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새니얼 호손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22
너대니얼 호손 지음, 한지윤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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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보물창고의 표지는 늘 매혹적이다.

 

갖가지 색의 장미꽃들 속에 싸여 있는 이 표지의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화려한 장미들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옷을 입고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 여인은

눈도, 표정도 보여주지 않는다.

 

 

첫번째 단편은 역시, 너무나 친숙한 <큰 바위 얼굴>이다.

'꿈꾸는 대로 살게 된다.'는 오랜 금언을 담은 듯한 소설.

믿음대로 사는 순박함과 우직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이야기다.

세상의 잣대로 찬양되는 그 모든 것- 재력, 권위, 권력과 명예, 재능-은 무너지고 잊혀지지만,

온화함과 진실함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 어릴 때부터 수없이 읽었던 이 이야기에서 지금 와 깊이 다가온 것은

'세상의 거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영혼의 위대함'을 질식시킨다는 것이다.

 

 

 

오로지 생각하고 느끼며 인생의 소중한 시간을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일에 할애한 어니스트는

조용히 흐르며 지나는 자리마다 푸름을 번지게 만드는 시냇물처럼 주위를 변화시킨다.

진실로 세상을 매일 점점 좋아지게 만들고, 듣는 사람들의 삶을 움직인 위대함은

순수한 생각과 조용한 선행들 속에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끝을 모르는 탐욕과 증오, 전쟁 속에서도 아직 인류가 살아남아 있는 것은

이웃이고 친구이기에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들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번째 단편 <웨이크필드>는 이 또한 허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가 오래전에 본 기사를 토대로 그 사건의 당사자의 속을 들여다보듯 서술해주는

아주 독창적인 작품이다.

아내에게 여행을 간다고 말한 후 집을 나서서 멀지 않은 곳에서 20년 동안 혼자 살다

어느 날 저녁,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들어간 남자의 사연을

'어쩌면 인류의 전반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건(p.35)'이라며 언급하는 호손에게

허를 찔린 기분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경멸했던 많은 타인들의 언행에 대해

그 '어떻게'는 헤아려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스스로의 잔인함이 부끄러워진다.

 

 

수수께끼 같은 세상 속에서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영원한 방황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우리 모두 - '인간'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말하는 호손에게서

'주홍 글씨'에서 보았던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발견한다.

 

 

다음에 이어지는 <데이비드 스완> 또한 하나의 우화 같은 작품이다.

이처럼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었던가?

어느 오후의 짧은 낮잠 사이에 일어난 인생의 대사건들을, 그 주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알아내고 대처할 수 있기라도 한 듯 오만을 부리는 인간에 대한

부드러운 책망인 듯한 작품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모두 알 수 있다면 단 한 순간도 평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위로 또한 잊지 않는다.

 

 

<모반>이라는 작품은 문학작품들에서 참 많이도 보아온 모티브와 흐름을 담고 있다.

'어떤 완벽한 행복이든 순식간에 망가뜨리는 재능을 가진 인간'에 대한 한숨이랄까?

 

너무나 아름답고 선하며 깊은 사랑으로 자신을 감싸는 아내의 빰에 있는 작은 점 하나가

과학자 에일머와 행복으로 충만했던 결혼 생활을 망가뜨리기 시작한다.

 

무엇 하나 - 무에서 유를 - 진정으로 창조해 본 적도 없는 인간이,

어이하여 신의 창조물에 대해 '완전함'과 '불완전함'의 경계를 짓는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궁극적 통제'라는 에일머의 환상과 집착은

이미 현대인들에겐 아주 보편적인 망상이다.

남편이 계속해서 더 나은 완전함을 바라고 요구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란 조지아나.

그녀의 죽음은 에일머의 불만족이 시작된 순간 예견된 결말이다.

 

 

<목사의 검은 베일>은 처음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 '아주 작은 것'이다.

단지 물질적 상징일 뿐인 검은 베일은

목사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불어넣으며 그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외로운 평생을 보낸 목사는 죽음의 순간까지 이해받지 못한다.

그러나, 죽음의 순간에 검은 베일을 벗기려 하자 그 것을 있는 힘을 다해 저지하며 소리친다.

 

 

자신의 죄는 숨기고 감추면서, 타인의 죄를 너무도 쉽게 비판하는 우리에 대한

그의 마지막 일갈은 참으로 아프다.

 

 

이 단편선엔 이 밖에도,

한 수다쟁이가 한결같은 경솔함과 호기심으로 살인을 막는 이야기 <히긴보텀 씨 살인 사건>,

아버지에 의해 과학적 열정의 제물로 바쳐진 여인의 비극을 그린<라파치니의 딸>,

인간의 죄악에 대한 탐구 끝에 악마가 되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이선 브랜드>,

인간의 죄와 용서, 결혼의 의미를 담아낸 <결혼식에 울린 조종>,

인간의 헛된 야망과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한탄인 <야망이 큰 손님>,

세상의 모든 악의 원천은 인간의 심장임을 이야기하는 <대지의 번제,>

이렇게 총 열 한 편의 무엇 하나 부족함 없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인간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과 깊은 통찰력에 있어

1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금도 빛바래지 않은 탁월함을 보이는 작품들이다.

때로는 "두려워하시오!"하고 외치는 엄정한 지도자 같고,

때로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라."하고 말없는 격려를 보내는 큰 바위 얼굴 같은

 너새니얼 호손의 마음이 면면이 드러나는 이 작품들은

그가 그렇게도 경고했던 오만과 물질주의, 무신론, 과학만능이 인류를 집어삼킨 이 시점에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온다.

 

먼 옛날의 덕목으로 잊혀진, 이젠 어리석음으로 치부되는 '겸손과 진실함'을

다시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때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함은 말할 나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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