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클래식 보물창고 21
헤르만 헤세 지음, 함미라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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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 왜 이래?"라는 말을 최근에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왜?"가 바로 이 사회이고, 우리 어른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아이들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고개는 떨구어지고, 입은 다물어진다.

듣고도,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아주 먼 시간, 먼 곳에 살았었던.

 

 

독일의 한 소도시에서 모든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한스 기벤라트.

이런 아이가 나의 아이라면 절로 어깨가 펴지고, 고개는 치켜올라갔으리라.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성실하며 순수한 한스는

주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해 가난한 수재들의 유일한 출세 코스라 할 수 있는 수도원 신학교에 입학한다.

 

그 영광을 위해, 한스는 소년 시절의 즐거움을 희생해야 했다.

그렇게도 좋아했던 낚시질도 1년 넘게 금지당했고, 3년 동안 길러왔던 토끼도 빼앗겼으며,

친구도 다 잃었던 것.

그러나, 그는 남다른 영재답게 학교와 시험, 그리고 모든 것을 뛰어넘어 보다 높은 본질적 영역을 꿈꾸고 동경하며, 자부심과 도취와 승리감으로 가득 차 스스로가 순진한 동급생들과는 정말로 뭔가 다른 그리고 훨씬 더 훌륭한 존재인 것 같다는 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p.23)

그리고, 그 자부심의 이면에는 평범하고 구차한 삶에 대한 경멸과 공포가 자리한다.

 

합격 소식이 전해진 후, 한스가 느끼는 환희와 해방감은 우리까지 미소짓게 한다.

입학 때까지 칠 주 간의 방학 동안 그렇게 그립던 낚시질을 만끽할 수 있음에 들뜬 소년 한스.

오랫동안 주위에 있어도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고 멱을 감으며 빈둥거린다.

그러나, 그것도 단 하루.

교구 목사는 그리스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나서고,

교장은 한스의 성공에 대한 불안감을 부채질해 호메로스와 수학의 선행학습을 권한다.

그의 하루는 또 다시 공부와 숙제, 두통으로 점철된다.

야위고 건조해진 한스.

그러나, 그런 '성숙하고 말 잘 듣는 한스'를 어른들은 모두 흐뭇해한다.

 

 

헤르만 헤세 특유의 섬세하고 온기 넘치는 묘사로 그려진 마울브론 신학교는 아름답고도 아늑하다. 그러나, 그 '분명 생동감 있고 행복을 주는 무엇인가가 성장할 수 있으며, 성숙하고 선량한 인간들이 그들이 기뻐하는 세상을 키우고, 아름답고 쾌활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p.80)'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게 했던 이 곳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듯 하지만, 잔인하다. 

 

어머니가 없는 엄격한 소년 시절을 보내며 누군가와 밀착된 관계를 맺을 기회가 거의 없었으며 소극적인 한스에게 '첫번째 우정'을 선사한 것은 열정적이고 제멋대로이며 독특한 젊은 시인 하일너이다. 이 가슴 벅찬 우정은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했던 한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시련을 넘어서며 더 강한 결속감과 새로운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이 열정적이고 깊은 우정은 교사들에겐 경악의 대상이 된다.  

 

 

한스의 성적은 추락하지만, 그는 하일너와의 우정 속에서 의무에만 훙실했던 예전의 무미건조한 삶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보다 따뜻한 고양된 삶을 보았다. (p.142)

일련의 사건들을 계속해서 일으키던 하일너는 결국 퇴학당하고, 한스는 상실감과 두통, 신경 쇠약증에 침식되어 탈진한 모습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청소년에게 의무를 가르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몰아대던 어린 말은 결국 길가에 쓰러져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어 버렸고, 고향에서도 '시간과 관심을 쏟아봤자 득 될 것 없는 인물'로 전락해 죽음에 대한 유혹에 사로잡힌다.

목적 없는 삶 속에 서글픈 성정만으로 채워진 채 그저 배회하던 한스는

쾌활하고 예쁜 소녀 에마에게 첫사랑을 느끼고 달라진 세상을 보지만

두 번의 만남 끝에 인사도 없이 떠난 에마는 분노와 고통, 그리움만 남긴다.

 

아버지의 권유로 금속공이 된 한스는 육체의 피로와 아픔에 실연의 고통에까지 시달리다

일요일에 옛친구 아우구스트와 동료들과 함께 나들이를 가게 된다.

 

이 일요일의 나들이길에서 한스는 뜻밖의 것을 느끼게 된다.

나 또한, 아직도 한스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이 '평범한 삶의  빛'을 깨닫고

또 한 번 발견과 성장을 거듭하게 되며 강건해진 그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즐겁게 흥청대던 시간도 잠시, 그는 또다시 절망에 빠진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간다지? 아버지에겐 뭐라 말해야 한단 말인가? 또 내일 나는 어떻게 될까?

그는 삶의 의지가 꺾이고 비참한 기분에 젖은 나머지, 이젠 영원히 휴식을 취하고, 잠들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만 같았다. (p.251)

 

 

 

그리고, 너무도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

수레바퀴 아래 쓰러진 자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거늘, 너무나 어리고 선한 한스이기에

이 잔인한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어떻게 그가 물속에 빠졌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p.253)'며 독자에게조차 침묵하는 헤세.

 

'아무도 알지 못했다.'는 말이 우리 마음 깊숙이를 찔러댄다.

누가 모르는가?

어떻게 모를 수 있는가?

지금도 수많은 한스들이, 이렇게도 여리고 선한 아이들이

사회체계가 정해놓은 잣대를 따른다고 안간힘을 쓰다

'죄송해요.'라는 실로 어이없는 한 마디를 남기고서야 평화를 찾는데 말이다.

살아남은 우리조차 그 괴로운 수레바퀴 아래에 자기 아이들을 밀어넣는 데 말이다.

 

<수레바퀴 아래서>가 담아낸 '소년에서 청년까지'는 참으로 입체적이며 세심하고

우리 또한 그 '질풍노도'에 휩쓸리느라 스스로 알지 못했고 지나와서는 다 겪는 거라며 넘기는

그 시간의 혼돈과 고통, 변화를 아름다운 문체 속에 적확하게 담아내고 있다. 

 

하일너에게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고, 자기 말에 귀기울여 주고,

우울할 때 위로해 주고 베개 삼아 무릎을 내어 줄 수 있는 친구 한스가 있었기에

결국은 자신의 삶을 찾아 날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 아이들을 다그치지만 말고, 두려워하지만 말고, 언제든 무릎을 내어줄 마음을

전해주어야겠다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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