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ㅣ 클래식 보물창고 2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7월
평점 :
그의 이름에선
무언가 어두우면서도 강렬한, 타고 남은 유황의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
에드거 앨런 포.
시(Poet)를 연상시키는 'Poe'라는 성이 가명도 아닌 본명이라니...
그의 운명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2/2013/08/24/23/9848225958.JPG)
'어셔가의 몰락'이 발표된 것이 1839년,
'모르그 거리의 살인 사건'이 발표된 것이 1841년,
'검은 고양이'는 1843년......
10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그의 작품이 가지는 힘과 어두운 광채는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로도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는
진정 천재다.
한 번 읽으면 절대 잊지 못할 이야기를 쓰는 작가, 포.
공포문학이나 섬뜩한 환상문학을 꽤나 좋아하는 나에게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검은 고양이>.
이 작품의 마지막은 '식스 센스'에도 밀리지 않을 만한 진정한 '반전'이다.
벽속에서 심장을 찢는 듯한 고양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이란....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이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따로 있었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3/08/24/23/5479005032.JPG)
지극히 평범했던 인간이 망가져
자신을 사랑하는 작은 생명을 학대하고 잔혹히 죽이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며 웃음을 흘리는 인간 내면의 사악함.
포는 결코 정신병자나 사이코패스를 그리지 않았다.
그는 누구의 마음에나 존재하고 있는 '인간 본성의 악'을 드러낸다.
이 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검은 고양이의 주인이 말하듯 어떨 수 없는, 인간을 이룬 한 요소인 것인가?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괴롭힌 작은 짐승에게 심적으로 쫓기고
결국 그것이 자기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결론으로 인해 공포에 질리는데,
처음 접한 또다른 단편 <절름발이 개구리>에서는
외로움과 조롱으로 고통당하는 '연약한 짐승'과 다름없는 난쟁이 어릿광대가
잔학한 왕과 대신들에게 끔찍한 복수를 한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3/08/24/23/2072702457.JPG)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볼 때에나 환희를 느끼던 왕은
자신이 숙원하던 더할 나위 없는 익살극을 자신의 무덤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나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납득할 만한 복수의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악에 불을 지피는 것은 또다른 '악'이라는 답을 내놓는 듯하다.
그런데, <고자질하는 심장>의 주인공은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과 여러모로 닮아 있는데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살의를 노인의 눈 탓이라고 둘러댄다.
살인이라는 생각에 끌려가며 자신은 미친 것이 아니고 '이럴 수 밖에 없다'고 정당화하는 그.
'포'는 인간을 휘두르는 어둠의 힘에 대해 깊은 통찰과 함께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다.
허나, 이 어둠이 결코 그 주인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 또한 주지시킨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2/2013/08/24/23/4199753654.JPG)
때로는 고양이의 울음 소리로,
때로는 하찮고 힘없는 존재로,
때로는 실재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악은 무서운 속도로 그 발원자를 덮친다.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대저택을 삼켜버리는 깊고 축축한 늪처럼. (<어셔 가의 몰락> 중에서)
만나는 횟수가 쌓여가고 내 나이가 늘어가면서
에드거 앨런 포는 친구 같아진다.
그의 다양한 작품들은 그의 다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신경질적이고 어둡고 차갑기만 하던 그의 초상화에
<모르그 거리의 살인 사건>에서 등장하는 뒤팽이 의외의 표정을 불어넣는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분석적이라 얘기되는 정신적 특성'에 대해 무려 여섯 페이지나 토해내는 열변은
나를 웃게 만들었는데,
그게 "이건 내 친구 이야긴데..."하면서 시작되는 바로 그 이야기들 중 하나 같아서였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2/2013/08/24/23/9419465151.JPG)
'완전히 직감적으로 나온 것처럼 여겨지는' 건 다름아닌 그의 글들이 주는 인상 아닌가?
'인파 가득한 도시의 거친 빛과 그림자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관찰하며
무한한 정신적 흥분을 구하는(P.89)' 뒤팽에게 포를 겹쳐 보며
'무엇보다 격렬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생생하고 신선하기까지 한 그의 상상력(P.88)'에
나 또한 매료되었음을 깨닫는다.
천재성의 다른 얼굴인 극도의 섬약함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암울한 환영과 싸우는 (P.208) 어셔가의 마지막 후계자는
또다른 포의 얼굴을 하고 있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2/2013/08/24/23/6635096896.JPG)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무척 기이한 밤'
바로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다.
문학사에 선물한 또 하나의 차원인 동시에.
포가 죽음을 맞은 나이는 40세.
그에게 그 이후의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머리가 희어지며 미소를 띄고 인간과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늙어갈 수 있었다면......
그는 또 어떤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까?
아직도 한없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