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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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자는 이 소설을 통해 당시  미국사회의 위선을  이야기 한다.당시 19세기 미국은 신개척지로 이민을 받아들이고 있었음에도 사회적 모순이 차 있는 시대였다.서유럽같이 전제왕권을 옹호하는 분위기는 없어도 백인소수주의자들에 의해  흑인노예와 농민들은 중세와 다름없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링컨 혼자  한 사람이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작자는 남과 북이 경제적 사회적 괴리감에서  자신들의 이해타산을 이용할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노예제의 피해는 이 소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연히 힘없고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지 못한 흑인노예에게 더 가혹한 참화를 입힌다.

  백인지주사회를   대표하는 이는 소설초반의 노예감독와 농장주이다.그들은 당연히 노예는 자신의 재산이며 착취해야할 대상일뿐이다.여기서 우리는 미국남부에 성행한 노예제의 단면을 알 수 있다. 위선과 타산,욕심에 찬 상류사회가 얼마나 많은 모순을 안고 있는지...

  흑인노예들의 삶이 비참한 건 유명한 사실이다.오죽하면  주인공은 주인의 감시의 눈길이 닿지않는 토끼장속을 헤매고 다닌다고했을까?

  결국 망설이다 도망쳐 자유롭게 일생을 보낼 결심을 한다..

 여러번 동료들과 탈출을 계휙하고 지하철을 옮겨다니며 주인의 억압을 벗어나려 시도하지만 동료들은 자유를 갈구하다  몸부림을 치면서 죽는다.

하지만 운명은 거기서 멈추지않는다.결국 유령같이 떠돌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존재를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자신만 남기고 도망쳐 탈출에 성공한 엄마의 존재가 항상 그녀주위를 떠돈다.

 한편으로 19세기 미국남부를 통해 크리스챤이라는 지주백인들이 한 짓을 보면  뻔뻔하기 짝없다.남북전쟁이 일어난 마당에 국가재난은 뒤로 미루고  자신들의 이익만 챙겨 남부동맹의 채권을 팔고 금을 사며 자신들만 피하겠다는,그러면서 합중국정부는 불법이니 누가 남부동맹의 주도권을 쥐어야한다고  파당으로 갈려싸우며 링컨을  원망한다.
 백인들의  위선과 가식의 가면이 보인다.어쩌면 주인공이 불우했던 건 흑인으로 태어난 데다   시대를 잘못만났기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생사를 위협하는 탈출의 와중에 끝까지 탈주흑인들을 도와준 백인들은 자신의 사상-인간에 대한 존엄-을 대변하는 철학자라고나 할까?

  갖은 위험과 고난끝에 주인공 타라는 백인부부의 사재를 털어 마련한 공간에서 소녀는 그제서야 지상에 아름다움과 인간애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왜 지금까지 이 푸른 하늘이 눈에 띄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라도 겨우 이것을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행복하다고 독백하면서 극히 사소한 것으로 느껴지던 것도 자유인이 되어 그녀의 인생관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

 결국 작가는 흑인노예소녀였던 주인공에서게 최후에서 인간애의 회복을 암시한다.하지만 그것도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몸부림친 결과였다. .

    소설곳곳에 흑인노예들의 사회모순에 대한 항의와 생존에 대한 투쟁이 소설에 묻어난다.주인공은   능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지혜나 외모도 특출나지못하고 노예소녀로  평범하다. 억압 속에서 탈주하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전쟁의 참화에 휩쓸린다. 그럼에도 끝까지 생존했다.

  왜냐하면 그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인간이기때문이다..

 만일 그런 시도가 없었다면 인류역사는 발전자체를 할수 없었을지도 모른다.자유나 희망같은 단어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을까? 미국이 천국이 아니란 건 그때나 지금도 마찬가지다.외관은 화려해보이지만 안으로는 사회모순이 쌓여있다.supercountry의 밑바닥은 결코 순수하지않다.

  한편으로 적나라하게 참상을 묘사하는 작자가 그린 처절한 흑인노예의 삶을 읽으면서 노예만큼 인간의 잔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싶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시리아난민을 인신매매한다느니 북한이나 중국이 정치범들을 노예처럼 팔아넘겨 장기밀매를 한다는니 소식이 이따금 지면을 차지한다.인간의 존엄과 인권이 유린된 일에 강대국이나 지식인들이 얼마나 침묵하고 있는지 돌아볼 문제다.

     소설에는 주인공의  인간적 비애가 진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작자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잘 드러낸다.자신의 신변과 생명에대한 불안감,인간에 대한 배신감,절박감,노예생활의 참혹함...번역이 부실해서인지 원작으로 읽었더라면 감정이 생생히 전해졌을 텐데..다소 아쉽다.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이 어떻게 짓밟혔고 백인이나 지주라는 권력층이 자신보다 약자를 어떻게 대했는지 인간의 위선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생생하게 그려낸 대작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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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만 옷 안 사고 살아보기 -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던 그녀, 비우고 다시 채우는 1년 프로젝트에 도전하다
임다혜 지음 / 잇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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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기시대에 요즘같이 월급이 팍팍한 사람들에게 좋은 생활요령이네요.아무리 사도 사고싶은게 여자들 옷이라고 했네요.옷장을 정리하며 좀 머리를 쓰고 마음을 비워봅시다.쇼핑중독대신 내손으로 뭔가를 만들며 즐길수 있고 굳이 손노동을 한다면 바느질 몇번만으로도 소소한 돈을 모을 수 있고 일 년이면 큰돈을 절약할 수있고 만들어 입고 기술을 배우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겠네요.잔돌이 짠순이로 산다는게 그냥 구두쇠가 아니라 실속있게 돈을 쓰라는 겁니다.

더불어 필요없는 의류를 남과 나눌 수 있는 것도 유용한 기쁨입니다.옷장이 넓어지니 머리복잡하지않고 살기편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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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 돈황과 하서주랑 - 명사산 명불허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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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일정은 중국 서안부터 섬서성 돈황까지 서역지방의 중국의 유교와 불교의 자취를 찾는 여정이다.그중에도  동아시아문화에 정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자와 불교석굴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우리 조상이 개척한 유교와 불교문화가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고해도 중국에 비해  스케일은 작다.심지어 석굴은 산전체를 깎아내고 불상은  금을 입힌 것들까지 있다. 밋밋한 조선불상이나 전통한국도자기에 비할 바없이 사치스럽다.어떻게 한국보다 유교가 천대받는 중국이 문화자취의 흔적은 요란하게  되었을까?

 공자묘를 세워놓고 유교의 종주국이라고 하는데 유교가 정신종교화된 우리로서는 억울하기 짝이없다.그들 역사도 유교를 우리처럼 추종하지 않았다.

 그들의 석굴문화나 사원들이  너무 화려해 우리나라사찰은  싱겁기까지하다. 명청대의 건축들보다 더 현혹적이고 화려한 것들이 부지기수다.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무상할 정도로 초라하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건 중국이라는 나라 당사자였다.

 공산화의 결과가 어떻다는 걸 지금 중국도 알 것이다.

분명 우리 조상들이 중국인보다  재주가 더 뛰어나고 학식도 못지 않았으리라.인력과 자원의 문재이겠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문화교류로 우리 문화를 만들었다.삼국시대부터 문물을 전수해준만큼 조선은 중국의 문화를 동경했다.도자기 ,서예,의술,천문,주자학등등...

  작다고만 우리가 기죽일 것없다. 신라부터 삼국과 고려 ,조선은 그들을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과시하기보다는 삶속에 파고드는 정신적 가치를 더 숭상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토착화 했다. 

 본디 유교는 백성을 위한 사상이었지 지배층의 통치이념은 아니었다.하지만 중국의 봉건왕조들이 전제황권력의 승계를 정당화시키고 중앙집권과 권력세습으로 본목적을 이질화시키면서  불교도 대승불교에 힘입어 호국불교의 이념으로 사상통제의 강화에 이용했다. 삼장이나 인도의 불교를 포교를 하러온 고승들이 있었지만 본래목적이 선교가 목적인 데 비해  중국의 지배자 왕후 황제들은 그들을 이용할 줄 알았다.중국 봉건시대에 파고들어 불교를 중흥시켜 성공한 것도 보면 고승들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중국황제나 제후들이 사회적 종교로 뒷받침하여 타종교인데도 위화감을 거의 거의 찾을 수없다.그만큼 중국인들이 동화시키려 노력했고 고승들을 대우했다는  뜻이다.물론 유교를 주창한  성리학자들이 귀족들의 취향에 맞춰 유교이념을 전제왕조에 유리하도록 학설을 생산을 해내기도 하고 그들이 통치에 필요한 학설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유교와 불교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그럼 그들의 사상은 어디부터 왔는가? 춘추전국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간다.공자가 그때부터 천하를 주유하고 다녔다.그리고 불교는? 당역히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왔다.그럼 서안부터 그길을 따라가보자.

 곳곳에 변경에는 흉노의 흔적이 보인다.거기에 실크로드를 톹해 들어온 문물들도 우리나라 신라를 거쳐 도착했다.당나라 이전에도 한나라때부터 시작된 서역과의 교류는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친 흔적이 선명히 보인다.

  특히 조선조에 숭유억불로 많은 불교문화재와 문화가 파괴된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에대한 문화적 자긍심이 나쁘든 좋든 중국인들의 외래문물에대한 스타일과 수용자세는 얄미워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우리가 중국인들만큼 다문화에 열린 자세가 있었더라면 ..유교만큼은 청출어람 청어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인들은 중국보다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유교 문화를 더 꽃피웠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상황을 보자. 결국 공산화를 거쳐 문화혁명으로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고 문화란 교류하며 발전한다고하는데 중국인은 광대한 대륙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19세기 20세기에는 외래문화및 선진문물의 수용에 비적극적이었다.

 일찌감치 만리장성을 쌓고 흉노등 오랑캐들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자신들만 중화사상에서 평화롭게 살길 원했나.. 이백이나 두보의 시대에도  찬란했던 고대문물이 지금 어떤 꼴인지보면  한숨나온다.

 그 결과가 어떤지 지금보면 알것이다.하지만 장대한 스케일의 툰황석굴이나 천년고찰의 소림사등 그들의 문화유산들은 낡고 허물어져가더라도 존중할만하다.

 우리 것과 비교해가며 문화의 차이와 변화를 유추해가는 일은 한번쯤 경험해볼 가치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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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합격하고 오겠습니다 JLPT 일본어능력시험 N4 일단 합격하고 오겠습니다 JLPT
연종현.이선옥.이재은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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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과자만드는 데에 반해서 일어를 시작했는데 오사카나 도쿄가보니 안통할줄 알았더니 이외로 현지인들에게 배운게 많이 쓰이네군요.세계화시대에 영어만으로는 부족하고 일어를 알고 있으면  여행이든 공부이든 도움되지요.

  기본적으로 히라카나만 어느정도 익숙해진다면 일어도 그리 어렵지 않나봅니다.인칭변화는 있지만 5단 동사나 1단동사나 음편현상같이 동사나 시제변화가 비슷하니 우리말과 비교해가며 공부하면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언어는  비교하며  배울수록 쉽게 이해한다더니 가볍게 즐기며 공부해야하겠네요.

단 히라카나와 가타카나에 익숙해져야겠지요.우리말의 한자어휘와 유사한 어휘가 많은만큼 어휘의 기본은 유사성이 있네요.문제는 끈기인데 건데 ...석달열흘동안 매일 화장실에 히라카나 가타카나를 붙여놓고 쳐다보고 한번씩 읽어라..어느 일어선생님말씀인데 ..혼자서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가  꾸준히해야 귀와 입이 열리는데 독학이  쉽지 않군요.

동양북스는 외국어교육의 문제점인 은근과 끈기를 혼자하도록 이끌어주는 교재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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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시편 문학과지성 시인선 526
김형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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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수도를 한 사람같다.어쩌면 스님같이 수도하며 살과 죽음을 관조와 윤회로 보는 것같기도하다.남자가 쓴 시답게 선이 굵다.시구는 아름답고 정갈하나 깊은 슬픔이 배어있다.그래서인가..

그의 시 대부분이 몹시 서글픈 양상이다.그러면서도 간절하다.어쩌면 태고적 사랑을 애타게 찾는 것도 같다.애절한 호소랄까...?

 

그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제 영을 당신 손에 맡기옵니다.”/그의 영혼/나의 영혼
어떤 차이가 있는가./그의 영혼의 무게/초신성만 할지 모르는데,/그의 영혼의 눈
태평양만큼 눈물이 고여 있을지 모르는데,/그의 영혼의 가슴/은하수를 품고 있을지 모르는데,
내 꿈과 같은 꿈을/그도 꾸고 있을지 모르는데.

 

진달래 꽃눈 맞추며/산에 오르다 둘러보니/봄날이 벌써 앞서가더라

 

 때로 문장중 자연에 대한 묘사가 혼아일체의 경지를 암시한다.바다,은하수 ,진달래...하지만 그런 자연속에 인간은 홀로 서있는 외로운 존재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인간본연의 실체가 어디있냐고 묻는듯 고뇌하는 듯하다.때론 실존주의의 철학자처럼 자아를 찾아 애타게 헤맨다.고독과 번민 ,고뇌...그리고 때론 자신에 대한 동정...때론 불교적 신앙이 엿보인다..

여기서 시인은 인간자체를 찾는 것일까?아니면  인간의 영혼?

아직도 모르겠다/태어난 것이 행운인지/불행인지/그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 하지만 그와중에 시인은 고독한 자아를 찾아 몸부림친다.그래서인지 호소력이 있다.고통이  없으면 진실된 글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시의 내용을 보면 단지 고민과 허무가 아니다.삶과 죽음이 하나된 듯한 두렵게도 고통스럽게도 바라보지 않으며 담담히 자연속에서 융화된 듯 당연히 돌아가는 윤회처럼 응시하는 시인을 발견한다.
  • 어쩌면 문학은 눈물에서 피어나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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