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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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공이 명장에 충신이란 건 유명한 사실이다.오죽하면  러일전쟁당시 일본제독 도조 히로시가 최고로 존경하는 일인이라했을까?
  그런데 충신이든 명신이든 명군이나 성군을 못 만나면 제명에 못사나보다.선조는 한마디로 비열하기 짝없는 암군이다.중국사에도 명신이 혼군을 만나 비명횡사한 일이 부지기수다.
임진왜란 이란 초유의 국난에 조정대신들은 당쟁에 매달려있고 군주란 자는 제 목숨만 부지하기 급급하니 나라꼴이 얼마나 한심한가?압록강강변에서 선조가 지은 시를 보면 뻔뻔하기 짝없다.국가재난은 뒤로 미루고 명나라로 망명하겠다는,그러면서 조정대신들을 동서인으로 갈려싸운다고 원망한다.
  이순신은 불행히도 동인이었다.서애 유성룡의 추천을 받았다지만 권문세가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잘난 신하를 시기하는 군주는 그의 명성도 용납하지 않는 옹졸한 임금이었다.
막막한 상황에 전선을 지키는 장군에게 지원은 고사하고  누명을 씌워 고문하고 제거하려들다니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인가.소설에  그의 인간적 고뇌와 임금에대한 불신이 드러난다.

 

임금은 언어와 울음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언어와 울음이 임금의 권력이었고, 언어와 울음 사이에서 임금의 갈은 보이지 않았다. 임금의 전쟁과 나의 전쟁은 크게 달랐다. p.202
 한마디로 입만 지껄이는 군주란 뚯이다.하지만 전선에서 직접 적과 부딪쳐야하는 장수는?

적은 귀로의 바다 위에서 죽음을 통과해야만 돌아갈 수 있을 것이었고 그 바다에서 적의 죽음과 나의 죽음은 또 한번 뒤엉킬 것이었다. p.261
명과 일본이 강화하는 날 다시 서울 의금부로 끌려가 베어지는 내 머리의 환영이 떠올랐다. 나는 임금의 칼에 죽을 수는 없었다. 나는 나의 자연사로서 적의 칼에 죽기를 원했다. p264

 

 자신이 당쟁의 중심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알고 있었나보다. 고문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전을 해야하고 해준다는 건 겨우 면사란다.죽음을 면해준다는 건 처형이 아니라 전장에서 전사하란 뜻이다.사실상 노량해전에서 전사가 아니라  자살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그런 한심한 군주와 나라를 버리지않고 충성한 걸 보면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전쟁에도 능력이 대단하지만 생사를 위협하는 군주에대한 불신의 와중에 끝까지 충성하다니..
어쩌면 박정희대통령시절 충무공을 우상화한것도 그런   맹목적으로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을 원한 것일것이다.아마 일본식민지교육의 잔재이기전에 권위적인 유교윤리의 맹점이기도 할 것이다.
  명신이자 명장인 이순신의  인간적 비애가 진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작자는 일인칭화자로 그의 복잡한 감정을 잘 드러낸다.자신의 신변과 생명에대한 불안감,조정에 대한 배신감,절박감,전쟁의 참혹함...
  젊은 세대일수록 개인주의의가 판치는 시대에 개인적으로 이순신같은 인물이 되고싶지는 않다.유교군주독재체제에서 희생된 인물이기에 현대근대사에도 우리나라에는 이런 억울한 이들이 많았고 아직도 과거청산이 되지않아 역사의 오점이니..

현대도 선조같은 대통령이 충무공같은 아랫사람을 원한다면 독재국가라고할 수 밖에 없다.아니면 감옥에 간 누구처럼 어리석은 리더이거나..이런 인물이 있다면 걸맞는 리더를 만나길,민주주의의 의미를 이해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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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02018 2017-10-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뻔뻔한 군주들의 모습에 한국역대 대통령들이 떠오르네요.지적 잘하셧네요,공자가 망해야 나라가 사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