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장석주 지음 / 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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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아파 쉬었다 가는 주말, 감기 기운이 있어 외출은 삼가고 집에서 책을 읽으며 지낸다고적한 시간 미러두었던 책 한 권을 빼들었다다독 장서가로 이름 있는 전업 작가의 <<가만히 혼자 웃은 싶은 오후>>를 읽으며 한가로운 시간이 주는 선물에 빠져들었다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의 지혜가 자라지 못한다는 명심보감의 구절을 들지 않더라도 살아갈수록 경험의 소중함은 한 사람의 인생을 지탱하는 든든한 바탕으로 자리한다겪을 수 있는 다채로운 경험에서 떠올린 소박한 생각들을 좇아 나서는 즐거움에 기쁨은 더했다사유의 촉매제 기능으로 자리한 독서 관련 이야기에 숱한 경험들을 녹여낸 산문집은 숨은 보석을 찾아 떠나는 보물찾기처럼 흥미로웠다.

 

    태어남과 동시에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의 남은 시간을 가늠키 힘들지만 언젠가는 삶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은 불가피한 사실이다인생의 후반부의 정점에 이른 저자는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며 현재의 시간을 중시한다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계절의 순환에 감성적 반응을 보이며 늘 책을 읽고 뭔가를 끼적이며 전업 작가의 길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간다. 20대 전반을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책을 읽고 신간을 찾아 서점을 순례하며 살던 일들은 작가의 등용문인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시와 문학평론에 당선하는 기쁨을 낳았다공인받은 작가로의 삶이 고독한 길일진대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책의 행간을 넘나드는 일을 좋아하였다.

 

    보잘것없는 현실의 벽을 잊고 책 속에 몰입하여 살아갈 때작가는 니체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니체는 남을 흉내 내며 살기보다는 자기의 척도를 갖고 살 것과 항상 웃고 노래하며 춤추는 사람으로 살 것을 전하였다제 삶의 주인으로 사는 데 필요한 일상의 철학은 타인의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의연함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게 좋을 것인지 고민하며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고 사는 것이다. 1년 연애하고 스물세 살에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지만 생활인으로서 잘나갈 때에는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일이 틀어지고 난 뒤부터 여러 일로 부부가 삐걱거릴 때가 많다. 14년간 청하출판사를 운영하며 문학작품을 출간하는 출판사로 위상을 찾을 무렵 대학교수가 쓴 소설을 출간한 그는 1992년 10월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죄로 2개월간 수감됐다 출옥한 후 출판사를 접었다.

 

   제주도로 내려가 머리를 식히며 겨울을 나던 제분공장 옆방에서 출판사를 정리하는 결단을 내렸다밀고 왔다 밀려가는 일을 반복하는 파도소리에 헛헛함을 달래며 풍찬노숙의 삶을 결정하고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활자중독자로 살아온 덕분에 문학에 심취하였고 닥치는 대로 읽은 책 덕분에 편집부에서 일하며 책을 출간하는 일을 주로 했다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에 처해진 시시포스의 노동처럼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일은 작가의 천형인 셈이다강인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정도로 에너지 소모가 많은 글쓰기를 지속하는 일은 오롯한 정신으로 자신을 관리하는 일을 전제로 한다열다섯에 처음으로 시를 쓴 이후로 필생의 업으로 삼는 작가의 길로 나선 저자는 여명이 시작되기 전 새벽 4시 만물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는 때 작가는 글쓰기를 시작해 청송 사과 한 알을 아침으로 해결하고 정오까지 글을 쓴다조직 생활에 얽매이는 직장인은 아니지만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신의 일을 잇는다.

 

   ‘바깥의 오탁과 내 안의 번잡함이 뭉치고 쌓여 독을 뿜고그 독으로 말미암아 병이 생기는 것이다.’

폭염을 피해 쉬고 싶을 때에는 서운산 숲으로 들어가 책을 꺼내어 읽고 이도 아니다 싶으면 흙의 탄성을 즐기며 걷는다문명의 이기에 직립 보행하는 이점을 뺏기고 사는 현대인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몸 전체를 움직이며 숲을 걷는 시간은 작은 근심이나 걱정을 가라앉히고 자기 정화에 이르는 시간이다바람과 풀구름과 해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는 출판사를 접고 수졸재로 내려와 사는 목가적 삶에 만족도가 커 보인다계파나 조직을 안 만들고 무리에 섞이지 않은 채 외톨이로 사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지닌 하루키는 오전 4시부터 10시까지 원고를 쓴 뒤 10킬로미터를 달린다포스터모던 문학을 즐겨 읽으며 감수성을 키워 온 하루키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며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는 공허한 인간들의 자아 찾기를 그려내었다단순하게 살기를 바라는 저자는 시속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하루키의 일상을 닮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은 생명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

    불가능한 여러 겹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책 약 5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장서와 더불어 다양한 언어들에 대한 고서들을 소장해 온 움베르트 에코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저자 역시 좋아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은 편이라 책 읽고 쓰기명상산책여행에는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작가의 삶은 4음절의 현재진행형 동사에 융해되어 생기를 더한근심 걱정 없이 살며 만년에는 제주도에 작은 서점을 내고 여행자들을 맞고 싶은 꿈을 꾸고 사는 작가다죽을 때는 사랑하는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임종을 맞고 싶은 바람까지 섞어 지나간 시간들을 반추하며 조촐한 일상을 보내는 작가는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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