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 씨가 받은 유산 미래의 고전 17
조장희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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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늦은 결혼으로 가정을 꾸리는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예나 지금이나 듣는 주례사 중에는 반려자를 맞아 잘 살아가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결혼하는 사람들만큼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 반려자와 평생을 함께 보내는 일은 감사할 일 중 하나인 듯하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그에 대한 환멸이 더할 때 사람들은 동종(同種)이 아닌 반려동물을 통해 삶의 고락을 함께 하려 들 때가 종종 있다. 미요라 불리는 괭이 씨는 고양이지만 주인아줌마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고양이의 참모습을 잊고 지내며 안락한 생활에 젖어 갔다.



느닷없는 손님의 방문으로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내던 미요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거처를 옮기게 된 미요는 이전의 생활 섭생을 벗는 일부터 시작해야 했다. 안정적인 생활 속에 행복을 찾던 이들에게 변화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기존의 질서에서 비껴난 일은 견디기 힘든 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지하실 창고에 숨어 사는 생쥐 잡는 일을 도맡아야 하는 일은 미요가 받아들이기 힘든 일로만 여겨졌다. 고양이라면 으레 주인 집 재물을 앗아가는 쥐를 잡는 일이 다반사라 여기겠지만 여느 고양이와 다르게 생활했던 괭이 씨는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먹는 것에서부터 자는 것까지 해경하기 힘들었던 미요는 마침내 손님아줌마 집을 나와 스스로 살아갈 길을 탐색해 나갔다.



어른스러운 진돌이의 배려에도 견디기 힘든 것은 언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미요를 에워싸고 어떤 결행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지금껏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받으며 자라다 이전의 생활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른 곳에서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 불투명한 앞날이지만 스스로 맞닥뜨리며 사는 일이 더 값지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선 가게 할머니가 던져 준 생선을 맛봄으로써 서서히 고양이 모습을 찾아가는 일에 적극적인 미요를 보았다. 미요는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사랑받다가 내쳐지는 상황을 벗어나 사랑받으며 지낸다는 마음 아래 할머니와 동고동락하였다. 친자식보다 더 살갑게 살아가는 할머니 양아들 털보아저씨와도 잘 지내는 모습에서 또 다른 가족의 형태를 엿본다.



생명체는 명줄이 다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났다. 자비심이 강했던 할머니는 숱한 생선을 토막 내어 팔면서 생계를 위해 생명체를 살생하는 일을 배제하고는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생전에 유서를 작성하고 그 내용을 공증 받는 대목에서 사람과 짐승을 떠나 미요를 동등한 자격으로 대우했던 할머니의 공생관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생선 가게는 털보 아저씨와 그의 짝 미순에게 맡기고, 생선 맛을 아는 미요에게는 매일 생선을 건네주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생선을 한 마리씩 빼돌린 일을 고백하지 못해 죄책감이 들었던 미요는 비로소 그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전 할머니는 이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고양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꽹이가 사랑스러웠던 듯하다.

신라 시대 향가 안민가에 보면 유고적인 치세를 위해 임금은 임금답게 경세 치민해야 함을 강조했다. 고양이 역시 고양이답게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었다. 자신의 본바탕까지 잊은 채 누군가에게 끌려 살아가는 삶은 진정한 나를 잊고 지내는 거짓의 삶인 것이다. 애완동물 미요가 생선 한 마리를 갖다 바치게 한 두목을 찾아 소굴 속으로 들어가 단판을 벌인 일은 통쾌함이 더했다. 할머니 사랑에 새로운 삶의 용기를 얻어 진정한 고양이로 거듭난 미요는 이전의 수동적인 과보호를 과감히 벗고 고양이의 정체성을 찾아 새로운 길을 나섰다. 그 과정은 험난해 보였지만 굽이굽이 돌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처럼 그 길은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나선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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