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 : 돈황과 하서주랑 - 명사산 명불허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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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일정은 중국 서안부터 섬서성 돈황까지 서역지방의 중국의 유교와 불교의 자취를 찾는 여정이다.그중에도  동아시아문화에 정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자와 불교석굴들의 발자취를 찾는다.

  우리 조상이 개척한 유교와 불교문화가  화려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고해도 중국에 비해  스케일은 작다.심지어 석굴은 산전체를 깎아내고 불상은  금을 입힌 것들까지 있다. 밋밋한 조선불상이나 전통한국도자기에 비할 바없이 사치스럽다.어떻게 한국보다 유교가 천대받는 중국이 문화자취의 흔적은 요란하게  되었을까?

 공자묘를 세워놓고 유교의 종주국이라고 하는데 유교가 정신종교화된 우리로서는 억울하기 짝이없다.그들 역사도 유교를 우리처럼 추종하지 않았다.

 그들의 석굴문화나 사원들이  너무 화려해 우리나라사찰은  싱겁기까지하다. 명청대의 건축들보다 더 현혹적이고 화려한 것들이 부지기수다.그런데 지금은 세월이 무상할 정도로 초라하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초래한 건 중국이라는 나라 당사자였다.

 공산화의 결과가 어떻다는 걸 지금 중국도 알 것이다.

분명 우리 조상들이 중국인보다  재주가 더 뛰어나고 학식도 못지 않았으리라.인력과 자원의 문재이겠지만 우리는 우리대로 문화교류로 우리 문화를 만들었다.삼국시대부터 문물을 전수해준만큼 조선은 중국의 문화를 동경했다.도자기 ,서예,의술,천문,주자학등등...

  작다고만 우리가 기죽일 것없다. 신라부터 삼국과 고려 ,조선은 그들을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과시하기보다는 삶속에 파고드는 정신적 가치를 더 숭상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토착화 했다. 

 본디 유교는 백성을 위한 사상이었지 지배층의 통치이념은 아니었다.하지만 중국의 봉건왕조들이 전제황권력의 승계를 정당화시키고 중앙집권과 권력세습으로 본목적을 이질화시키면서  불교도 대승불교에 힘입어 호국불교의 이념으로 사상통제의 강화에 이용했다. 삼장이나 인도의 불교를 포교를 하러온 고승들이 있었지만 본래목적이 선교가 목적인 데 비해  중국의 지배자 왕후 황제들은 그들을 이용할 줄 알았다.중국 봉건시대에 파고들어 불교를 중흥시켜 성공한 것도 보면 고승들이 대단하기도 하지만 중국황제나 제후들이 사회적 종교로 뒷받침하여 타종교인데도 위화감을 거의 거의 찾을 수없다.그만큼 중국인들이 동화시키려 노력했고 고승들을 대우했다는  뜻이다.물론 유교를 주창한  성리학자들이 귀족들의 취향에 맞춰 유교이념을 전제왕조에 유리하도록 학설을 생산을 해내기도 하고 그들이 통치에 필요한 학설을 역설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유교와 불교를  존중했다는 뜻이다.

 그럼 그들의 사상은 어디부터 왔는가? 춘추전국시대부터 거슬러 올라간다.공자가 그때부터 천하를 주유하고 다녔다.그리고 불교는? 당역히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왔다.그럼 서안부터 그길을 따라가보자.

 곳곳에 변경에는 흉노의 흔적이 보인다.거기에 실크로드를 톹해 들어온 문물들도 우리나라 신라를 거쳐 도착했다.당나라 이전에도 한나라때부터 시작된 서역과의 교류는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친 흔적이 선명히 보인다.

  특히 조선조에 숭유억불로 많은 불교문화재와 문화가 파괴된 것을 생각해보면 그들에대한 문화적 자긍심이 나쁘든 좋든 중국인들의 외래문물에대한 스타일과 수용자세는 얄미워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우리가 중국인들만큼 다문화에 열린 자세가 있었더라면 ..유교만큼은 청출어람 청어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선인들은 중국보다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유교 문화를 더 꽃피웠다.

  하지만 지금 중국의 상황을 보자. 결국 공산화를 거쳐 문화혁명으로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고 문화란 교류하며 발전한다고하는데 중국인은 광대한 대륙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19세기 20세기에는 외래문화및 선진문물의 수용에 비적극적이었다.

 일찌감치 만리장성을 쌓고 흉노등 오랑캐들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자신들만 중화사상에서 평화롭게 살길 원했나.. 이백이나 두보의 시대에도  찬란했던 고대문물이 지금 어떤 꼴인지보면  한숨나온다.

 그 결과가 어떤지 지금보면 알것이다.하지만 장대한 스케일의 툰황석굴이나 천년고찰의 소림사등 그들의 문화유산들은 낡고 허물어져가더라도 존중할만하다.

 우리 것과 비교해가며 문화의 차이와 변화를 유추해가는 일은 한번쯤 경험해볼 가치있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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