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고치며 마음도 고칩니다 - 우울을 벗어나 온전히 나를 만난 시간
정재은 지음 / 앤의서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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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연한 일들에 지배를 받으며 버거운 일상이 야기하는 정신적 방황이 많았던 시절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 짐을 꾸릴 때가 있었다. 불화하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보다는 서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통해 무탈한 일상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아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익숙함을 단조로운 권태로 받아들이며 낯익은 공간 너머를 갈망하며 지냈다.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때, 어린 자녀 둘을 남편에게 떠맡기고 한 달 배낭여행을 인도로 떠난 일은 지금도 잘한 일로 여겨진다. 남은 식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지친 나를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길 위에 나섰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 한 권에 빠져든다. 살던 집을 거주민들의 기호에 맞게 고쳐가며 마음까지 고쳐가는 일은 케케묵은 마음의 더께를 걷어내고 정갈함을 선물하는 일처럼 기분 좋게 한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이어진 지난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용기 내어 떠난 자유 여행으로 저자는 생의 전환점을 찾았다. 타인의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생활 속 고민을 틀어놓으며 동질감을 회복하고 가까워진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통해서 비로소 삶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자신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여행지에서 운명처럼 재회한 사람과 자신을 둘러싼 고민과 우울, 불행 등을 꺼내어 보이며 교유하였다. 주고받은 이 메일로 연락을 취해 친구처럼 만나다 연애를 한 둘은 같은 공간에 둥지를 틀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행하며 나답게 사는 방법을 강구하며 지낸다.

 

   시간 품을 팔고 발품을 팔면서 작은 규모의 퇴락한 주택을 사들이고 부부는 세입자로 더 이상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작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집을 수리하는 대수선으로 부부가 원하는 집의 쓰임새를 찾아갔다. 집을 수리한다고 짐을 싸다 보면 버리지 못한 짐들이 많아 천덕꾸러기가 됨을 알아차린다. 짐을 보관하는 공간이 제 기능을 찾을 때까지 몇 년 동안 미련스레 이고 지고 왔던 것들을 놓아버렸다. 주택들이 즐비하게 들어앉은 골목의 집들은 높아봐야 2층인 집들뿐이라 고층건물 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하늘을 찾을 필요도 없이 넓은 하늘을 실컷 볼 수 있는 매력이 큰 곳이다. 들창을 열고 하늘을 보면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곳에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삶의 결을 가꾸며 사는 모습이 그려진다. 부부라고 모든 것을 공유하며 밀착되어 지내기보다는 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하며 관심 있는 듯 무심한 듯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소통과 화합의 세계로 향하는 삶의 풍경이 보기 좋다.

 

   저자는 부부 싸움이 잦았던 가정의 딸로 자라며 회의와 우울감이 짙게 드리웠던 시절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습한 안개를 걷어내고 뽀송뽀송한 삶으로 치환하는 일에 적극성을 띠며 나다운 삶을 회복하는데 집중한다. 작은 집을 수리해 살면서 불편함이 생기면 다시 수리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까지 고쳐가며 사는 저자는 너무 애쓰지 않으며 단정하고 조용한 자신을 지키고 싶은 바람이 커서이다. 빚을 갚기까지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직장 생활을 감내하였다 이후 프리랜서로 전향해 자기 나름대로 통제하는 자율적 삶을 유지하고 있다. 틈을 찾기 힘든 프리랜서 남편을 대신해 집안일을 주로 하며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전담사로 자리한 저자는 자 부엌을 6칸짜리 서랍 형태의 싱크대를 완성하였다. 안정적인 월급쟁이와는 다른 생활형이라 중고 제품을 활용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외주의 요청에 따라 들어오는 돈이 달라지니 지금부터 아껴 쓰는 생활은 몸에 배여야 한다. 부부가 서로 하는 일을 존중하며 예쁜 개 봄이와 셋이 살아가는 모습이 소박한 행복을 준다.

 

   돈을 안 들이고도 행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라도 비참해지지 않고 즐겁게 살아가는 일에도 근육이 붙은 저자는 웬만한 것은 손수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며 절세 효과를 누리며 산다. 아름다운 봄날 봄이 화사한 빛으로 온 봄이와 세 차례 산책하며 마을의 구석구석을 탐방하는 주인의 사랑은 생명체에 대한 사랑으로 비춰진다. 지난 시절 기억의 흔적들을 움켜쥐고 살았던 것들을 하나 둘 놓아버림으로써 물리적인 짐을 덜어내며 마음을 가볍게 하는 일은 내 집에 깃들어 살면서 나답게 사는 이치에 담겨 있다. 나무와 함께 살면서 계절이 우리의 시간 속으로 들어서서 계절의 변화를 농밀하게 느끼게 하였다.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달라져가는 여름의 농도를 알아차리는 때는 지금을 오롯이 사는 현재형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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