 숨기고 감추면서, 타인의 죄를 너무도 쉽게 비판하는 우리에 대한

그의 마지막 일갈은 참으로 아프다.

 

 

이 단편선엔 이 밖에도,

한 수다쟁이가 한결같은 경솔함과 호기심으로 살인을 막는 이야기 <히긴보텀 씨 살인 사건>,

아버지에 의해 과학적 열정의 제물로 바쳐진 여인의 비극을 그린<라파치니의 딸>,

인간의 죄악에 대한 탐구 끝에 악마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이선 브랜드>,

인간의 죄와 용서, 결혼의 의미를 담아낸 <결혼식에 울린 조종>,

인간의 헛된 야망과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한탄인 <야망이 큰 손님>,

세상의 모든 악의 원천은 인간의 심장임을 이야기하는 <대지의 번제,>

이렇게 총 열 한 편의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인간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과 깊은 통찰력에 있어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금도 빛바래지 않은 탁월함을 보이는 작품들이다.

때로는 "두려워하시오!"하고 외치는 엄정한 지도자 같고,

때로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라."하고 말없는 격려를 보내는 큰 바위 얼굴 같은

 너새니얼 호손의 마음이 면면이 드러나는 이 작품들은

그가 그렇게도 경고했던 오만과 물질주의, 무신론, 과학만능이 인류를 집어삼킨 이 시점에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온다.

 

먼 옛날의 덕목으로 잊혀진, 이젠 어리석음으로 치부되는 '겸손과 진실함'을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때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함은 말할 나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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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클래식 보물창고 21
헤르만 헤세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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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왜 이래?"라는 말을 최근에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왜?"가 바로 이 사회이고, 우리 어른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고개는 떨구어지고, 입은 다물어진다.

듣고도,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아주 먼 시간, 먼 곳에 살았었던.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 모든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한스 기벤라트.

이런 아이가 나의 아이라면 절로 어깨가 펴지고, 고개는 치켜올라갔으리라.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성실하며 순수한 한스는

주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해 가난한 수재들의 유일한 출세 코스라 할 수 있는 수도원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 영광을 위해, 한스는 소년 시절의 즐거움을 희생해야 했다.

그렇게도 좋아했던 낚시질도 1년 넘게 금지당했고, 3년 동안 길러왔던 토끼도 빼앗겼으며,

친구도 다 잃었던 것.

그러나, 그는 남다른 영재답게 학교와 시험, 그리고 모든 것을 뛰어넘어 보다 높은 본질적 영역을 꿈꾸고 동경하며, 자부심과 도취와 승리감으로 가득 차 스스로가 순진한 동급생들과는 정말로 뭔가 다른 그리고 훨씬 더 훌륭한 존재인 것 같다는 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p.23)

그리고, 그 자부심의 이면에는 평범하고 구차한 삶에 대한 경멸과 공포가 자리한다.

 

합격 소식이 전해진 후, 한스가 느끼는 환희와 해방감은 우리까지 미소짓게 한다.

입학 때까지 칠 주 간의 방학 동안 그렇게 그립던 낚시질을 만끽할 수 있음에 들뜬 소년 한스.

오랫동안 주위에 있어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고 멱을 감으며 빈둥거린다.

그러나, 그것도 단 하루.

교구 목사는 그리스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서고,

교장은 한스의 성공에 대한 불안감을 부채질해 호메로스와 수학의 선행학습을 권한다.

그의 하루는 또 다시 공부와 숙제, 두통으로 점철된다.

야위고 건조해진 한스.

그러나, 그런 '성숙하고 말 잘 듣는 한스'를 어른들은 모두 흐뭇해한다.

 

 

헤르만 헤세 특유의 섬세하고 온기 넘치는 묘사로 그려진 마울브론 신학교는 아름답고도 아늑하다. 그러나, 그 '분명 생동감 있고 행복을 주는 무엇인가가 성장할 수 있으며, 성숙하고 선량한 인간들이 그들이 기뻐하는 세상을 키우고, 아름답고 쾌활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p.80)'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했던 이 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듯 하지만, 잔인하다. 

 

어머니가 없는 엄격한 소년 시절을 보내며 누군가와 밀착된 관계를 맺을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소극적인 한스에게 '첫번째 우정'을 선사한 것은 열정적이고 제멋대로이며 독특한 젊은 시인 하일너이다. 이 가슴 벅찬 우정은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했던 한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시련을 넘어서며 더 강한 결속감과 새로운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이 열정적이고 깊은 우정은 교사들에겐 경악의 대상이 된다.  

 

 

한스의 성적은 추락하지만, 그는 하일너와의 우정 속에서 의무에만 훙실했던 예전의 무미건조한 삶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보다 따뜻한 고양된 삶을 보았다. (p.142)

일련의 사건들을 계속해서 일으키던 하일너는 결국 퇴학당하고, 한스는 상실감과 두통, 신경 쇠약증에 침식되어 탈진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청소년에게 의무를 가르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몰아대던 어린 말은 결국 길가에 쓰러져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고, 고향에서도 '시간과 관심을 쏟아봤자 득 될 것 없는 인물'로 전락해 죽음에 대한 유혹에 사로잡힌다.

목적 없는 삶 속에 서글픈 성정만으로 채워진 채 그저 배회하던 한스는

쾌활하고 예쁜 소녀 에마에게 첫사랑을 느끼고 달라진 세상을 보지만

두 번의 만남 끝에 인사도 없이 떠난 에마는 분노와 고통, 그리움만 남긴다.

 

아버지의 권유로 금속공이 된 한스는 육체의 피로와 아픔에 실연의 고통에까지 시달리다

일요일에 옛친구 아우구스트와 동료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게 된다.

 

이 일요일의 나들이길에서 한스는 뜻밖의 것을 느끼게 된다.

나 또한, 아직도 한스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이 '평범한 삶의  빛'을 깨닫고

또 한 번 발견과 성장을 거듭하게 되며 강건해진 그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즐겁게 흥청대던 시간도 잠시, 그는 또다시 절망에 빠진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간다지? 아버지에겐 뭐라 말해야 한단 말인가? 또 내일 나는 어떻게 될까?

그는 삶의 의지가 꺾이고 비참한 기분에 젖은 나머지, 이젠 영원히 휴식을 취하고, 잠들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p.251)

 

 

 

그리고, 너무도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수레바퀴 아래 쓰러진 자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거늘, 너무나 어리고 선한 한스이기에

이 잔인한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그가 물속에 빠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p.253)'며 독자에게조차 침묵하는 헤세.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말이 우리 마음 깊숙이를 찔러댄다.

누가 모르는가?

어떻게 모를 수 있는가?

지금도 수많은 한스들이, 이렇게도 여리고 선한 아이들이

사회체계가 정해놓은 잣대를 따른다고 안간힘을 쓰다

'죄송해요.'라는 실로 어이없는 한 마디를 남기고서야 평화를 찾는데 말이다.

살아남은 우리조차 그 괴로운 수레바퀴 아래에 자기 아이들을 밀어넣는 데 말이다.

 

<수레바퀴 아래서>가 담아낸 '소년에서 청년까지'는 참으로 입체적이며 세심하고

우리 또한 그 '질풍노도'에 휩쓸리느라 스스로 알지 못했고 지나와서는 다 겪는 거라며 넘기는

그 시간의 혼돈과 고통, 변화를 아름다운 문체 속에 적확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일너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자기 말에 귀기울여 주고,

우울할 때 위로해 주고 베개 삼아 무릎을 내어 줄 수 있는 친구 한스가 있었기에

결국은 자신의 삶을 찾아 날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아이들을 다그치지만 말고, 두려워하지만 말고, 언제든 무릎을 내어줄 마음을

전해주어야겠다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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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네버엔딩 클래식 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민예령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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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을 들은 적이 오래다.

한 번 쯤 읽어볼 만도 한데, 희한하게 그렇게 되지를 않았다.

아마 그 이름에 붙은 '위대한'이라는 수식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인간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

 

위대해지고자 하는 자는 결코 위대해질 수 없다.

또한, 진실로 위대한 자는 그 위대함만큼 무겁고 짙은 그림자에 짓눌린 채 살아간다.

 


 

개츠비는 어느 쪽일까?

'위대하고자 한 자'일까?

'실로 위대한 자'일까?

 

오랜 의문의 답을 기대하며 그를 만난다.


궁월 같은 대저택의 주인이며, 매일 밤 벌어지는 화려한 파티의 주최자, 온갖 억측과 소문의 주인공인 그의 첫인상은

참으로 의외다.


 

 

어둠 속 멀리 있어 얼굴도 보지 못했지만

어두운 바다, 먼 곳을 향해 전율하며 갈구의 몸짓을 하는 그 모습은

그 어떤 화려한 등장보다도 선명히 뇌리에 새겨진다.

 

그리고, 두번째 만남...

화려하기 짝이 없는 파티의 한복판에서 나는 드디어 그를 마주 한다.

 

 

 

 

피츠제럴드가 어쩌면 의도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장황하게 그려낸

'영원한 확신을 품고 있는, 일평생 네다섯 번 정도 밖에 만날 수 없을 보기 드문 미소'는

개츠비라는 이의 영혼이 선하고 순수함을 확신시킨다.

이 미소 하나에, 나는 당장 그의 편이 되고 만다.

 

그는 꿈을 꾸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

그 사랑의 꿈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이다.

 

슬프게도 그가 갈구해 온 단 하나의 사랑은, 이미 부유층 인사인 톰의 아내이다.

아름다운 데이지, 온실 속의 꽃인 데이지...

'평화' '순수' '희망'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지닌 데이지.

 

오 년 전, 그에게는 '신의 재림' 이었던 데이지와의 사랑은 실제로는 그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었던 개츠비는 거짓된 모습으로 데이지의 사랑을 차지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결국 그녀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해 그녀 이상의 부와 배경을 갖기 위해 어둠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에겐 그 방법 밖엔 없었으니까.


하지만, 꿈꾸어 왔던 순간에 이르렀을 때부터 그 꿈은 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단지 데이지를 만나 사랑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여인으로 만들고자 한다.

데이지가 그 없이 살아온 오 년의 세월을 인정하지 못하는 개츠비.

아마 그도 깨달았을까?

그 사랑이 몽상이었음을.

인정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개츠비는 멀리 빛나던 데이지 집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던 때보다 불행해진다. 
 
 


 

그리고, 꿈이 깨어진 순간과 맞물려 운명은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어쩌면 그 편이 더 자비로웠을까?

사랑하던 여인의 환상을 조금이라도 품은 채 떠날 수 있었음이 다행이었던 걸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매일 밤 그의 저택을 가득 채웠건만,

마지막 가는 길은 처절하리만큼 쓸쓸하다.

그의 전부였던 데이지는 사라지고, 장례식에 오겠다는 연락은 아무에게서도 오지 않는다.
부고를 듣고선, 전화를 해 두고 온 자기 신발 한 켤레를 우편으로 보내달라 뻔뻔스런 부탁을 하는 한 남자 앞에서

나마저도 개츠비에게 미안해진다.

살아 있는 이들 중 하나로.


 

 

불빛들로 환하게 빛나는 텅 빈 개츠비의 저택은 인간의 헛된 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꿈결처럼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인간은 어디에도 없다.

 

무엇이라도 줄 듯, 언제까지나 즐겁고 신 나는 일들이 일어날 거라고 약속하는 듯 다정하지만

얻어낼 것이 없으면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돌아서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이 '돈'의 세상인 것이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만나는 순간부터 예감은 했었지만, 정말로 개츠비가 죽음을 맞지는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개츠비가 톰이나 데이지보다 불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그들보다, 죽은 개츠비가 훨씬 더 위대하다.

마지막까지 꿈꾸었고, 마지막까지 사랑을 지켰던...그렇게도 미련하고 순수했던 개츠비.

 

슬프게도, 이 세상은 이미 '썩어빠진 물질주의자'들의 것이 되어버렸다.

소설 속에서 환멸스럽게 그려지는 모든 인물들이 사실은 이젠 평범한 사람들이다.

 


 

 

우리 꿈도 개츠비의 그것처럼 거대한 도시의 어딘가로 영원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믿고 싶다.

아직, 저 어둠 너머 반짝이는 작은 초록 불빛이 있다고.

그걸 보는 눈을 잃지는 않았다고.

 

피츠제럴드가 남긴 희망이 개츠비의 이름과 함께 우리 안에 지속되길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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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네버엔딩 클래식 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민예령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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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먼 미국의 이야기인데, 지금 이 시대 이 땅의 이야기와 다를 것도 없다. 개츠비를 살해한 물질주의자, 속물들의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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