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클래식 보물창고 37
헤르만 헤세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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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한창 사춘기의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던 90년대에

'데미안'은 우리 전체의 '페르소나'였다.

소설책 한 줄 읽지 않는 아이라도 '알과 아프락싸스'를 모르는 아이는 

거의 없었을 정도니까.


그 때부터 나에게, 헤르만 헤세는 '위로하는 작가'이다.

달콤한 환상과 로맨스가 아니라, 치열한 사유와 완전함에 대한 선망이 

지금 내가 묶여 있는 삶의 비루함을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해 주는.


『싯다르타. 한 인도의 시』는 

약 1년 반 동안 거의 창작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우울증에 빠졌었던 헤세가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후 1922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헤세는 1919년부터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지만,

싯다르타가 끊임없이 고뇌하고 투쟁하는 금욕주의자로서 나타나는 부분까지 쓰고 난 다음, 

스스로의 체험 없이 이를 계속 집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느껴 

1년 반의 자기 체험기간을 거친 후에야, 

이어지는 싯다르타의 세속 생활을 다시 쓰기 시작해 

1922년에 완성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이 <싯다르타>는 실화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주인공의 깊은 고뇌와 번민, 깨달음이  

- 그것이, 한낱 중생인 나에겐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의 본질'에 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전해온다.


어린 시절부터 '명료하게 사고하는 정신의 광채'에 둘러싸여 있던 브라만의 장자 싯다르타는

지혜와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갖춘,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진리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일말의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인간의 근원, 아트만을 찾기 위해 친구 고빈다와 함께 떠나 탁발승이 되어 금욕 생활을 한다.


그의 눈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거짓이고 무가치하다. 고통이 바로 삶이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가장 궁극적인 그것-위대한 비밀'을 깨닫기만을 목표로 수행하지만,

번번이 '자신의 자아가 되고야 마는 윤회의 고통'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는 붓다를 만나지만, 

어떠한 가르침이더라도 진정한 깨달음의 길을 줄 수 없으며, 

모든 이들은 각자가 깨달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친구 고빈다를 두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배울 수 없었던,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은 '자아'라는 것을 깨닫고

'완전한 자신'이 되어 살기로 결심한다.


무의미했던 모든 사물들 안에 깃든 의미와 본질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는 어린애처럼 즐거운 놀이하듯 세속의 삶을 즐긴다.

아름다운 창녀 카말라와 부자 상인 카와스와미를 통해 애욕과 물욕을 배우고 즐기지만,

중년에 이른 어느 날, 스스로에게 환멸을 느끼고 홀연히 떠난다.

그는 소름끼치는 공허감 속에 죽으려 하지만, 그 순간 잠들어 있던 그의 정신은 깨어나고

자신이 살아야 했던 모든 것이 

'새로운 싯타르타'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기쁨에 넘친다.


그리고, 강가에서 나룻배를 젓는 늙은 뱃사공으로 살아가며 

또 끊어낼 수 없는 정과, 상실의 고통을 겪으며 완성되어간다.

아니, 이미 처음부터 완전했던 세상의 일부가 되어 평화로워진다.



"이 세계는 매 순간 완전해. 모든 죄업은 이미 그 안에 자비를 품고 있어...

 모든 게 선하고, 모든 게 완전하고, 모든 게 브라만이지,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존재하는 것들이 모두 선량해 보여."(p.204)


여전히 번뇌하는 옛친구 고빈다를 만나 전하는 그의 깨달음은 

쉽고도 오묘하다.

그가 말했듯, 배울 수는 없는 것이다.

스스로 깨닫지 않는 한 이 '완전함'을 우리는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는 알지 않았는가?

평생을 괴로워하며 번뇌했던, 세 번의 죽음을 겪어냈던 싯다르타 덕에, 

그 싯다르타를 이해하기 위해 똑같은 괴로움에 몸을 던졌던 헤세 덕에,

나는 그들을 따라 마음을 여행할 수 있었다.


스스로가 강이 되고, 하나의 세상이 되어준 아름다운 시인의 마음이여......

삶에 허덕이는 나는 아직 세상은 깨닫지 못하겠으나,

그 마음이 전해주는 선함과 자비는 

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넘어 

이리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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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커빌 가의 개 클래식 보물창고 33
아서 코난 도일 지음, 한지윤 옮김 / 보물창고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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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
세상에서 가장 많은 팬을 가진 남자.
무섭도록 정 없고,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듯한 이 남자의 시간을 초월한 인기는
그가 숨겨지고 왜곡된 진실을 토대로 구축한 논리를 완성하는 순간에 
이 혼탁한 세상이 조금은 맑아지는 듯한 쾌감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세상에서 가장 전류가 빨리 흐를 것 같은 이 남자의 컴퓨터 두뇌는 웬만한 사건엔 콧방귀를 뀐다.
그의 눈이 반짝이고, 두뇌가 부팅되는 순간은 그야말로 갈피도 잡을 수 없을 정도의 초고난이도의 문제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그 앞에 버티고 섰을 때다.


여기, 또 하나의 괴상망측한 문제가 그를 찾아온다.

가문을 둘러싼 저주, 그리고 그 저주를 증명하듯 벌어진 의문사, 전설 속 존재가 남긴 흔적.

이 쯤 되면 '서프라이즈'에나 나올 듯한 사연이다

저주의 다음번 표적이 될 상속인 젊은 헨리 경과 함.

께 왓슨을 보내는 홈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부서진 바위들과 길고 낮게 굴곡진 우울한 황야였다.

탈옥해 이 지역을 떠도는 살인자, 한 번만 발을 헛디디면 죽음에 이르고 마는 끔찍한 늪, 밤이면 무시무시하게 울부짖는 정체불명의 존재......

바스커빌가를 둘러싼 안개 같은 어둠은 점저 더 짙어만 간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반 이상이 홈즈에게 보내는 왓슨의 기록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뜻밖의 순간에 뜻밖의 모습으로 홈즈가 등장한다.

내가 왓슨이었다면, 꽤나 약올랐을 것이다. 홈즈였다면, 내내 신났을 테지만.


그리고, 퍼즐의 모든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모두가 근거 있는 전설로, 어쩔 수 없는 저주로 여겼던 이야기가 그 위장을 벗는다.


하지만, 지옥의 괴물-거대한 바스커빌가의 개는 존재한다.

탐욕에 눈이 먼, 그야말로 인간이길 스스로 포기한 사납고 무정한 인간.

그 자야말로 지옥의 산물, 악마이다.


어둠 속에서 선한 이의 목숨을 노리다가, 결국 길을 잃고 늪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인간.

참으로 걸맞는 죽음이다.

뭐, 그가 성공했다 할지라도 이미 진창에 빠진 인생이지만 말이다.


분명히 십 수 년 전에 읽었고,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소설인데도 너무 새롭다.

읽으며 어렴풋이 조금씩 떠오르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흥미진진하다.

나도 홈즈의 팬클럽에 들어볼까 한 번 더 고민하게 하는 작품이다.


'막강한 이성'으로 중무장한 불세출의 슈퍼히어로, 홈즈!

이미 오랫동안, 참 많이도 만났지만, 다시 만날 날은 여전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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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클래식 보물창고 3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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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을 처음 받아들고 놀랐다.

한참 꿈 많던 소녀시절에 읽었던 '폭풍의 언덕'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시작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이야기...


황량하고 따스함이라곤 한 줌도 찾아보기 힘든 '워더링 하이츠'에서

싹튼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너무나 깊고 강력하게 서로를 옭아매고 있어 '사랑'이라고만 부르기엔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 부모가 누구인지, 나이가 몇인지도 알지 못하는 히스클리프와

철부지 아가씨인 캐서린의 연은 그들에겐 버거운 것이 되어간다.

비뚤어진 성정에, 냉혹하고 자존심 강한 히스클리프나 

아름답지만 거만하고 제멋대로인 캐서린은 어른의 나이가 되어서도 속은 어린애에 불과하다.


부유하고 교양 있는 에드거 린턴의 청혼을 받아들인 날 밤,

캐서린은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온 하녀 넬리에게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러나, 그 사랑을 책임질 용기가 없었던 그녀의 선택은 린턴이다.

그리고, 상처 입은 히스클리프는 뛰쳐나가 사라져버린다.



3년이 지난 후, 이제 린턴 부인이 된 캐서린 앞에 나타난 히스클리프는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는다.

괴로움에 지친 캐서린은 죽음의 목전에서 히스클리프에게 용서를 청하지만,

그는 그녀를 잃은 후 더 잔혹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는 캐서린을 앗아간 두 집안에 복수하기 위해 

철저한 냉혹함으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지만,

사실 캐서린을 죽인 살인자는 다름 아닌 자신임을 알았던 것일까?

모두의 몰락이 확실시된 시점에서 스스로 자멸한다.



'캐서린이라는 세상'에 살아야 했던 히스클리프에게는

어떤 증오도, 복수심도, 성취감도 미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녀를 잃었다는 것을 잠시라도 잊기 위해 들이부었던 마취제였을 뿐.


캐서린이 죽은 후 악마가 되어가는 듯한 히스클리프를 보며

생명과 기쁨을 빼앗긴 린턴과 캐시, 헤어턴을 보며 

침울해져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유일한 끝은 히스클리프의 죽음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매일 밤 캐서린의 유령을 기다리느라, 찾아 헤매느라 두 눈도 감을 수 없었던 그의 시신을

고요한 땅에 묻으며, 이제서야 겨우 그가 평화를 찾았구나 하고 안도할 수 있었다.




서로에게 서로인,

서로에게 온 세상인

두 사람의 사랑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쉬이 오지 않는 그런 축복을 지키려면 그 축복을 살아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사랑을 살아내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두 사람의 영혼이, 서로를 끝없이 위하는 그 순수함이

서로를 무참히 불태워 버리는 지옥이 되고 만 이 결말이 가슴 아프다.


어쩌면, 에밀리 브론테는 우리에게

'과연 당신은 완전한 사랑을 살아낼 만한 용기가, 힘이 있는가?'라고 묻는 건지도 모르겠다.


차고 황량하고 미친 듯한 폭풍우가 몰아치는 이 거대한 '워더링 하이츠'라는 세상 속에서

나는 과연 내게 주어진 사랑을, 작은 세상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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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클래식 보물창고 30
샬럿 브론테 지음, 한지윤 옮김 / 보물창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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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라는 이름이

줄리엣이나 스칼렛, 테스처럼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각인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만난 적 없어도 알고 있는 듯한 그녀.

내가 '제인 에어'를 읽은 건 아마도 중학생 때 아니었던가 싶다.
뭐, 기억나는 건 여주인공이 안 예뻤다는 것, 남자 주인공도 그리 멋있지 않았다는 것, 미친 여자가 나온다는 것 정도.....

20년의 시간이 더 흘러 다시 만난 <제인 에어>는 너무 두꺼웠다!!!
650페이지가 넘는 무거운 책 앞에서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내가 알고 있던 '제인 에어'는 뭐였던가, 허망했을 정도로.
그 충격 덕에 모든 편견을 내려놓고, 제인을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하기야, 첫장부터 '이런 부분이 있었던가?'할 정도로 내 기억이 희미하기도 했다.

마지막에 가면 알게 되듯, 이 이야기는 결혼 10년차에 접어든 제인 에어가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며 쓴 수기이다.
감상적이지 않고 이성적이며, 성실하고 정확한 '제인 에어식 화술' 때문에 1인칭 시점인데도 3인칭 시점처럼 느껴지곤 한다.

이 이야기의 작가는 아마 문학사를 통틀어 전례가 없을 정도로 
'주인공이 전혀 사랑스럽지 않고 절대 예쁘지 않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다.
여성에게는 별 감정도 없고, 남성보다 모든 것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그 시대에
가난한 여성이 그나마 인정받을 수 있었던 두 가치마저 지니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결점은 그녀 자신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서 '자아'의 버팀목이 된다.

순종적이지 않고 어린애답지 않다는 이유로 학대에 가까운 냉대를 받아야 했던 숙모 집에서의 어린 시절, 독선적이고 편견에 가득 찬 교장 아래서 가혹한 억압을 받았던 로우드 자선 학교에서의 학창 시절을 거쳐야 했던 제인 에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는 가시밭길 같은 인생의 구비구비에서 보석 같은 존재들을 선사받는다.
따뜻한 성정을 지녔던 하녀 베시, 훌륭한 인품을 지닌 템플 선생님, 하느님의 선을 믿고 가르쳐 준 친구 헬렌이 그녀가 절망과 우울에 빠질 때마다 그녀를 일으켜 세워 준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픈 열망으로, 홀홀단신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떠난 손필드에서
제인은 운명의 사람을 만난다.
그 땅의 지주이며, 자신의 고용주인 로체스터는 제인의 내적인 아름다움과 지성을 알아보고 사랑하지만, 그 시대 남성의-이 시대 남성들 또한 은밀히 간직하고 있을- '속박'과 '지배'의 그늘을 지우지 못한 사랑이다.

꿈처럼 부와 지위와 사랑을 얻게 된 결혼식날, 그녀를 로체스터에게 숨겨진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양심과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느끼며 그 곳을 떠난다.
아무 것도 없이 떠돌다 길에서 기진하여 죽기 직전에 구원받고, 우연히도 자신의 가족을 만나고 유산도 받게 된 제인은 눈이 먼 데다 불구가 된 로체스터를 찾아가고, 진정으로 동등한 동반자, 완전한 '반'으로 그와 함께 행복을 일군다. 

외적인 면에서 제인 에어는 전혀 부러워 할 거리가 없는 여인이다.
2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여성의 가치 기준'으로 언급되는 외적인 조건들에서 자유롭기란  얼마나 힘든가?  
그러나, 그녀의 강한 정신력과 확신, 도덕성, 성실함, 진실과 선에 대한 열망은 평생을 매진해도 얻기 힘든 가치들임을 우리는 안다.
이것들이 결국,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신의 딸에게 선사하고픈 선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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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클래식 보물창고 23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윤영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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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에선

무언가 어두우면서도 강렬한, 타고 남은 유황의 냄새가 풍기는 듯하다.

에드거 앨런 포.

 

 시(Poet)를 연상시키는 'Poe'라는 성이 가명도 아닌 본명이라니...

그의 운명은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일까?

 

 

'어셔가의 몰락'이 발표된 것이 1839년,

'모르그 거리의 살인 사건'이 발표된 것이 1841년,

'검은 고양이'는 1843년......

100년이 가까운 세월이 흘렀건만,

그의 작품이 가지는 힘과 어두운 광채는 조금도 빛이 바래지 않았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글로도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는

진정 천재다.

 

한 번 읽으면 절대 잊지 못할 이야기를 쓰는 작가, 포.

 

공포문학이나 섬뜩한 환상문학을 꽤나 좋아하는 나에게 아직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야기' 중 하나로 남아 있는 <검은 고양이>.

이 작품의 마지막은 '식스 센스'에도 밀리지 않을 만한 진정한 '반전'이다.

벽속에서 심장을 찢는 듯한 고양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이란....

 

그러나, 어른이 되어 다시 읽은 이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따로 있었다.

 

 

지극히 평범했던 인간이 망가져

자신을 사랑하는 작은 생명을 학대하고 잔혹히 죽이는 악마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자신의 영혼을 파멸시키며 웃음을 흘리는 인간 내면의 사악함.

 

포는 결코 정신병자나 사이코패스를 그리지 않았다.

그는 누구의 마음에나 존재하고 있는 '인간 본성의 악'을 드러낸다.

 

 

 

이 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검은 고양이의 주인이 말하듯 어떨 수 없는, 인간을 이룬 한 요소인 것인가?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괴롭힌 작은 짐승에게 심적으로 쫓기고

결국 그것이 자기를 지옥으로 끌고 들어간다는 결론으로 인해 공포에 질리는데,

처음 접한 또다른 단편 <절름발이 개구리>에서는

외로움과 조롱으로 고통당하는 '연약한 짐승'과 다름없는 난쟁이 어릿광대가

잔학한 왕과 대신들에게 끔찍한 복수를 한다.

 

 

 

사람들을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을 볼 때에나 환희를 느끼던 왕은

자신이 숙원하던 더할 나위 없는 익살극을 자신의 무덤으로 삼게 된 것이다.

 

그나마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납득할 만한 복수의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악에 불을 지피는 것은 또다른 '악'이라는 답을 내놓는 듯하다.

 

 

그런데, <고자질하는 심장>의 주인공은 <검은 고양이>의 주인공과 여러모로 닮아 있는데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살의를 노인의 눈 탓이라고 둘러댄다.

 살인이라는 생각에 끌려가며 자신은 미친 것이 아니고 '이럴 수 밖에 없다'고 정당화하는 그.

 

'포'는 인간을 휘두르는 어둠의 힘에 대해 깊은 통찰과 함께 두려움을 가졌던 것 같다.

허나, 이 어둠이 결코 그 주인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 또한 주지시킨다.

 

 

때로는 고양이의 울음 소리로,

때로는 하찮고 힘없는 존재로,

때로는 실재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악은 무서운 속도로 그 발원자를 덮친다.

 

파편 하나 남기지 않고 대저택을 삼켜버리는 깊고 축축한 늪처럼. (<어셔 가의 몰락> 중에서)

 

 

만나는 횟수가 쌓여가고 내 나이가 늘어가면서

에드거 앨런 포는 친구 같아진다.

 

그의 다양한 작품들은 그의 다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신경질적이고 어둡고 차갑기만 하던 그의 초상화에

<모르그 거리의 살인 사건>에서 등장하는 뒤팽이 의외의 표정을 불어넣는다.

소설이 시작되자마자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분석적이라 얘기되는 정신적 특성'에 대해 무려 여섯 페이지나 토해내는 열변은

나를 웃게 만들었는데,

그게 "이건 내 친구 이야긴데..."하면서 시작되는 바로 그 이야기들 중 하나 같아서였다.

 

 

 

'완전히 직감적으로 나온 것처럼 여겨지는' 건 다름아닌 그의 글들이 주는 인상 아닌가?

 

'인파 가득한 도시의 거친 빛과 그림자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사람들을 관찰하며

무한한 정신적 흥분을 구하는(P.89)' 뒤팽에게 포를 겹쳐 보며

'무엇보다 격렬하고 열정적이면서도 생생하고 신선하기까지 한 그의 상상력(P.88)'에

나 또한 매료되었음을 깨닫는다.

 

 

천재성의 다른 얼굴인 극도의 섬약함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암울한 환영과 싸우는 (P.208) 어셔가의 마지막 후계자는

또다른 포의 얼굴을 하고 있다.

 

 

 

'공포와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무척 기이한 밤'

바로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이다.

문학사에 선물한 또 하나의 차원인 동시에.

 

 

포가 죽음을 맞은 나이는 40세.

 

그에게 그 이후의 시간이 허락되었다면......

머리가 희어지며 미소를 띄고 인간과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늙어갈 수 있었다면......

 

그는 또 어떤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을까?

 

아직도 한없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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