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엄마! 마음이 자라는 나무 21
유모토 카즈미 지음, 양억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살았던 잿빛 구름 가득했던 유년 시절은 긍정적인 태도로 밝은 빛을 떠올리기에는 미욱함이 많아 음울함을 더했다. 청상의 엄마와 남은 식구들에게 아버지 부재는 고단한 삶의 무게로 일상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늘 조사했던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버지 사망을 적는 일이 견디기 힘들 때가 많았다. 태어났을 때는 아버지가 곁에 있었겠지만 태어나서 나 이외의 인물을 분별할 때쯤 아버지는 서둘러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 급작스럽게 이승을 떠나는 친구 아버지 부고 앞에서는 초연할 수가 있었다. 어쩌면 이별의 슬픔을 알아차리기 전 영면한 아버지의 삶이 위안이 될 때도 있음을 알았다.

 

  천수를 누리고 피안의 세상으로 떠난 포플러 장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치아키는 과거의 행복했던 시절을 회고하며 인생 길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의 급작스런 죽음은 치아키 엄마를 무척 힘들게 하였고 치아키 역시 아버지 부재가 주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슬픔을 줬다. 오랫동안 연어 통조림을 먹고 온종일 전차를 타며 지내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된 안주의 공간 포플러 장에서의 새로운 삶은 모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 후 방황이 많았던 엄마와 강박증에 시달리던 치아키는 서서히 삶의 절박함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어린 소녀는 늘 아버지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휩싸여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어둠 속으로 빨려들지 않기 위해 긴장하며 살았던 치아키는 매사에 완벽해야 한다는 편집증을 보이기도 했다.

 

  치아키는 직장에 나가는 엄마를 대신해 포플러 장 할머니와 함께 지내며 어둠 속에서 조금씩 빠져 나와 밝은 세상을 호흡하기 시작했다. 우편배달부 역할을 자청하고 나선 할머니는 전하려는 대상에게 편지를 적어 건네 그 대상과 소통하면서 지낼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전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심신이 약해진 이들을 위해 사랑의 전령사로 자리한 할머니는 봉인된 편지를 서랍 속에 넣어 차곡차곡 갈무리해 뒀다. 서랍 속 편지를 함부로 봐서는 안 된다고 치아키에게 쐐기를 박은 할머니는 서랍 속 편지를 소중히 다루어야 함을 강하여 그 편지의 가치를 더했다. 소녀는 아빠에게 편지를 처음 쓸 때는 막막함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였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편지 내용은 소통의 깊이가 더해졌고 치아키 마음까지 정화해 갔다. 비로소 치아키는 할머니에게 편지를 건네며 부재하는 아빠와 대화하며 지내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포플러 장에서의 생활이 이어질수록 치아키는 안정 속에 세상 속으로 나가는 법을 배워 갔다. 포플러 장에 깃들어 사는 이들과 교류하며 오사무와 함께 찾은 성당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음을 택한 그리스도 상을 보면서 아빠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골몰하였다. 한편 엄마가 일을 열심히 하다가 돌연 죽게 되면 어쩌나하는 염려는 또 다른 불안을 잉태하기도 했다. 봄이면 온다던 오사무는 사산한 엄마가 측은하여 포플러 장으로 올 수 없다는 통보를 보낸 뒤 3년 뒤 엄마의 재혼으로 소녀는 포플러 장을 나와 홀로 생활하였다.

 

  포플러 장에서 안으로 쌓인 응어리를 풀면서 소통하는 법을 배웠던 치아키는 할머니의 죽음으로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 엄마가 아빠에게 보낸 편지를 확인하며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에 사랑했던 첫사랑에게 편지를 쓴 뒤 자살한 아빠의 죽음을 교통사고로 위장한 채 보호 본능이 발동하여 딸이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진실을 숨기고 지냈다.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린 할머니는 이승을 떠나 이 세상과 단절되기 전 치아키에게 사랑의 원천을 토대로 더욱 열심히 살아야할 당위성을 부여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치아키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아이를 유산하고 직장을 그만뒀을 때 이쯤에서 삶의 궤도를 이탈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아빠가 이승의 멍에를 짐 지지 못한 채 스스로 쓸쓸한 죽음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삶을 끝냈을 개연성이 있다. 어찌 보면 엄마는 아빠와 닮은 점이 많은 딸을 사랑하고 배려하였기에 성숙한 사회인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에 담긴 진실을 밝히려 했는지도 모른다. 치아키는 포플러 장을 떠났다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와서야 엄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는 자신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윤기 나는 삶을 살아갈 희망을 발견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해 준 엄마에게 전하고 이 한 마디를 전하고 싶다.

   “고마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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