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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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너와 메리앤. 두 자매가 있다.
세 자매 중 첫째인 엘리너는 이해력과 냉정한 판단력을 갖추었고, 감수성이 높으면서도 감정을 조절할 줄 아는 지혜로운 여성이다. 장녀로서의 책임감은 물론이고, 신중함과 자제심은 따라올 자가 없다.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 둘째 메리앤은 분별력 있고 영특하며 사랑스럽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신중하지 못해 매사 의욕이 앞선다. 가식없는 솔직함으로 당당한 여성이지만 그것 때문에 타인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미처 헤아리지 못한다. 이렇게 두 인물의 소개만으로도 소설의 제목이 나타나는 바를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두 여성의 사랑과 결혼을 통해 이성과 감정의 조화로움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당시의 상속 제도를 짚으면서 경제적으로 취약한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부조리에 대해 재치있게 짚어내고 있다.  


소설에서는 자매의 차이를 알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엘리너와 에드워드는 서로 사랑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메리앤과 윌러비는 뒷일은 내 알바 아니라는 듯 당장의 감정에 충실하다. 그들의 불같은 사랑을 알면서도 말없이 속을 삭이며 메리앤을 지켜보는 브랜던 대령을 답답한 중늙은이(브랜던은 서른다섯 살이다)쯤으로 취급한다. 메리앤이 예술이나 자연을 감상할 때 미학적 쾌감을 최우선으로 둔다면 엘리너는 윤리와 타인에 대한 공감을 우선한다. 윌러비와 연락이 닿지 않자 규범을 무시하고 적극적으로 그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요구하는 메리앤과 달리 엘리너는 에드워드를 사랑하는 만큼 자신과 관계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했기에 자기에게 이미 큰 아픔임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속내(감정)을 무작정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과 감추는 것. 어느 선까지가 배려이고, 어느 선 이상이 모욕일까. 감정(생각)을 자제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실 더 우선되어야한다거나 혹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없다. 다만 무엇을 결정하든 나 자신은 물론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어야함은 당연한 일이다. 



의미있게 느껴졌던 몇몇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결혼했다고 여겼던, 자신의 감정을 전혀 표현할 줄 모르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미숙한 에드워드가 청혼했을 때 곧바로 터져나온 엘리너의 눈물은 소설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표출한 극단의 감정이다. 이 눈물은 그동안 엘리너를 억눌렀던 규범, 예의, 책임감, 원망 등 여러 감정들을 일시에 해소하는 것으로써 그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또하나는 미스 모턴이 형제지간인 에드워드와 결혼하나 로버트와 결혼하나 달라질 게 없다는 존 대시우드의 말은 당시 여성의 결혼에 대한 인식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케 한다. 


앞뒤 사정을 떠나서 가장 비호감은 역시 윌러비. 비겁하고 구차한 인물. 술에 취한 채 찾아온 마지막 방문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제 마음 하나 편하자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상대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구질구질한 사랑 고백과 자기 변명도 모자라 현재 아내와 오래 전 자신이 능욕한 어린 여자까지 모욕한다. 엘리너가 그런 사람을 동정하고 연민하는 데에는 그가 더이상 자기 가족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분노보다 무관심이 더 무섭다는 거겠지. 


ㅡ 


이전 제인 오스틴 작품을 번역한 판본들과 다른 문체를 사용하고 있어서 독특했다. 읽고 있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본문에 달린 주석. 덕분에 당시의 영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더불어 소설 속 인물들의 대사나 행위를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여러 측면에서 작품을 훨씬 풍성하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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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숨결에 날리는 깃털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장성주 옮김 / 복복서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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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인칭 화자 '나', '나'의 아버지 장, 어머니 크리스타, 러시아 이민자 바딤. 디아스포라 혹은 정체성의 이야기일까, 결혼과 가정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사랑을 이야기하는 걸까. 턱을 괴고 곰곰 생각하던 끝에 내린 결론은 사랑. 부부 간의,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그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외면하고 회피하면서도 끝내 서로의 곁을 지켰던 것은 사랑과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외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든 부부든 오래도록 사랑을 유지하고 싶다면 열정보다는 측은지심이 더 필요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중국인과 파나마인 혼혈으로 태어난 직후 아버지의 나라에서 10년 동안 성장한 뒤 태어난 파나마로 다시 돌아왔으나 삼촌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장. 본인은 평생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았지만 중국, 중남미, 미국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독일인 아내와 딸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을 중국이라고 여겼지만, 밖에서 바라본 시각에서 그의 고향은 단정하기 어렵다(태어난 곳이지만 곧장 떠난 파나마, 불과 십여 년 밖에 살지 못한 중국, 가장 오래도록 살았지만 평생 소통하지 못했던 미국).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자 노동자로 사는 동안 정작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언어적·정서적 고립, 그리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아 가족으로부터 타인으로 존재했던 소외가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은 아버지는 딸이 미처 알지 못했던 모습이다. 그들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토록 악다구니로 싸우면서도 아내를 원망하는 만큼이나 사랑했다는 것, 수줍음이 많지만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는 것, 언어를 몰라 노래로써 말을 하려고 했다는 것,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으로 가장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는 것, 그가 많이 외롭고 쓸쓸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아버지의 뒷모습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병적이다시피 독일인이라는 정체성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 어머니 크리스타. 그래서 일평생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사무쳐, 떠안은 가족과 현재보다 결혼 전 과거를 끊임없이 소환하며 남편을 비난하는 것으로 지금의 자신을 부정하고 회피한다. 나치 정권 하에서 교육 받으며 성장기를 보냈고 패전 후 핍박함과 굶주림, 공포를 경험한 크리스타는 걍팍했던 그녀의 어머니와 많이 닮아 있다. 대상이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고는 할 생각조차 못하는, 누군가를 동정해본 적이 없는,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을 불신하고 혐오했음에도 타인의 인생 이야기에는 기꺼이 청자가 되어 주고 동물을 사랑하며 배려한, 한편으로는 소녀같은 구석이 있는, 종잡을 수 없는 사람.  


어느 면으로나, 이토록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미국인'이 되길 원치 않았고,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 있었지만 미국에 남았으며, 딸들에게 자신의 모어를 가르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ㅡ 


1부와 2부가 이민 1세대에 대한 이야기라면, 3부와 4부의 시선은 2세대를 향한다. '나'는 혼혈이기에 지겹게 경험했던 '미국적 사고방식'에 진저리를 치며 늘 머리 위에 칼이 매달려 있는 기분으로 살았다. 불화와 싸움이 반복되는 유년 시절의 가정환경은 실패와 비관을 당연시 여기게끔 만들었고, 사랑받기를 열망했다.  


'나'는 왜 밑바닥 인생과 다름없는 바딤에게 끌렸을까? 그에게서 아버지 장이 겹쳐진 것은 아니었을까? 바딤은 여러 면에서 장과 달랐지만(장이 왜소하고 내성적이었다면, 바딤은 단단한 체격에 거칠다) 러시아 이민자 출신으로 아내와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물론 가족을 위해 그토록 그리워하는 고향으로 돌어가지 않는 것과, 더디게 느는 영어 실력이 장과 닮아 있다(장은 거의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지만). 바딤의 영어 실력이 느는 것이 '나'에게 중요했던 이유와, 그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까닭은, 어쩌면 언어적 소통이 거의 불가능했기에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바딤의 딸 스베타는 오래 전의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좋은 성적을 거둬 장학금을 받고 공식적인 명분으로 집을 떠나는 것. 작가는 그들을 통해 이민자 가정의 세대 갈등, 특히 2세대들이라면 경험하는 지병같은 혼란을 3,4부에서 내밀하게 짚고 있다.  


ㅡ 


번역된 작가의 전작을 다 읽어본 경험상,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출간한 작품들에 밀리지 않는다. 특히 혼혈, 이민 2세대의 입장에서 부모 세대를 관찰하는 시선은 자전적 요소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섬세하게, 하지만 과하지 않게 서술한다. 
개인적으로, 이민자 서사를 다룬 소설 중 손가락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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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정원사 - 꽃이 지기 전에 다녀가세요
김용철 지음 / 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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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 동안 정원 생활을 담고 있다. 

저자는 직업적으로 식물을 키우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9년차 아마추어 정원사다. 씨앗을 뿌리고 결실을 맺고 다시 내년을 준비하는 정원사의 사계절 일지이자 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 대한 책이다보니 어떤 식물을 심고, 가꾸고, 보살피는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일상의 철학이 배여 있어서 좋았다. 사대가 한집에 살았던 그때로 돌아가라면 도리질을 치겠지만, 조부모와 손주까지 이어지는 화목한 가정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흐뭇하다.  


특히 의식주와 무관한 일에서, 돈이 되는 일이 아닌 노동에 기쁨을 느낀다는 글에 무척 공감했다. 올해 읽었던 레마르크의 『사랑할 때와 죽을 때』에서 주인공 그래버는 연인 엘리자베스와 이별 하기 전, 가진 돈을 전부 쥐어주며 어젯밤에 샀던 모자처럼 쓸모 없고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것을 사라고 당부한다. 가끔은, 팍팍한 세상에서 무용한 존재가 되는 것도, 무용한 일에 집중하는 것도 삶의 활력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기다림.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세상에서 '빨리빨리'라는 단어가 제일 싫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때는 소리내서 웃었는데 이후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꽤 자주 쓰는 단어다. '빨리빨리'. 대다수 사람들이 기다리는 데에 익숙치 않다('빛의 속도'를 외치는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더욱!). 무용의 가치만큼이나 기다림 또한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 뒷표지에는 「나보다 오래 살 것을 심는다」라고 쓰여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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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풍주점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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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백 여쪽의 분량을 읽으면서 내 눈에 들어온 단어는 '즐거움'이었다. '즐거움'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장면은 단 두 군데 뿐이다. 그럼에도 흔하디 흔한 그 단어가 마음에 딱 붙어버렸다. 아마도 해풍촌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단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체로 돌아오는 답은 '행복 추구'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취하는 대부분의 행위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인데, 그렇다면 삶의 행위는 목적에 해당하는 행복에 이르고자 함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즐겁고 기쁜가? 






 



지상에 단 하나 남은 거인이 사는, 대양의 남쪽 구로시오 해류를 낀 해변의 작은 마을 해풍촌을 배경으로 19세기 말 일본이 대만을 식민통치하던 무렵부터 국공내전과, 백색공포 및 계엄 체제를 지나 산업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이어 역사의 물결에 실려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주요 인물의 관점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독자가 잘 따라가야 한다. 


소설은 역사적 사건과 사회 현상 안에서 인물들 각각의 서사를 통해 전쟁의 폐해, 가난과 폭력, 산업화에 따른 환경 오염, 부정부패와 투기, 원주민 강제 이주, 자연과의 공존의 부재, 인간의 오만함과 무력함이 드러난 작금의 현실을 전한다.  


설화와 마술적 리얼리즘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특히 모두 소멸하고 단 하나 남은 거인의 몸이 숲 그 자체라는 설정은 우리나라의 설문대할망 설화가 떠오른다. 또한 소설의 마지막에서 드러나는 거인의 장엄한 희생은 인간이 자연을 보호한다는 생각이 착각이며 자연이 인간을 보호하고 있음을 말한다. 독특한 점은 트루쿠 부족의 용어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자신이 기억되길 바라는 우민의 바람과 닿아 있는 부분이기도하다. 



등장인물 중 의미있게 다가온 인물은 투누흐의 아버지 우민 나낭이다. 그는 크니부 부락의 트루쿠족의, 사실상 마지막 사냥꾼이고 자연의 순리를 따른다. 주도적으로 교회를 짓는데 앞장 섰지만 정작 하느님은 믿지 않고, 그 교회를 합심해 함께 짓고 살아가고 의지하는 사람들의 신념에 더 가치를 둔다.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나 인간 역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순환에 한 일부임을 아는 사람이다. 그는 변화하는 시대에 우민 나낭이라는 사냥꾼이 있었음을 기억되길 바란다. 쇠락해가는 우민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의 쇠락은 해풍촌의 자연(거인)과 순리에 따른 삶의 소멸을 의미한다고 느껴졌다.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타이완 부족민의 문화와 설화롤 꼽겠다. 그리고 해풍주점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해풍주점은 해풍촌에서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는 공간인데, 그 공간의 변화(노아미의 해풍 라이브바가 옥자의 해풍주점으로 넘어가고, 이후 타이 선생에게 넘어가는 과정)가 격동의 시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십 년 후 해풍주점에 모인 그들 모두가 마지막에 알게 된 진실.
현재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기상 이상은 거인 드나마이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이자 몸부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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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썸머 에디션)
이디스 워튼 지음, 민지현 옮김 / 머묾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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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후 책을 덮고 처음 든 생각은, 만약 루시어스 하니가 채리티를 크레스턴 연못으로 불러내지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였다. 


기억도 안 날만큼 어린 나이에 낯선 집으로 보내져, 입양도 아닌 후원인의 집에서 성장한다. 그녀의 나이 열여덟 살에 아버지뻘의 후원인이 청혼을 했으나 야무지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얼마 후 처음으로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고 (마지못해) 결혼까지 약속한 남자는 실상 이미 약혼녀가 있었다. 사랑했지만 뜻하지 않게 임신을 했고, 오갈 곳 없는 몸을 의탁하기 위해 거의 평생 만난 적 없는 친모를 찾아갔으나 마치 운명처럼 하필 그날 비참한 모습으로 임종했다. 그리고 자기가 태어난, 그 참혹한 곳에서조차 환대받지 못했다. 고작 열여덟 살 여자의 삶이 이토록 외롭고 쓸쓸할 수가 있을까. 더욱 가픔이 아픈 건, 비혼 여성이 혼자 아이를 키우기가 (여러 측면에서)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소설 전반에 걸쳐 채리티의 외로움과 고립감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자아와 자존심이 강한 채리티로서는 매순간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채리티가 루시어스 하니를 끝까지 배려했던 이유는 자기에게 숨겨진 욕망을 각성하게 해주고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채리티는 루시어스 하니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다른 세계'를 더 열망했던 건 아닐까. 다른 세계를 남자(사랑)를 통해야만 닿을 수 있는 관습과 차별 인식, 여성이 경제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볼 때 채리티를 그저 허황에 들뜬 어리석은 젊은 아가씨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파란 브로치. 하니가 채리티에게 선물한 파란 브로치는 그녀가 가진 기대와 희망을 담고 있다. 하니로부터 브로치로 선물 받았을 때 그것은 다른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상징같은 존재였으나 진료상담비 2달러가 없어서 담보로 잡혀 그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채리티의 미래에 대한 복선으로 읽힌다. 또한 채리티가 마음을 바꿔 태어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장면은 앞으로 그녀가 살아가야할 고된 인생길처럼 느껴졌다. 결코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소설에서 채리티의 삶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면 되찾은 파란 브로치일 것이다. 아이와 친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물건이라는 위안, 그리고 이 작은 물건으로 매번 각성하며 어머니로서 삶의 의지를 다져나갈 채리티의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뜨거웠던 여름. 폭풍 같았던 사랑은 지독한 흔적을 남겼다.
맨 처음 던졌던 물음, 루시어스 하니가 그 작은 시골 마을에서 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한 줌의 미련까지 거둬서 돌아갔다면, 채리티의 앞날은 달라졌을까? 적어도 원치 않는 결혼은 하지 않았겠지. 


인생을 누가 알겠는가.
뜻밖에도(?) 알콩달콩 행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사과받지 못한 채 지우지 못한 굴욕감과 수치심은 종종 그녀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소설은 한 여자의 사랑에 대해 쓰고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다름'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크게 두드러진다. 그래서 워튼의 소설 중 가장 시의성 있는 소설이 아닐까싶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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